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로 Jun 24. 2017

이별, 그날 이후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때 그 기억이, 그 감정이 조금씩 흐릿해질 만큼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는 그 흔하디 흔한 위로가 진리임을 깨닫게 해 줄 만큼



알아, 언젠가 잊을 거라는 거, 언젠가 잊힐 거라는 거
그게 위로가 되면서도 또 그게 슬프기도 해
                   - JTBC 드라마 '청춘시대' 中 -



그날의 기억이, 지금의 감정이 더 흐릿해지기 전에 글로나마 기억해두고 싶었다.
아직도 내겐 아픈 기억이며,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간이기도 한 그날이지만
그 또한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었기에 이렇게나마 그때의 나를 남겨두고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텼을까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
오늘 밤만큼은 꿈에서만이라도 떠오르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잠을 청했고
사람들로부터 전해져 오는 그녀에 대한 소식 하나하나가 나를 더욱 비참하게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끝나지 않을 거라 굳게 믿었던 그 사랑에 대한 나의 오만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렇게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난 보통의 연애를 했고,
흔한 이별을 했다.


어쩌면 그날의 이별은 흔하디 흔한 이별이었고,

30대 청춘이 겪는 열병 중 하나일 뿐이며, 수많은 노래 가사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뻔한 스토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흔하디 흔한 이별이 내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고,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새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흐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들은 조금씩 흘러갔고

정신을 조금 차릴 때쯤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해야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나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생 해본 적 없는 다이어트와 운동을 시작하고,

평소에 관심도 없던 패션에 변화를 주기 위해 백화점 이곳저곳을 배회하기도 하고,
마셔본 적 없는 쓰디쓴 에스프레소와 술 한잔에 고통을 덜어내는 법도 배우기 시작했다.


목공을 하며 나무가 알려주는 더딤의 미학으로 마음을 다스려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며 온 정신을 쏟아보기도 했다.
여러 모임을 쫒았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고통을 지워보려도 했고,

이렇게 글을 통해 내 감정, 슬픔을 옮겨 적으며 스스로를 달래보기도 했다.


이별을 고통이란 단어에 가두지 않기 위해
달라져야 했다.


달라져야만 했다.
그것이 스스로를 설득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별이란 시간을 고통이란 단어로 한정 지어 버리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술에 취한 듯, 무언가에 홀린 듯 흘려보내고 나서야
그때의, 그날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열어볼 용기가 생겼다.


한때 정말 사랑했던 그 사람, 때론 많 미워도 했던 그 사람이지만

지금 내가 그리운 건 그 사람도 그 사랑도 아닌

그저 그때 내가 느낀 감정 그리고 추억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망각이란 선물을 조금 일찍 마주하고 싶을 뿐이다.


인생이란 커다란 노트에
한편의 짧은 소설이 끝났을 뿐이다.


누군가 말했다.
연애는 인생이라는 두꺼운 노트에 한편의 단편소설을 쓰는 일이라고,
그렇게 난 한 편의 소설 마지막 장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젠 또 다른 소설의 첫 문장을 써 내려갈 준비를 해보려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