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나이키에서 배우는 전환기의 브랜드 전략
혹자는 이제 브랜드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얘기한다. 기술혁신에 의한 ‘성능 편익’의 비중이 브랜드의 감성적 편익을 밀어내고 있는 현상이 곳곳에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패스트 패션은 물론이고, 패스트 리빙, 인터넷 쇼핑몰에서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가성비 높은 수많은 제품들. 제품의 수명주기는 점점 더 짧아지고 심지어 브랜드가 없음을 브랜드로 내세운 ‘노브랜드’라는 브랜드도 생겨났다, 한편으로 우리는 비슷비슷한 상품이 넘쳐나고, SNS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거기에 과장된 이용 경험을 자발성인 것처럼 포장한 채 전달하는 유튜버, 불로거들의 ‘뒷 광고’까지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브랜드의 시대는 끝났는가? 이 시대의 아이코닉 브랜드인 나이키와 애플의 이야기에서 전환기의 브랜딩에 대한 인사이트를 구해보자.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6월, 애플은 시가총액기준 1조 6천억 달러에 달해 세계 최대의 기업이 되었다.(지금은 2조 달러를 넘어 섰다) 팬데믹으로 일부 언택트 관련 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의 미래가 불투명한 가운데 애플의 미래가치가 세계 최대가 된 것은 분명 놀라운 뉴스였다. 같은해 7월 애플의 3분기 실적 발표는 또다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팬데믹의 장기화에도 애플은 전년 동기 대비 11%가 증가한 597억 달러를 기록하고 이익도 더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세계 1위의 스마트폰 브랜드인 삼성 갤럭시는 전년 동기 대비는 물론 전 분기 대비 역성장을 기록했다. 전 세계가 팬데믹이라는 똑같은 형벌의 시간을 맞고 있는 가운데 다른 산업도 아닌, 같은 산업에서 어떤 브랜드는 성장을 하고 어떤 브랜드는 역성장을 하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다면 위기의 상황에도 빛나는 결과를 만드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격, 혹은 제품이 주는 편익 그리고 품질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판매량에서 세계 1위를 하고 혁신적인 기술을 끊임없이 제안하는 삼성보다도 애플의 주가 총액이 6배 이상이 되는 현상을 보면 브랜드의 힘 이외에 무엇으로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지 찾을 도리가 없다. 워랜 버핏은 “수영장에 물이 가득 차 있을 땐 다들 멋지게 수영하고 있어 그 속을 알 수 없지만 물이 빠진 다음에는 누가 벌거벗고 있는지 알 수 있다”라고 했다. 브랜드의 힘은 위기의 시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애플은 충성도 높은 팬덤이 전 세계 도처에 깔려 있다. 애플이 신제품을 내면 애플의 팬들이 애플 다움과 애플답지 않음을 얘기한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바를 고객이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들 고객들은 애플과 나를 동일시하며 ‘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브랜드’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애플의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다시 망설임 없이 재구매를 한다. 이 광팬들에게는 소비를 망설이거나 더욱 효율적인 소비를 할 수밖에 없는 팬데믹과 같은 순간에도 브랜드의 선택에는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애플의 팬덤은 그 질과 양에서 어떤 브랜드와도 비교가 안된다. 이러한 강한 팬덤을 형성한 애플의 브랜드 전략은 매우 단순하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잡스와 직접적인 보고라인을 가지고 일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로, 월드와이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던 앨리슨 존스의 인터뷰를 들어 보면 애플 브랜드 전략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에는 가장 협 오하고 싫어했던 단어 두 개가 있었는데 바로 ‘브랜딩’과 ‘마케팅’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마케팅을 잘하고 브랜딩을 통해 광팬을 만들고 있는 기업에서 ‘브랜딩’과 ‘마케팅’이 가장 혐오하는 단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확히는 브랜딩과 마케팅이란 단어를 경계했다고 하는 편이 옳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제품과 서비스라는 본질인데 그 중요성을 간과하면 마케팅과 브랜딩에 목을 매게 되고 그 순간 기업은 발전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브랜드의 가치와 마케팅은 그들이 만드는 제품 자체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었다”라고 한다. 이렇게 애플은 먼저 좋은 제품을 만들고 이후 정말 센스 있고 멋진 소개를 했다. 그 멋진 소개가 그들의 마케팅이자 브랜딩이었다.
대개의 기업들은 제품과 마케팅을 별개로 생각하고 제품이 개발된 후 마케팅을 관여시키거나 혹은 외부 팀을 통해 마케팅을 시작한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접근을 최악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애플의 마케팅 팀은 엔지니어링 팀 바로 옆에 있었다.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에서 제품의 기능, 디자인, 마케팅이 한 몸처럼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된 ‘좋은 제품’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한 것이다. 제품이 좋으니 사람들이 절로 관심을 가졌고, 그저 제품 자체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세계가 열광했다. 그리고 멋진 캠페인이 끝나더라도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제품 자체에 열광을 한 것이지 캠페인에 반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애플의 브랜드 가치는 갈수록 높아졌고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팬덤은 두터워지고 넓어졌으며 그들은 망설임 없이 다시 애플을 구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소비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아이팟 이후 지난 20여 년간 지속적으로 ‘애플 다움’을 유지한 결과가 어떤 상황에서도 묻지 않고 애플을 신뢰하는 팬덤을 만든 것이다.
작년 5월 25일 미국의 미네아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가혹한 체포행위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으로 인해 미국 내 과격한 항의 시위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나이키가 보여준 태도는 심지어 경쟁사인 아디다스도 동조를 할 만큼 시의 적절하면서도 용기 있는 것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나흘 후 나이키는 자사가 30년간 지켜온 슬로건 ‘Just Do It’을 뒤집은 ‘For Once , Don’t Do It‘(이번만은 그렇게 하지 말자)이란 새로운 슬로건을 걸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계정을 통해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캠페인 영상을 제작한 것이다.
이번만은 그러지 말자
미국에 문제가 없는 척하지 말자. 변명하지 말자,
이 문제가 당신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자...(하략)
1분 동안 검은 바탕에 ‘Don’t...‘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하나씩 차례로 나온다. 총 9 문장 안에 담긴 나이키의 메시지는 즉각적으로 1주일 만에 인스타그램 조회수 1천5백만 회를 넘었고 4만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영상을 발표한 직후 나이키는 향후 4년간 미국 흑인 커뮤니티를 지원하기 위해 4천만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그 진정성에 힘을 실었다.
미국의 광고효과조사 전문 업체인 에이스 매트릭스가 나이키의 이 영상 메시지에 대해 미국의 16세 ~49의 미국인들에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98%의 다른 광고에 비해 ‘힘을 얻게 한다’(empowering)는 반응을 얻었으며 소비자들은 불의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보여주는 광고에 보다 더 연결된다는 인사이트를 보여주었다. 사실 브랜드 입장에서 보면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슈에 대해 이념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반대 입장을 가진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키는 이러한 사회적 이슈를 외면하지 않는다. 2018년 ‘저스트 두잇’ 론칭 30주년 기념 광고에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로 미국의 국가가 울릴 때 기립 대신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로 사회적 논란을 제공한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을 모델로 세워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당시 에이스 메트릭스 조사에 따르면 광고 이후 매출이 동기 대비 31%가 상승했고 젊은 세대들의 56%가 구매 의향을 보였다. 나이키는 이 같은 사회문화적 이슈를 브랜드에 접목하는 문화 혁신 이론(cultural innovation theory)을 배경으로 한 문화 브랜딩(cultural branding)으로 팬덤을 쌓아 온 것으로 유명하다. 브랜드 슬로건 ‘저스트 두잇’의 이념 실현을 위해 나이키는 인종차별, 성차별 그리고 빈곤의 세계화라는 삶의 도전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그것이 농구일 경우 게토에서 꿈을 키우는 흑인 청소년 속에서 자라난 마이클 조던의 신화로, 그것이 골프일 경우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종목에서 꿈을 이뤄낸 타이거 우즈를 마이너리티의 승리로,... 단순히 스타 선수들의 초인적 운동능력을 상투적인 방식으로 증명하는 대신, 유명선수들의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이키의 브랜드 이념을 동조하는 사람들을 모아 왔다. ‘이번만은 그러지 말자’(For Once Don’t Do It) 캠페인은 어찌 보면 나이키가 지난 수십 년간 지속해온 브랜드 전략의 연장 선상에서 일관성을 가지고 해온 브랜드 이념에 방점을 찍은 것이지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다가온 이념적 기회(ideological opportunity)를 용기 있게 잡았을 뿐이다.
우리 소비자들도 이제 브랜드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부합할 때 그 제품을 기꺼이 이용한다. 기능적으로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 비슷한 제품이 양산되는 오늘날은 자신이 소비하는 제품이 환경에 도움이 되는지, 브랜드, 혹은 오너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 건강하고 정의로운지를 구매의 기준으로 삼는 가치 소비의 시대다. 비정규직이 없는 기업이라는 것이 밝혀져 식품회사 '오뚜기'는 ‘갓 뚜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팬덤이 생겼다. 반면 오너 일가의 부도덕성으로 인해 이 나라의 최대 항공회사는 존립 위기를 맞기도 했다. 지난해 세계 크리에이티브 축제인 칸느 라이언즈에서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이 최대의 화두가 되었다. 이제 브랜드는 인격체처럼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제품을 파는 시대를 넘어 소비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 관계의 형성은 브랜드 가치를 손상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브랜드는 소비자와 관계를 맺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