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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Oct 01. 2018

선택의 갈림길에서

인생은 선택이라는 점들이 연결되어 완성되는 하나의 그림인 듯하다.
순간의 선택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순간순간 좋은 자리에 놓인 점들이 모여 한 폭의 멋진 그림을 만들어내고

잘못 놓인 선택의 점들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어그러진 그림을 그려낸다.


인생은 선택이라는 수많은 점들이 이어져
만들어낸 한 폭의 그림인 듯하다.


매일매일 직면하는 작은 선택부터 인생의 큰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까지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들은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늘 마주하게 되고
때로는 별거 아닌듯한 작은 선택 하나로 인생의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선택의 갈림길 속에서 늘 헤매는 이유는 그 선택의 길 끝에서 마주할 내일을 알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확실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선택이기에, 선택 이후에 펼쳐질 결과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기에 

현재라는 지극히 제한된 시선 속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읽어내야 하기에

그래서 선택은 늘 두렵고 떨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에, 그 뒤에 펼쳐질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선택은 늘 두렵고 떨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
그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한다.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은 기르는 가축의 수가 늘어나고 한정된 목축지를 두고 다툼이 빈번해지자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음을 깨닫고 롯을 불러 이야기한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그러자 롯은 눈을 들어 요단 동쪽을 바라본즉 온 땅에 물이 넉넉하기에 목축하기 좋아 그곳을 선택한다.
그가 그 땅을 보고 얼마나 설레었는지 성경은 잘 표현하고 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 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 13:10)


롯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누가 보아도 좋은 땅,
가장 풍요로운 그 땅을 선택하고 떠나간다.


아브라함의 눈에도 롯이 선택한 땅의 풍요로움이 보였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거둬 키운 조카 롯보다 충분히 먼저 가야 할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롯에게 먼저 선택의 기회를 내어주었고

롯은 그 선택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누가 보아도 합리적인 결정을 했다.


롯의 선택의 기준은 자신을 가장 부유하게 할 수 있는 곳, 목축하기 가장 좋은 땅이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땅 소돔은 사람들이 악을 행하여 그분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

훗날 룻이 선택한 땅 소돔과 고모라는 계속된 죄악으로 불심판을 받게 되고

롯은 아브라함의 도움으로 겨우 몸만 빠져나오게 된다.
롯의 아내는 두고 온 땅과 재물에 미련을 갖고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어버리고 만다.


가장 좋은 길이라 여겼던 롯의 선택은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마주했고
오히려 버려진 선택지를 집어 든 아브라함에게는 바라보는 모든 땅을 주겠다는 그분의 약속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누린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4~15)


가장 좋은 선택을 한 롯은 불심판의 비참한 결과가
버려진 선택지의 아브라함에게는 모든 땅을 받는 축복을 누린다.


롯이 미래를 보는 눈을 갖지 못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것도
아브라함이 높은 통찰력과 선견지명이 축복의 길로 인도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선택의 기준이 달랐을 뿐이었다.

자신의 소유를 어떻게 더 확장할 수 있을 것인가가 선택의 기준이었던 롯과

조카 롯과의 분쟁을 피해 먼저 선택권을 내어줌으로 그분의 마음을 흡족게 한 아브라함의 선택

 

아브라함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들, 지금 손에 쥐지 않으면 달아나버릴 것 같은 것들이 
선택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의 내일은 그분에게 달려있기에 모든 선택의 기준은 그분의 시선이어야 한다는 것을


어떤 선택을 하는가, 어떤 길로 들어서는가 보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그분은

나의 어떤 선택에도 그 결과를 능히 뒤집을 수 있는 권능이 있기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보다, 내가 어떤 길로 들어서는지보다
이 길이, 이 선택의 기준이 그분의 시선과 동일한가에 집중해야 한다.


오늘 나의 선택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

눈앞에서 흩어지는 수많은 세상의 가치들이 아깝지 않은 이유는 

내 마음의 중심을 아시고 미쁘게 여기사 나의 내일이 두렵지 않게 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그분에게 달려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선택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
늘 선하신 그분이 나의 내일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어떤 길이 좋은 길인지 고민하기보다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가에 집중한다면
고민의 답은 의외로 쉽게 나올지도 모른다.

선택이 두려운 이유가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이라면

그 결과를 보장하시는 그분의 능력에 기대어

담대한 첫발을 내디뎌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분은 늘 선하시기에, 그분은 전능하시기에
그분은 날 목숨보다 더 사랑하시기에
선택의 순간 보이지 않는 불안이, 알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이

더 이상 나를 멈춰 서게 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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