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병원에서 무릎 수술하고 6개월 입원한 이야기 (2)
2달 만에 만나게 된 부모님은 아들 걱정이 많으셨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아들 된 입장에서 차마 무릎이 아프다고 말하기가 힘들었고 결국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절뚝거렸던 나를 어머니께서 유심히 보셨고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셨다. 아뿔싸... 3주 정도 통증이 지속되면서 절뚝거리는 게 버릇이 되었나 보다... 어머니의 질문에 아프다고 하지는 못하고 단순한 염좌며 약 먹고 있으니 걱정 마셔라 하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속은 타들어갔다.
면회는 어찌 그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달콤한 시간은 끝나고 부모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다시 주특기 교육을 받으면서도 무릎은 아팠지만 어찌어찌 시간은 흘러 자대 배치를 받게 되었다. 운이 좋았던 걸까? 배치받은 자대는 집에서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곳이었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훈련소에 들어가서 이왕에 가는 군대 열심히 하고 자대 배치도 전방에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몸이 아프니 그런 생각은 쏙 들어갔다. 사람은 참 간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배치받은 자대에는 정작 교육받았던 주특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배정이 되었는데 이럴 거면 왜 주특기 교육을 받았는지... 이제 군대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지만 무릎 통증은 그대로였고 자대에 오면서 나는 일종의 관심 병사가 되었다. 무릎의 통증으로 인해 군화 대신 운동화를 신는 조치를 받았고 이등병 입장에서 정말로 눈치가 엄청 보여 제대로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아침 구보조차 빠지는 상황이니 선임들의 눈치가 엄청 보였다. 그만큼 외적으로 더 열심히 하여 적어도 미움은 받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어서 필사적으로 이등병 생활을 했던 기억이 난다.
군대에 오기 전 목수였던 경험을 살려서 소대 책상 수리부터 중대 작업을 맡아서 했었던 나는 필사적이었다. 통증보다도 눈치가 더 아프고 따가웠기 때문이다. 열심히 한 덕분인지 무릎은 아파도 열심히 하는 이등병이 되었고 그러면서 군 병원에 자주 진료를 받으러 갔다.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약을 먹어도 호전이 되지 않았다. 일주일에 2번 받는 물리치료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호전되기를 바랐는데... 그러지 못한 사실이 실망스러웠다.
군 병원에 4번 정도 갔을까? 군의관이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사실 군 병원에 와서 첫 진료 때 MRI를 찍어보라고 전 군 병원 군의관의 그랬다 하면서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MRI를 찍으려면 적어도 2주 정도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 기계는 한 대이고 찍기를 기다리는 장병은 많고... 나는 나처럼 군대에서 다치고 부상 입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었다. 친척 형이 했던 몸만 건강히 전역해라!라는 말이 왜 자꾸 기억이 나는지...
그렇게 MRI는 한 달이 지나서야 찍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100일 신병 위로를 가야 하는 시기가 왔고 약간은 들뜬 마음에 무릎 통증도 잠시 잊혔다. MRI 결과는 휴가 복귀 후에 듣기로 하고 들뜬 마음에 집으로 갔다. 하지만 그렇게 좋았던 휴가는 아니었다. 집에 가면 뭔가 이 상황이 해결되리라는 근거 없는 생각이 없잖아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집에 왔다고 이 상황과 심란한 마음은 해결되지 않았다. MRI 결과가 안 좋으면 어쩌지? 이대로 군 생활 계속 눈치 보면서 생활해야 하나? 등의 생각을 하면서 잠을 설쳤다. 차마 부모님께 모든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 이야기하면 뭔가 뒷수습이 안될 것 같았기에 무서웠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는 모든 게 처음 겪는 상황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던 게 아닐까 한다.
그렇게 첫 휴가를 복귀하고 다시 찾은 군 병원에선 군의관으로부터 MRI 결과를 듣게 되었다. 무릎 연골이 찢어졌으니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멍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지내왔고 남들 가니까 갔던 군대에서 겪은 이 상황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진료를 마치고 먼저 소대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전화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전화를 한 건지... 신기하다. 정말 공중전화 앞에서 전화번호를 누르지 못하고 1시간 가까이 왔다갔다 한 기억이 생생하다.
결국 군 병원에서 수술을 하기로 했고 그렇게 인생 첫 수술을 군대에서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