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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전초이 May 03. 2020

일 년에 한두 번은 죽을 만큼 힘든 날이 있다.

새하얗게 불태운 어느 날

주말, 공휴일, 쉬는 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약간의 MSG 첨가)


하지만 우리 전공의들은 많은 사람들이 쉴 때도 일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쩌다 한 번씩은 일을 아주 많이 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어제 새벽처럼.



   





아침 일찍 내가 맡은 파트의 정규 근무를 마무리했다.

오늘은 당직 근무 날이기 때문에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기에

서둘러 정규 근무를 마친 것이다.


그리고서는 중환자실에 있는 외과 환자의 중심정맥관 삽입술 하는 것을

직접 시범을 보이며 아랫 년차에게 가르쳐주었다.


중환자실에 있는 외과 환자들도

내일 아침까지는 내가 콜을 받고 management를 해야 했기에

환자를 파악하고 대략의 인계를 받았다.



낮에는 평화로웠다.


물론 항암치료 때문에 입원하는 환자가 대략 40여 명이나 되었기에

아랫 년차들의 오더를 봐주며 빠진 것 없는지 체크해야 했다.


그래도 응급실로 오는 외과 환자가 많지 않았기에

그냥저냥 순조로웠던 오후였다.


중환자실의 환자도 자주 가서 상태를 파악해야 했지만

급격히 나빠지지는 않아서 유심히 지켜보면 되었다.



병원 식당에서 저녁까지 잘 챙겨먹고

거의 다 입원한 환자들의 처방 내역을 살폈다.


어느덧 시간은 10시.



후배 전공의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응급실에 75세 여자 환자분 괴사성 근막염이 의심되어 노티드립니다.”

(괴사성 근막염은 치명률이 매우 높아 발견 즉시 바로 응급 수술을 해야 하는 질환이다.)


    

“괴...괴사성 근막염??”


평온했던 하루의 끝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지금 바로 수술 준비를 하더라도 최소 한 두 시간은 걸리고

수술 들어가면 또 최소한 한 두 시간은 걸린다.

그러면 시간은 대략 2-3시 전후일거고


내일 아침 5시에 코로나검사 결과 음성이 확인되면

바로 수술를 하기로 한 충수염(맹장염) 환자도 있었다.


중간 중간 중환자실에서도 콜이 올거고

그럼 거의 밤을 꼴딱 새는건데....


하...



응급 수술을 끝내고

중환자실 환자를 보고

용케도 그 사이에 응급실로 또 다른 환자가 와서

환자 파악을 하고 처방을 내고

환자와 보호자 분에게 설명을 하고

교수님께 보고드렸다.

그리고 충수염 수술을 마치며


새벽을 하얗게 불태웠다.




24시간 풀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모습. 새하얗게 불탔다. 그 와중에도 잃지 않는 미소. 이제 푹 잘 수 있다. 개이득. 출처 : 내일의 죠







내가 1년 차이던 시절 실력이 출중하여 교수님들의 신망이 두터웠을뿐 아니라

우리 후배 전공의들도 존경과 감탄을 마다하지 않았던

한 4년 차 선배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얘들아, 수련을 받다 보면 말야,

일 년에 한 두 번은 죽을 만큼 힘든 날이 있을거야.

그런 날들을 잘 견뎌내야 한다.”




그날 밤 나는 이 이야기를

후배 전공의들에게 해주었다.


“얘들아, 바로 오늘이 그 날인 것 같다. 하하하하.”


괴로움과 체념의 웃음을 터뜨렸다.



한 가지 다행인건 다음날 24시간 오프여서 아침부터 쉴 수 있다는 것.



‘휴, 다행이다. 이러고서 정규 근무였으면 진짜 힘들었겠다.’

(실제로 그랬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나는 그 날 집에 와서 바로 뻗어서 죽은 듯이 푹 잤다.



그런데 순간 오싹해진다.

흠, 생각해보니 그 죽을 만큼 힘든 날에서 이번 일은 포함 안되는 거 아니야?



아...아닐거야.. 이런 일은 올해 마지막일거야... 출처 : pepe the fr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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