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너머의 배

9화

by 에르네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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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우는 이집트 남부, 아스완 근처의 필라에 섬에 도착했다. 이곳은 고대 이시스 신전이 자리한 곳으로, 물과 생명, 그리고 죽음의 경계에 놓인 신성한 장소였다. 나일강 물결은 섬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고,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고요한 침묵이 퍼져 나갔다.

이시스 신전은 하늘과 땅, 태양과 달 사이의 균형을 지키는 여신을 위한 사원이었고, 그 벽화들은 우주의 조화를 표현하고 있었다. 현우는 천천히 안쪽 회랑을 돌며 문양을 살폈다. 그중 하나, 반쯤 무너진 기둥의 한쪽에 낯익은 도형이 보였다.

‘태양의 배와 달의 왕관, 그리고 그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뱀.’

그는 숨을 들이켰다. “여기에도 있군...”

현우는 석판을 따라 손끝으로 문양을 더듬었다. 희미하지만, 그것은 분명 다른 문명들과 연결된 패턴이었다. 그는 뱀의 곡선을 따라가며 중얼거렸다. “밤의 하늘, 혹은 죽음의 세계를 건너는 길. 그것이 배의 항로라면... 뱀은 그 강이자 경계였던 거야.”

그는 곧 신전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관광객들이 잘 오지 않는 그늘진 통로였다. 그곳에는 오래된 부조 하나가 남아 있었고, 그림자는 그 표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그림자를 젖히듯 손전등을 비추자, 뱀 형상이 또렷이 드러났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한 뱀이 아니었다. 입을 벌리고 해를 삼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치 일식을 상징하는 듯했다.

“해를 삼키는 뱀...” 그는 조용히 기록을 남겼다. “이건 단순한 신화가 아니야. 이건 천문현상을 기록한 거야. 해가 사라지는 순간, 인간은 죽음을 떠올리고, 신화를 만들었다.”

그는 일식의 주기를 조사하기 위해 인근 대학의 고고학부 교수와 미팅을 가졌다. 교수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정교한 일식 예측 능력을 가졌으며, 그것이 종교 의식과도 깊이 연관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날 밤, 현우는 호텔 방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별들이 조용히 깜빡이는 가운데, 그는 종이에 새로운 선 하나를 그었다. 일식, 죽음, 재생. 모든 개념이 ‘순환’이라는 하나의 구조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두려움을 통해 질서를 만들었고, 그 질서를 상징으로 새겼다. 나는 그 그림자를 따라 걷고 있다.”

지도 위 필라에의 위치가 붉은 잉크로 표시되었다. 삼위 문양은 더욱 선명해졌고, 미지의 연결점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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