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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노 Feb 27. 2020

신념, 가지고 싶은 그 이름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서평

서초의 한 법무법인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어언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여느 때와 같은 어느 날, 변호사님 책장에 꽂혀있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의 책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이었는데, 평소 아버지를 제외한 롤모델이 마땅히 없었기에 그 유명한 김영란 판사님을 본받아볼 심산으로 책을 빌릴 수 있었다.


하지만 변호사님은 그 책 말고도 또 다른 한 권을 나에게 권해주셨다. 그 책은 바로 조영래 변호사님의 글 모음집인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였다.



신념이 주는 멋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자신 있게 그를 내 롤모델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영래 변호사님이 일생 겪어왔던 사건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백하게 담겨있는 사설들이 책을 통해 쭉 나열되기 때문이다.


조영래 변호사님은 독재정권 때 권리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셨던 인권변호사였다. 모든 법의 상위개념인 헌법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장치라고 하니, 그는 정말 참된 법조인이라고 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YTPL_O-BiI

조영래 변호사를 유명하게 만들어줬던 사건 권인숙 사건


하지만 헌법을 실현하고 산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떤 의미일까?


사실 헌법적 가치라느니 인권이라느니 이런 류의 단어가 우리에겐 정말 멀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뭔가 헌법이라 하면 추상적으로 들리고 나랑은 관련 없는 이야기 같이 들린다. 하지만 호기심에 잠깐 공부해본 헌법은 생각보다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헌법의 본질은 모두 우리가 우리들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 법조문들이 이대로만 실현된다면 정말로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일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안타깝게도 내가 짧게나마 살아본 우리 세상은 그렇게 공정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직 상식보다는 권력이 더 강한 세상인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래서 아직은 바꿀 수 없다며 시스템에 순응하곤 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면을 가져서일까? 옳지 못한 것을 보고 과감히 몸을 던지시는 조영래 변호사님의 모습은 존경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다. 정의롭지 못한 것이 판치는 세상에 헌법의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앞세우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남을 돕는 게 얼마나 멋있게 보였는지 모른다. 


더 놀라운 건 그의 배경이었다. 무려 서울대 법대 수석 입학을 자랑하는 소위 "미친 스펙"의 소유자였다. 요즘은 학벌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그 당시 사법고시 합격생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기 최적의 조건을 가졌을 것이다. 눈 딱 한 번만 감으면 권력에 돈에 줄줄이 그에게 딸려 나왔을 텐데, 그는 그걸 다 거절하고 자신이 떳떳할 수 있게 사는 것을 길을 택했다.


모든 학생의 로망, 샤대


요즘 미디어에 비치는 변호사의 모습은 정말 기대 이하이다. 돈독은 오를 대로 오르고, 억울한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착취하는 냉혹한 변호사의 모습들. 심지어 법무법인에서 일하면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상대로 소송을 하다 보면 그 씁쓸함이 두 배는 되어 다가왔었다.


그랬기에 그런 유혹이 훨씬 강했을 70~80년대 한국에서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물질적인 행복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믿을 수 있는 인생을 사는 게 얼마나 멋있는지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책 뒷부분에 나오는 추모사 부분은 이런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들어줬다.



내 삶의 기준은 뭘까? 


조영래 변호사님은 40여 년의 짧은 생을 뒤로하고 유명을 달리하셨다. 책 뒷부분은 그의 주위 사람들이 그를 위해 집필한 추모사를 모아놓았는데, 이 부분을 정말 인상 깊게 읽었다. 조영래 변호사님이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권변호사로서의 삶은 10년 남짓 되었을까 하는데, 그를 향한 추모사는 한평생을 온전히 다 살아오신 분들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추모사만 보아도 그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녹여질 정도로 한결같았다. 


그 누구에게나 털털했다고 알려졌던 조영래 변호사님


나는 모든 인간은 다양성을 가진 인격체라고 생각한다. 여러 다른 사회에 속하면서 여러 면을 속으로 지니고 산다. 나도 그 예외가 아니다. 나는 표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끔은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헷갈리기도 할 정도니 말이다.


그랬기에 한결같이 같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조영래 변호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내 나름대로 다짐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나가기. 그리고 그것에 맞게 살기"였다. 팔랑귀인 나에겐 아마 평생 해야 겨우 이룰 수 있는 과업일 것이다.


아직 나는 조영래 변호사님과 달리 나만의 확실한 기준도 미약하고, 그렇기에 캐릭터도 약간 애매하다. 특히 요즘 들어 자기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사시는 분들을 주변에 많이 두다 보니 캐릭터의 부재는 항상 아쉬움으로 다가왔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제서야 롤모델은 찾은 것도 나만의 기준이 그만큼 옅었던 것을 입증하는 사례라고도 생각한다. 


그래도 따지고 보면 아직 20대가 아닌가? (물론 반오십은 이제 넘겨버렸지만...) 조영래 변호사님의 일생을 보면서 앞으로 어떤 기준을 살고 살아갈지, 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그 자체를 고민해볼 수 있었던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나 자신을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 분명 아직도 많을 것이다. 법조인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그런 고민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본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나만의 기준을 가진다는 게 얼마나 멋있는지 조영래 변호사님을 통해 다시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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