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아둔 마음

by Ben

B에게.


내가 아닌 A입니다, 당신이 탓했어야 할 대상은.

모든 시작은 A의 철없는 행동에서 비롯됐습니다.

고작 보름 동안 남의 월세집에서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계획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이기적인지 당신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떳떳한가요?

당신이 고양이를 떠맡은 순간, 책임은 당신에게 넘어온 것입니다. 당신도 곧 떠날 예정이었다면서요. A가 당신 몫의 월세를 덜 받아서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죠. 그렇다면 그 순간, 이미 당신은 고양이를 맡는 대가를 받은 셈입니다.


당신이 내게 고양이를 맡기며 함께 내민 개봉된 작은 사료 한 봉지에서 당신의 그릇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고양이를 실외에서 키우는 것에 대해 원색적으로 욕했던데, 그 '실외'에 고양이를 두고 간 사람이 당신 본인이었음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당신은 A와 다를 바 없습니다. 각자의 위치를 이용해 책임을 떠넘겼고, 그 책임의 무게를 나에게만 지우며 갑질했습니다.


지금쯤 당신은 서른 중반이겠네요. 어떤 일을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을 상대해야 할 일이 있을 겁니다. 그때 당신은 비로소 깨닫게 되겠죠. 그 시절 자신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무책임했는지를요.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같은 하늘 아래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고 분노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당신이 꼭 알았으면 해서입니다. 당신이 기억하든 못하든 이 글은 여기 남아 당신에게 읽히길 기다릴 것입니다.


매 순간 당신에게 돌아오는 부메랑을 마주하길 바랍니다.




화 많은 내향인으로 숙박업과 그에 딸린 작은 분식집을 함께 운영했다. 결과가 어떨지 너무 뻔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걸 몰랐다.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디에나 그렇지 못한 소수가 있는 법이다.


카톡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장사를 계속하려면 참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고의적인 악플에 속 시원하게 반박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가 부르면 따끔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온몸을 훑었다. 후기가 새로 달렸다는 알림을 받는 것이 공포가 되던 때였다.


남편에게 부탁했다. 나 좀 살려달라고.

그렇게 꼬박 4년을 집에만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원인이 기억나지 않지만 B와 C만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이 두 사람이 특별히 더 악질이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제대로 대꾸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집착하게 되면서 점점 더 깊게 사 묻혔을 뿐이다.


B와 A는 이 도시의 한달살기 여행객이었다.

B는 A의 월세집에 단기로 입주하기 전까지 우리 손님이었다. A는 떠나기 보름 전, 길고양이를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결국 룸메 B에게 고양이를 떠넘긴 채 예정대로 떠났다. B는 자신도 곧 떠나야 해서 곤란했지만 자신몫의 월세를 덜 내서 거절하지 못했다.


우리 업장에 고양이를 담은 박스를 들고 왔다. 밥만 잘 챙겨달라고 했다. 식당이라 털짐승이 부담스러웠지만, 옥상에서 키우면 될 것 같아 그곳에 두시라 했다. 박스를 들고 계단을 올라간 B는 이내 빈손으로 내려와 인사를 하고 떠났다.


고양이가 적응을 하면 인연으로 삼기로 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얼굴을 비추고 더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있었다. 우리 상호를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한 블로그글에서 내 욕을 보기 전까지.


그 글은 나를 탓하는 내용으로 시작해서 내 욕으로 끝나고 있었다. A에 대한 짧은 언급과 함께, 자신이 고양이가 다시 길로 돌아가게 된 것을 얼마나 안타깝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고양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나의 무책임한 행동에 화가 난다고 했다. 어떻게 고양이를 실외에 두냐며 야만적이고 무식하다고 했다.

돌려주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나는 또 삼킬 수밖에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댓글창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C는 경쟁업체의 장기투숙객이었다. 그곳에서 매니저 역할을 한다고 누군가 귀띔해줬다. 우리 집에는 방을 살펴보러 주기적으로 방문했다. 새로 투자한 시설이 있는지 손님으로 가장해 살피러 오는 것이었다.

식당손님으로도 자주 왔는데, C는 항상 같은 음식을 먹었다. 그날도 같은 음식을 내주고 나는 홀 구석의 테이블에 앉았다.

C는 나를 등지고 일행과 나란히 앉아있었다.


C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이게 음식이냐? 풉"

C의 일행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거기 계시네요."


나를 향해 살짝 돌린 C의 옆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했다. 나도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숙였다.

한마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만 하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안녕히 가시라고 했다.


"매번 그런 마음으로 저희 음식을 드셨나 봐요. 고생하셨네요. 그리고 죄송합니다. 더 이상 음식 안 팔겠습니다."


나는 왜 말하지 못했을까. 뭐가 그리 무서웠을까.

내가 삼킨 이 말은 C에 대한 미움보다는 내 소심함에 대한 실망으로 남아있다. 나를 향한 채찍이었다.


채찍에 패인 상처투성이 마음으로, 십 년도 더 지난 이제서야 나는, 쌓아둔 나쁜 마음을 꽁꽁 뭉쳐 저 멀리 내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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