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병원에서 무릎 수술하고 6개월 입원한 이야기

벌써 10년된 이야기

by 메리제인

조금은 늦게 간 군대


군대를 좀 늦게 간편이었다. 기술 좀 배워보겠다고 2년의 시간을 보내고 22살에 군대에 입대했다. 군대에 일찍 간 친구는 벌써 병장이었고 곧 있으면 제대라면서 나를 놀리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참 부러웠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참... 별거 없다... 그때는 또래보다 앞서가는 게 모든 게 부러웠던 걸로 기억난다.


그렇게 약간은 늦은 나이에 군대에 입대했는데 웬걸! 훈련소에 가보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 투성이었다; 도대체 다들 뭐하고 이제 온 건지 궁금해졌다. 나중에 한 명씩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서 물어봤었다. 다들... 사연이 있었다. 유학 갔다 온 사람, 공부하겠다고 군대 미루고 들어온 사람,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도망치듯 입대한 사람 등등 사람 냄새 물씬 난다고 해야 하나? 내가 접한 훈련소는 그런 곳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통증


여름에 입대했는데 그래도 버틸만했다.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서로 의지하면서 훈련을 받으니 어느새 적응을 하였고 훈련소 4주 과정 중 3주 차에 일이 발생했다. 특별한 부상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릎이 부어오르더니 통증이 찾아왔다. 외관상으로 보아도 무릎이 부어있으니 조교에게 이야기하니 군의관에게 진료를 보게 해주었다.


훈련을 빠지고 찾아간 군의관 앞으로는 진료를 기다리는 많은 훈련병들이 있었다. 다들 어디가 아파서 온 걸까? 단순히 훈련받기 싫어서 꾀병으로 온 것 같지는 않은 표정들이었다. 순번을 기다리면서 문진표를 작성하라고 했는데 작성하면서 바라본 군의관 표정을 살갑게 보이지 않았고 사무적인 표정이었다.


어느 정도 작성하고 있으니 내 차례가 왔다. 충성! 하고 군의관 앞에 앉았는데 내가 작성한 문진표를 보더니 파스 처방과 함께 약을 주었다. 이게 끝? 속으로 생각했지만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단순하게 파스 처방과 약을 처방받은 나는 다시 훈련을 받기 위해 복귀하였다. 기억에는 소염진통제와 근이완제 그리고 소화제로 기억이 난다.


다시 훈련에 복귀한 나는 다시 훈련에 참여했고 무릎은 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둘 훈련에 열외를 하였는데 정말 눈치도 보이고 무릎이 아파서 서러웠고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다시 군의관 진료를 보고 싶다고 겨우 허락을 받고 찾아간 군의관은 전과 똑같은 처방만 줄 뿐이었다. 아... 여기서는 해줄 수가 있는 게 없구나... 이렇게 계속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계속 훈련을 받아야만 하나?


할 수 있는 말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뿐


하루는 열심히 해서 전화를 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부모님께 전화하고 괜찮냐는 부모님의 질문에 괜찮다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차마 무릎이 아프다며 이야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흘러 훈련소 마지막 4주 차 훈련 기간을 맞이했다. 훈련소 훈련의 대미를 장식한 행군이 이었는데 이것마저 열외 하기는 정말로 눈치가 보였기에 군장은 메지 않고 참여를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악으로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어느 것이 최선인지 몰랐고 그 누구도 이 상황을 더 좋게 할 해결책을 주지 않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훈련병의 신분이 할 수 있는 훈련을 받는 게 아닌가 생각할 뿐이었다.


어찌어찌 4주간의 훈련을 마쳤다. 나는 주특기 병으로 지원을 하였기 때문에 바로 자대에 배치받지 않고 주특기 교육 4주를 받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다들 이곳을 이등병의 천국이라고 불렀는데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자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심한 터치가 없었고 PX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같이 온 동기들은 다들 좋아했다. 여기서는 기본적인 것들만 지키면 굳이 터치를 하지 않았기에 심적으로 편해졌다.


해결책이 보였다


무릎은 붓기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계속 통증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군의관 진료를 봤었다. 훈련소와는 달리 군병원에서 진료를 보았다. 군병원? 이런 병원이 있는 줄도 몰랐던 나는 생각보다 큰 군병원 규모에 놀랬다. 그렇게 군병원 안에서 군의관 진료를 보았는데 그래도 정말 다행이건 사무적인 훈련소 군의관과는 달랐다.


충성! 인사를 하면서 지금까지의 상황과 사태를 이야기하니 MRI를 찍어봐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MRI? 처음 듣는 단어였다. 지금까지 검사라고는 X-ray가 전부였기에 MRI를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어보니 기계는 한 대고 대기 장병들이 많아서 2주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아... 군의관님 2주 뒤면 저는 자대에 배치받아 자대에 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만 자대에 배치받고 MRI를 찍어보는 수밖에 없겠는걸...


처음으로 지금 이 상황을 좋게 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는데 지금 해결할 수 없다니... 정말 암담했다. 그래도 희망적인 게 해결책이란 게 생겼기 때문에 나쁘지는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훈련소 군의관의 사무적인 표정도 이해가 간다. 매일매일 수많은 훈련병의 진료를 봐야 하고 아픈 이유도 워낙에 다양해서 한 명 한 명에게 진심으로 진료를 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을까... 30살 넘어가며 그때 군의관의 심정이 이해는 가지만 20살 초반의 나는 그런 여유도 없었고 그럴 이유 또한 없었다.


그렇게 해결책을 찾은 나에게 걱정스러운 일이 생겼다. 그건 부모님께서 면회를 오신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