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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호이 Mar 10. 2024

여행 좋아하세요?(2)

(이어서)


03. “나도 간다! 유럽 배낭여행”

20대 시절에 가장 큰 복이었던 건 운이 좋게도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에 성공했고, 꽉 찬 12월 한 달 동안에 ‘리얼’ 휴가가 생겼다. 일절 고민이 없었다. 곧바로 한 달 짜리 ‘런던 in 로마 out’  비행기를 끊었다. 온전히 맞바꾼 내 거지 같은 대학 생활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셀프 가스라이팅을 하면서 나도 남들처럼 빚져서?! 라도 꼭 놀다 와야겠다는 결심을 한 채, 한 달 뒤 같은 회사에 입사하는 친구와 같이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떠났다.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었고 기억에 남는 또 한 번의 해외여행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영어도 짧고, 구글 지도도 없고, 중간중간에 어느 나라를 갈지 조차 어느 하나 제대로 결정하지 않은 채 떠난 여행이었지만, 무섭지 않았고 걱정보다도 설렘이 훨씬 더 가득했다. 캐리어와 배낭, 그리고 ‘Enjoy 유럽편’ 여행 책 하나 챙겨서 인천공항에서 만난 우리는 곧이어 출발하면서 말했다.


“런던 가는 비행기 안에서 책 좀 보고 대충 정하자”


‘백화점에서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것 있으면 사지 뭐’ 하는 마음으로 첫 유럽여행을 그렇게 말도 안되게 무계획으로 떠났다. 그렇게 도착한 런던의 한 술집에서 “유럽에 왔는데 축구 한번은 봐야지?” 라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사전 예매도 없이 우리는 맨땅에 헤딩하듯 경기 몇 시간전서부터 경기장 근처를 서성이면서 오로지 암표 앵벌이?! 끝에 퍼스트열 챔스 경기를 포함 아스널, 파리 생제르망, 뮌헨 등 인기 클럽들의 홈경기들을 직관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스위스 알프스 산맥을 내려다보며 헬리콥터에서 몸을 던지는 스카이 다이빙도 하고, 한 번은 인적드문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서 길을 물어보다가 인도 유학생에게 오해를 받아 게이클럽에 끌려갔다가 도망쳐 나오기도 하는 우당탕탕 왁자지껄한 여행 에피소드들이 많아 우스웠던 기억들이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평생 안주 거리로 회자되는 이 기억들은 여행의 참 된 묘미인 것 같다.

말도 안 통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 낯선 외국에서 한 달을 친구와 함께 동행하다 보니 어찌 즐거운 일만 있을까? 한 번은 스위스에서 대판 싸우고, 열차도 놓치고, 융프라우 정상에 겨우 올라갔는데 3분 컵라면도 먹지 못하고 다시 내려가야 하는 이 상황이 짜증나는 일들도 종종 있었지만, 어쩌면 이 또한 모든 것이 전부 다 ‘여행’ 이고, 이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 모든 기억들과 당시의 파도 같은 감정, 기분, 사고, 느낌들이 하나가 되어 여행의 기억을 만드는 것 같다. 

다만 어떤 이들은 여기서 느껴지는 피로감과 힘듦, 부정적인 것들이 더 많이 기억된다면 이후에는 휴양지나 호캉스를 선호하는 것 같고, 이를 알면서도 또 미지의 세계와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이들은 어쩌면 우리같이 중독된 여행가일지 모른다.

한 달 동안 6개국 10여개의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얻고 마주한 경험들은 또 내 어딘가 무형에 자리한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보다 넓은 안목과 시야를 넓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믿는다. 그냥 다 필요 없고 무엇보다 너무나도 좋았던 기억 뿐이다.

당시 인기 축구선수인 '혼다 케이스케' 처럼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PSG 홈경기 직관한 모습




04. 말로만 듣던 해외 출장 

그렇게 신입사원으로 들어간 첫 회사가 하필 또 일본계 기업이었다. 물론 회사에서 일본어를 사용하거나 일본현지와 관련된 업무는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만, 운 좋게도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권 출장이 종종 있었다.

출장에서 좋은 점은 회사마다 혹은 어떤 목적의 출장 이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혼자 가는 자유여행 보다 좋은 컨디션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출장은 대체로 물가가 비싼 선진 국가로 향하는 일정들이 많다 보니, 예를 들면 좋은 호텔과 마성의 법인카드를 유용하게 잘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혼자 여행에 익숙한 나로써는 비싸서 쉽게 묵지 못하는 좋은 호텔들과 식당들을 종종 경험 할 수 있었고, 악용하면 안되겠지만 적잖은 ‘법카’ 찬스를 통해 출장에 피로를 해소시키는 작은 역할이 되어주기도 했다.

또, 생각해보면 해외 출장을 혼자 갔던 경우들이 많았다. 완전 혼자가 아닌 회사를 대표해서 가는 출장이 많았기에 같은 회사의 선배들과 동행하는 출장보다 업무적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동행하는 일정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장단점은 분명하지만 자유로운 나에게 출장은 언제나 늘 환영이었다.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영화에서처럼 근사하고 멋있는 수트 차림으로 떠나는 비즈니스 출장이 아니라, 최소한의 TPO만 고려하면 되는 일상적인 차림으로 떠나는 기회가 많았고, 다행히 시간적으로도 널널하고 혼자 보내는 꿀같은 시간들이 적지 않았던 출장들이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기회들을 누릴 수 있었다. 

(훗날 이직을 하면서 만나 온 많은 선후배들과의 무용담들 중에 정말 나랑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정말 꿀같은 출장들이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고 그런 회사들이 너무나도 많음에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이외에도 가깝고 시차가 적은 일본과 홍콩, 대만을 중심으로 한 출장들과 짧은 여행들을 다니면서 말도 안 통하고 생활 문화도 다르지만, 생김새가 비슷한 아시아권 여행들을 통해 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씩 생겨났다.




05. “효자 여행,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첫 회사를 그만두고, 부모님을 모시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나름 ‘일본 전문가’, ‘프로 여행러’ 라고 자신만만 생각했었기 때문에 처음 가는 도시이지만, 내 손발이 조금만 고생하면 어려움은 없을 거란 생각으로 평소처럼 여행을 준비했다. 하지만 결과는 오마이.

지금까지 단 한번도 투어 여행을 해 본적이 없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교훈과 결과만 먼저 이야기 한다면, 부모님과의 여행은 무.조.건! 여행사와 함께 하는 ‘투어 여행’이 답이다.

나의 여행 패턴, 허기진 배를 채울 요깃 거리와 나를 유혹하는 다채로운 볼거리 등 무엇보다도 이를 뒷받침하는 여행 체력과 하물며 걸음 속도까지. 그 동안은 이 모든 것들은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뿐더러 당연하게도 일방적으로 나를 기준으로 생각했었다. 때문에 이는 오래가지 못했고, 타지에 도착한지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큰 논쟁으로 터지게 되어 첫 날부터 무를 수도 없는 그런 불편한 동거 여행이 시작되었다. 

하나라도 더 많은 곳을 보여드리고, 또 맛있는 걸 사드리고 싶었던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내 마음과는 반대로만 흘러가고 있었다. 더욱이 이미 십 여년을 떨어져 살았기에 당신들의 관심사도, 입맛도 알 수 없었고, 하필이면 웨이팅은 왜 이렇게 많고, 꼭 찾을 때는 잘 안보이는 화장실. 이 ‘머피의 법칙’ 같은 일들은 왜 이렇게 자주 내 앞에 일어날까나? 


 “나는 누구여긴 어디?”  

 “나는 그냥 아들이지, 가이드가 아닌데. 나도 여기 처음인데.” 


참으로 힘들었던 여행 중 하나였다. 물론 내가 생각하지 못하고 미리미리 계획하지 못했던 점들이 많아 미숙 했던게 맞지만,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의 패턴을 살아오셨고 체력적인 부분을 고려했어야 하는 나의 엄청난 미스들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도 여기는 서울이 아니라, 해외 라는 점을 꼭 두 번,세번,열번 인지해야 하고 그렇게 인지했음에도 불구 너무나 큰 미션같은 여행이었다.

이 또한 여행의 일부 임을 배웠다. 여행에서 반드시 좋은 일만 생기지 않을 뿐더러, 이런 상황에서도 풀어나가야 하는 지혜와 스킬을 나름 터득할 수 있었다.

물론 부모님은 시간이 지나 지금까지도 아들이랑 함께 한 이 여행을 온 동네방네 자랑하고, 추억이 된 이 기억을 너무나도 흐뭇해 하신다. 당신들에게는 해외 여행이 좋았던 게 아니라, 다 큰 내 자식이랑 함께 한 여행이라는 사실 자체에 그냥 의미부여를 하실 테고, 이미 여러가지 자랑거리와 큰 기쁨 이었을 것이다.

분명한 건, 지금도 주변에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간다는 지인들이 있다면 이 두 가지는 항상 얘기해주고 싶다. 


하나, 부모님은 해외 어디를 가든, 꼭 무얼 보지 않더라도 

당신과 함께 하는 여행 자체에 모든 것을 좋아하신다는 거.


무조건 여행사를 추천한다는 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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