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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격리된 어느 날 밤, 나를 만나다.

내가 나이기 위해서 _ 직면 #0

by Benn

어젯밤에 안 오는 잠을 붙잡으려 노력하며 공황장애에 대한 유튜브를 보았다. 요즘 나의 공황, 또는 불안은 원담이에게 닿아있으니까. 그리고 저저번 주에 부모님이 싸우는 것을 다시 겪으며 내가 다른 것보다 원담이가 유독 힘든 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채로 일상이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것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뿌리가 부모님의 싸움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참이었다. 이 두 가지 모두 이미 알고 있던 거였는데, 뭐가, 뭐가 그리 아팠을까? 뭘 새삼 깨달은 걸까 눈물이 흘렀다. 나는 과거 10살 때부터 부모님이 악을 악을 쓰고 싸웠던 기억을 그저.. 덮어두고만 있었지 거기서 단 한 발짝도 헤어 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작년 가을 제주도에 혼자 갔을 때 명상을 하면서 그 열 살 아이를 데리고 한 번 도망친 적이 있었다. 내가 지켜줄게 하고. 나는 이제 힘이 세. 하고. 그런데 막상 서른 두 살인 나는 부모님의 버럭버럭 하는 싸움에서 나를 지키기가 힘겨웠고 (물론 이번에는 처음으로 싸우는 부모님에게 화가 났다. 지금까지는 화조차도 나지 않았다. 그저 무서웠고 숨고 싶었고, 아무렇지 않은 척 피해왔으니까.) 서른두 살의 나도 이렇게 힘든데 열 살, 열네 살, 열일곱 살의 나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그게 서럽고, 또 억울해서 울었나 보다.


사실 나도 안 싸우는 부모님 밑에서 크고 싶었다. 나도 폭력적이지 않은 안전한 환경에서 크고 싶었다. 에어컨을 끄고 켜고, 창문을 열고 닫고, 이번 횡단보도에서 건널지 다음 횡단보도에서 건널지를 가지고 끝간데 없이 버럭버럭 싸우는 부모님 밑에서 크고 싶지 않았다. 설사 두 부모님이 싸우는 이유가 저렇게 사소한 게 아니라 외도나 거짓말처럼 아주 심각한 일일지라도 그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무력한 상태로 목격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 아빠도 싸우는라 많이 힘들었겠지만 엄마 아빠는 어른이었다. 자라는 아이들이 그걸 보고 얼마나 상처받고 트라우마가 될지는 생각 못한 걸까. 나는 서른두 살에 일상적인 상황에서 자해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도망치고 싶어 진다. 너무 무섭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 아이는 열 살인데, 내 마음속에선 나도 똑같이 열 살 아이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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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울고 나니, 그런 나는 어떡해야 하나 싶었다. 당장 부모님한테 전화하거나 문자해서 따지고 싶기도 했는데, 그랬을 때 부모님이 받을 상처도 상처지만 부모님의 반응에서 내가 받을 상처가 더 무서웠다. 그래서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 상담 전화도 찾아보고 센터도 찾아보았다.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내게 이 문제를 해결할 해답을 주길 바라면서. 그런데 답을 찾을 수 없었고, 나는 적당한 위로가 필요한 게 아니기에 완전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태현이를 불러왔다. 내가 사랑하는 내 연예인 노태현. 나는 태현이를 나만큼 사랑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태현이를 나보다 더 아낄 때도 있으니까. 내가 친구에게 할 대사를 태현이가 나에게 하는 것처럼 말해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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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태현이가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운다. 아-. 나는 이미 태현이가 우는 걸 보는 것만으로 운다. 왜 울어.. 태현아 소중하고 예쁘고 귀한 네가 왜 울어. 그리고 이내 깨닫는다. 아 봄이 이런 마음이겠구나. 왜 울어, Benn아. 소중하고 예쁘고 귀한 네가 왜 울어.. 태현이가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 아빠가 싸우는데, 그게 그냥 싸우는 게 아니라 내가 어찌 대항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싸워,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고, 그랬는데 나 어른이 돼서도 이게 너무 힘들다? 나 왜 이럴까. 너무 힘들어. 그래서인지 학급에서 자해하는 아이를 보면 어쩔 줄을 모르겠어, 부모님이 싸우던 전쟁터도 내가 어찌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너무 두려워. 아니 그래. 원담이는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엄마 같고 아빠 같아. 너무 쉽게 내 앞에서 폭력적으로 싸우던 부모님과 겹치나 봐.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 심장이 콱 막혀오고 너무 힘들어. 그런 말을 하는 태현이에게 내가 제일 먼저 해주고 싶었던 말은...


태현아-Benn아 얼마나, 얼마나 많이 힘들었어. 얼마나 얼마나 많이 속으로 참고 인내하고 숨었어.. 태현아-Benn아, 여기까지 네가 자란 것만 해도 너 엄청난 거야 알지? 엄청 대견하고 잘한 거야. 내가 널 도와주고 싶어서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 그리고 널 이렇게 아프게 그 사람들한테 너무 화가 나. 내 사랑스러운 태현이를-Benn을 이렇게 힘들고 괴롭게 한 게 너무 화가 나. 그 사람들이 잘못한 거야. 너는 잘못 없어. 그게 제일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이야.


그리고 두 번째는, 태현아-Benn아 분리하자. 부모님과 너를 분리하려고 지난 2년 동안 진짜 많이 노력했잖아? 그리고 조금 해내기도 했고 그렇지. 그러니까 원담이랑 부모님도 분리할 수 있을 거야. 물론 네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지금 알지는 못해, 당연하지 그걸 배운 적이 없는 걸. 그래도 너는 언제나처럼 배울 거니까, 방법 이전에 네가 너도 모르게 두려워하고 스트레스받던 원담이와 부모님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보자. 해결하라는 게 아니야. 그냥 한걸음 떨어져서만 봐줄래? 네가 그러기만 해도 나는 무척 기쁠 것 같아. 네가 안고 가려하는 게 나는 너무 싫어. 그 문제들을 왜 네가 안고 가야 해? 문제는 그들에게 던져 버려. 그냥 떨어져서 바라보자. 그냥 분리하자.


그러고 나면 세 번째로 무얼 할까? 이렇게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하자. 올해 너랑 내가 ‘직면’하기로 했잖아? 이것도 그런 거야. 어린 시절 있었던 일에 대해서 글을 쓰자. 말을 하자. 울고 싶은 만큼 울고, 게워내고 싶은 만큼 게워 내고 나면 파도가 좀 잠잠해질 거야. 내가 도와줄게.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네가 뭐가 그렇게 힘들었고, 억울했고, 슬펐는지, 내가 다 들어줄게. 어떤 판단도 비난도 하지 않고 내가 다 들어줄게. 나도 사람이라 가끔 판단하거나 비난할 수도 있어, 근데 그건 네가 잘못되서가 아니라 내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야. 사랑하는 네가 조금이라도 안 아프게 내가 도와줄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가 힘든 상황이면 이제 도망치자. 귀 막고 구석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이 폭격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냥 그 자리를 나오자. 엄마 아빠가 싸우면 그냥 집 밖으로 나가고, 원담이가 자해하면 다른 사람을 불러 도움을 청하자. 네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걸 견뎌햐 하는 건 아니잖아. 태현이가-Benn이 그 힘든 일 속에서 떨고 있는 걸 내가 더 이상 두고 못 보겠어. 너는 그럴 필요 없어. 힘이 없으면 놓아도 돼. 그러다 나중에 힘 생기면 다시 돌아오든지 해보지 뭐. 이렇게 네가 밤새 울고, 한 시간마다 악몽에서 깨어나고 하는데, 다른 사람 알게 뭐야? 소중한 태현아, 소중한 Benn아 아파하지 마. 너는 이미 충분하고, 자랑스러워. 좀 실수하면 어때? 좀 비난받으면 어때? 남들 보기에 좀 이상하면 어때? 네 속에 빛이 있는 걸. 그 따뜻함을 아는 사람들이 너에게 남을 텐데. 그리고 아무도 남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죽을 때까지 너를 지킬 텐데. 아무것도 문제가 아니야. 너와 내가 있으니까 아무것도 문제가 아니야.


많이 힘들지? 아까 보니까 첫 번째 꿈으로는 가족끼리 여행을 갔는데 끊임없이 부모님 눈치를 보고 동생과 엄마를 챙기는 꿈을 꿨더라. 그러다 놀이공원에서 결국 아빠는 제멋대로, 엄마도 제멋대로 화를 내고 그 순간 꿈에서 깼어. 너는 이게 두렵구나. 너에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구나. 그리고 간신히 잠에 들었는데 그다음에는 엄마랑 동생이랑 있었지? 근데 아픈 엄마더라. 엄마가 막 소리 지르면서 달려가고 나는 그걸 붙잡고, 엄마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아빠랑 동생을 부르짖으며 울었어. 내가 아무리 울고 안아주고 얼굴을 쓸어주어도 엄마는 소리 지르다가 주저앉아 울었어. 내가 어떻게 했어야 될까. 울면서 깼는데 심장이 너무 아팠어. 나는 그런 엄마랑 아빠랑 동생을 두고 뒤돌아서 걸어도 되는 걸까? 태현이가 그런 꿈을 꿨다면 나는 뭐라고 해줬을까. 태현이가 그랬다면 나는 아마 태현이 손을 잡고 뛰쳐나오고 싶었을 거야. 아니면 태현이 대신 발버둥 치는 엄마를 붙잡아줬을까. 태현이 어머님을 병원에 입원시켰을 것 같기도 해. 그 무엇도 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태현이가 최우선이고 태현이를 구하고 싶었을 거야. 그러니까 Benn아, 너도 그래도 돼. 뛰쳐나와도 돼. 내가 손잡아 줄 거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거야. 근데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럼 우리 엄마는 누가 데리고 나가주지? 나는 봄이, 태현이가, Benn이 데리고 나가줄 텐데, 우리 엄마는 누가 데리고 나가주지? 잘 모르겠어. 그럼 내가 데리고 나가줄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니 난 못해. 난 못할 것 같아. 그럼 어쩌지. 저렇게 울부짖는 엄마, 고개 숙인 동생, 쿵쾅 거리를 아빠를 두고 나오는 게 정말 맞는지 그걸 잘 모르겠어. 엄마는 엄마가 구해야 된다는 말이 맞다는 걸 알지만, 그걸 할 수 없어 보여서 자꾸 뒤돌아보게 돼.


태현아, 내가 너를 그곳에서 데리고 나오면서도, 그게 최선인지를 아직은 잘 모르겠어.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근데 내가 일단 피한 후에,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 알아볼게. 같이 알아보자. 세상은 넓고, 아직 읽지 않은 책도, 만나지 못한 사람도 많은데,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겠어? 분명한 건 거기 남아 엄마를 부여잡고 있는 건 안돼. 알겠지? 안돼. 그건 내가 두고 보지 않을 거야. 나랑 나가자. 나가서 쉬고, 또 방법을 찾자. 언제나 너의 편이 되어 너를 도울게. 그만 울어, 그만 울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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