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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노 Feb 29. 2020

심플한 사람이 본 복잡한 이들의 연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나는 심플하다.


이제는 심플함의 대명사가 된 영화 <기생충>의 조여정(나는 이정도로 심플하진 않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성격 덕에 정말 낙천적이다. 때론 너무 현실적이지 못할 정도로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기도 한다. 주변 친구는 답답해하지만 나는 이런 나 자신이 좋았다. 그랬기에 이 심플함을 굳이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 좋다고 이렇게만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남과 교류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나보다 복잡한(혹은 성숙한) 사고 과정을 거치는 사람과 만나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실제로 수년 전, 나와 타인의 차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복잡한, 혹은 다른 생각 구조를 가진 사람을 이해하느냐고 이해심 깊기로 유명한 친구에게 물어봤었다. 그때 친구는 나에겐 뜻밖에 조언을 해주었다. 


그것은 바로 소설책 읽기였다. 소설에서 나오는 인물들도 다 현실세계에서 모티브가 된 대상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작가들이 묘사해놓은 그들의 속마음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 구조 또한 볼 수 있다고 조언해줬었다.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조언이 정말 들어맞았음을 곧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분명 진부한데... 왜 신선하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은 주인공 "나"와 그의 연인 "클로이"의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두 남녀가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교감하다가, 이내 시들어가는 둘의 사랑. 내용 자체만 보면 정말 진부하기 짝이 없다. TV 프로그램으로 상영된다면 작가의 귀가 간지러워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소설을 읽으면서 지루할 틈을 느끼지 못했다. 단순하게 축약된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나와는 달리, 주인공 "나"는 정말 입체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가 철학과를 졸업해서인지 몰라도, 그의 페르소나인 "나"는 복잡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극히 일상적일 수 있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물음까지 던진다. 그런 시점으로 사랑을 경험해보니 진부하다고 느낄 틈이 없어졌던 것 같다.


대충 봐도 철학가 관상을 가진 글쓴이, 알랭 드 보통


물론 읽으면서 이런 "나"가 피곤하게 다가온 적도 있었다. '아니, 상대가 나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있지. 무슨 마르크스주의니 뭐니 하면서 왜 그 상대의 자질을 의심하지?' 등과 같은 생각 말이다. 또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철학자의 이름들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머리가 지끈거리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사랑, 나아가서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심플한 사고를 가진 나이기에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가끔씩은 불편하지만 남에게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리고 이 소설의 "나"의 속을 들여다보면서 '아,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어쩌면 이런 것 때문에 나에게 다가온 게 아녔을까?' 하는 순간을 몇 번 겪을 수 있었다.



적당히 복잡하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 걸


가장 신기했던 부분은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와 그 책의 주인공 "나"가 느끼는 감정은 매우 달랐다는 점이다. 분명 비슷한 사건을 읽고 경험하는데도 말이다. 보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것인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나"의 입체성 덕분에 동일한 것을 목격했을 때에 느끼는 바가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라면 '어? 뭔가 이상한데?' 싶었지만 쉬이 설명하지 못했던 감정을 "나"는 말로써 풀어냈고, 독자인 나에게 그 감정을 이해시켰다. 그런 점에서 사람이 적당한 입체감도 필요할 것 같다는 당위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알랭 드 보통이 만들어낸 주인공 레벨의 입체성까지는 잘 모르겠다. 반 오십여 년을 무념무상으로 살아온 심플의 대명사 나한테는 그 생각이 과도하다 느낄 때가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항상 심플하게, 세상 걱정 없이 살았던 나도 이 책을 통해서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넘쳐난다.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 타인과 교감할 때에도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들뜬 희망감에 기대가 된다.


결국 공부인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미천한 나의 지식으로는 어떤 것이 나라는 자아에 입체감을 줄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친구의 조언대로 소설을 읽으며 타인의 속마음을 들춰보는 것이 전부이려나. 아니면 이 참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주인공처럼, 혹은 알랭 드 보통처럼 철학책을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이 글을 읽으신 지식인 분께서는 나에게 입체감을 실어줄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해준다면 정말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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