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로 Jun 27. 2017

사랑의 권리와 의무에 관하여

어떠한 법적 구속력도 없이, 상호 서명된 계약서 한 장도 없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연인이라는 단어로 상대에 대한 포괄적 권리를 갖는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것을 이상하다 여기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건
나에 대한 포괄적 권리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누군가의 연인이 된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는 

나에 대한 포괄적 권리를 상대에게 허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에 대한 포괄적 권리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갖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 관계의 형성이며, 이유 없는 권한의 행사이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상대에 대해 이유 없는 포괄적 권리를 가졌기에

상대가 그 권리를 이유 없이 박탈할 때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의무를 동시에 지닌다.    

그 이유가 타당하고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갑작스럽고 아직 준비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상대의 요구에 응해야 하는 의무를 동시에 지닌다.


노여워할 것도, 내 권리를 주장할 이유도 없다.

원래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었기에, 내가 아무런 대가 없이 지닌 권리였기에

그저 이유 없이 받은 권리를 지키지 못했기에 더 이상 상대가 나에게 그 권리를 허락하지 않았기에

내가 가졌던 권리를 내려놓아야 할 뿐이다.


그에 대한 포괄적 권리,
그것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함에 있어, 상대에 대한 포괄적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사랑이, 행복이 상대에 대한 포괄적 권리가 원래 내 것이 아니었음을

내가 아무런 대가 없이 가진 것임을 그래서 더 감사하고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상대가 그 권리를 더 이상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을 때, 억울해할 것도 서글퍼할 것도 없다는 것을

내게 허락됐던 그 순간이 아름다웠고 행복했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괜찮았던 것이었음을

그가 나에게 허락한 시간이 거기까지였고 내가 가진 그 시간이 후회 없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내게 허락된 순간이 아름다웠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랑, 누군가에게 나에 대한 포괄적 권리를 허락하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포괄적 권리를 소중히 하는 것

그리고 어떠한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 암묵적 허용을 행복하게 누리는 것

그가 허락한 시간이 다했다면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그러한 과정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별, 그날 이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