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benothing
May 15. 2023
가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슬픔이 깊어질까 두렵다. 나를 짓누른다. 뭉갠다. 압박한다. 떠민다. 쪼갠다. 찢는다. 할퀸다. 찌른다. 뚫는다. 짓이긴다. 적신다.
그러면 나는 쪼그라든다. 달라붙는다. 떨어진다. 줄어든다. 짜진다. 젖는다. 흐른다. 찢긴다. 상처 난다. 찔린다. 뚫린다. 눌린다. 잠긴다. 숨는다. 침잠한다. 가라앉는다.
예전에는 불안과 두려움 외의 감정을 잘 알지 못했다. 아니다. 아는데 외면했던 것 같다. 요즘 부쩍 가슴이 아프다. 막혀있던 둑에 균열이 생겨 조금씩 흘러나온다. 이러다 터져버릴까 두렵다. 홍수가 되어 콸콸 쏟아지면 감당을 할 수 없을까 무섭다.
엄마를 생각하면 애틋하고 슬프다. 어떠한 아픈 사건이 있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미안함이 한 스푼, 죄책감이 한 스푼, 원망이 한 스푼, 미움이 한 스푼, 사랑이 한 스푼. 여러 감정들이 혼합되어 슬픔이 된다.
나이를 먹는 것이 이런 것일까. 슬픔을 아는 것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면 발만 담그고 있던 우울의 바다에 점점 잠기는 것일까?
나이가 들 수록 유아기로 퇴행하는 것 같다. 질문이 늘어간다. 의문이 생긴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진짜일까? 평범한 것일까? 이상한 것일까?
나는, 괜찮은 걸까?
괜찮지 않다. 괜찮을 리가 없다.
발 밑에 느껴지는 까슬까슬한 모래 같은 슬픔도, 온몸을 짓누르는 거대한 물풍선 같은 슬픔도 아프고 견디기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하지만 언제까지 아슬아슬한 둑 안에 가둬 놓을 순 없는 걸 안다. 범람하기 전에 조금씩 흘려보내야 한다. 어떻게?
모른다.
견디는 것인지 참아 내는 것인지 버리는 것인지 뭉개는 것인지 말리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슬픔은 나누는 것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나누는 것인지 모른다. 왜 슬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문득 생각나는 과거가, 오랜만에 본 엄마 얼굴의 주름이, 무력한 나 자신이 슬플 뿐이다.
다들 슬픔을 가슴에 얹고 보통의 날들을 견디는 것일까? 품고 살아가는 것일까?
신발 바닥에 달라붙은 껌딱지처럼, 찝찝하지만 걷는 데에 큰 문제는 없는 이물질 대하듯, 언젠간 떼어 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처음 겪는, 아니 어쩌면 이전에 겪었지만 까맣게 잊어버렸을 슬픔을 마주하며, 이번에는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기를 바란다. 슬픔을 받아들이고 고요한 시냇물처럼 흘려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오래 묵어 오수가 되지 않기를. 슬픔이 순환할 수 있기를. 모두가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