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왕초보가 몇 년 째 허우적대기만 하는 이유
"나는 OO이 어렵다"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정말 그것을 해 내는 것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어렵다는 뜻이다. 두번째는 그것에 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깜깜하다는 뜻이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이다.
예를들어 "나는 수학이 어렵다"라는 말을 하는 두 고등학생이 있다고 쳐보자. A와 B이다. A와 이야기를 해 보니 이렇게 대답한다. "미분과 적분의 개념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는데요. 이게 기본 개념을 한번 이상 꼬아서 만든 응용문제의 경우에는 제가 자꾸 틀리더라고요. 요즘 수학이 너무 어려워요". 옆에 있는 B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한다. "아 수학 진짜 어려워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설명해줄 때 마다 멍때리고 짜증나요."
A와 B의 차이를 알겠는가? A와 B는 둘 다 수학이 어렵다고 말했다. 둘 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A와 B의 차이는 정말 크다. 장담컨데, 시간이 지나면 A의 성적은 점점 오를 것이고, B의 성적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낮아질 것이다.
A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아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을 공부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어떤 부분을 도움 받으면 되는지, 자신의 공부 시간 중 얼마나 이 부분에 대해 시간을 투자할 것인지 등 전략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B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있다. 그래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전략을 구상할 수 없다.
A와 B가 둘 다 미로 안에 있다고 친다면, A는 불이 켜진 채, 지도를 그려가며 미로를 빠져나가고 있고, B는 불이 꺼진 채로 아무런 기록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왔다갔다 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공부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이 글의 소제목을 보고 들어왔다면, 당신은 영어 공부에 대해 어느정도 고민이 있을 것이다. 영어는 당신에게 어떻게 느껴지는가? A처럼 어느 부분이 어렵고 막히는지 알고 있는가, 아니면 B처럼 그냥 깜깜한 채로 어렵게만 느껴지는가?
내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을 '메타인지'라고 한다. 메타인지가 잘 되어있는 사람은 앞으로 공부에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메타인지가 잘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앞으로의 공부에 전략을 세울 수 없고 제자리를 맴돌 수 밖에 없다. 메타인지가 잘 안되어있다면, 내가 앞으로 꼭 알아야 할 것들의 리스트를 보고, 전략들을 세워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영어 왕초보는 "내가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의 리스트"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허우적대기만 한다. 그렇다고 어떤 강사나 학원에 딱 붙어서 가르쳐주는대로 성실히 공부하며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없다. 나만의 시간이 날 때 스스로 공부하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때는 분명 지도가 필요하다.
어떤 지도를 가지고 내가 뭘 모르고 뭘 아는지 체크할 수 있는가?
딱 잘라 말할 수 있다.
중학교 1학년 수준의 문법책을 하나 사서 목차를 봐라.
일단 영어 왕초보를 탈출하는게 목표이다. 그렇다면 중학교 1학년 수준의 문법적 지식만 가지고 있어도 가능하다. 물론 중학교 1학년 문법책에는 쓸데없이 자세하게 들어가는 부분도 있고, 더 자세히 다뤄야 할 것들이 대강대강 다뤄져 있는 것들이 많다. 그렇지만 상관 없다. 지도가 얼마나 정확하냐를 따질 때가 아니라, 지도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니까.
중학교 1학년 수준의 문법적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 모든 영어 문장들과 표현들을 알 수 있는가? 물론 그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인공적으로 공부를 해서 영어 체계를 세우는 노력은 중학교 1학년 수준 까지만 하면 된다. 여기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오늘 쓰고자 하는 글의 주제와 멀어지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이 비밀은 정말 중요하면서도 간단하다. 나중에 한번 다뤄보겠다.
중요한 것은 "나는 아무것도 몰라"라고 하는 "겸손함"이 아니다.
정확하게 "나는 '이것'을 몰라"라고 말할 수 있는 정확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