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것보다 도서관의 책 냄새 가득한 서가 사이를 거닐며 책등의 제목을 읽는 게 더 좋았다.
도서관 창으로 스미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심리학 통로, 한국문학 통로를 기웃거리다 마음에 드는 제목의 책을 뽑아 든다. 목차를 훑고 다시 제자리에 꽂는다. 목차까지도 마음에 드는 책을 찾을 때까지 반복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선택된 책은 현관 앞에 잠시 머물다 그대로 되돌아갔다. 2주마다 그 시간을 갖기 위한 나의 작은 의식이었다.
아이가 생기니 이런 낭만은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종합자료실 입구에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낮추고 말한다.
"조용히 해야 해."
끄떡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가 책을 반납하고, 머릿속에 정해놓은 책을 검색해 들고 나오는 데는 채 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압박감에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종합자료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점점 뜸해졌다.
햇살 좋은 어느 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랜만에 도서관으로 향했다.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책등을 눈으로 좇는데, 저 멀리 앉아있는 사서가 눈에 들어왔다.
'저 자리에 앉아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취업 적령기를 훌쩍 지났지만,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은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과 함께 하는 일이라니, 그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서시험에 응시하려면 문헌과 학위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본시험 공부도 아니고,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 대학을 다시 가는 일은 넘어볼 엄두도 안나는 높은 벽이었다.
그렇게 도서관에 못 이룬 꿈하나를 남겨두었다.
이사를 하면 우선 구립도서관부터 찾아본다. 집에서 가까운 작은 도서관들도 잊지 않고 챙긴다.
새로운 도서관의 문을 열면 책냄새가, 햇빛이 나를 반긴다. 그곳에 들어선 나를 포근히 안아준다.
따뜻한 빛으로 스며드는 순간.
도서관은 삶의 작은 쉼표가 되고, 다시 꿈을 꾸게 한다.
이것이 나의 낭만이다. 도서관을 향한 나의 찬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