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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전초이 Jun 13. 2020

잘가.(가지마) 행복해.(떠나지마)

feat. 도망간, 보고싶은 그에게


그 날, 그는 그렇게 떠나갔다.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보고싶다.

보고... 싶다.






레지던트, 전공의들의 삶은 힘들다.



우리 외과뿐만 아니라

어느 과나 대부분 많은 근무 시간과

위계질서로 인한 심적인 스트레스 등으로

힘든 수련 생활을 보내고 있다.



특히나 1년 차는 정말정말 힘들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마치 군대 생활처럼..



외과 전공의는 두세달마다 

외과의 상부위장관, 간담췌, 대장항문, 유방갑상선 등의 여러 파트를

순환하면서 수련받게 되고

나는 지난 달부터 간담췌외과 파트를 돌게 되었다.     



우리병원 간담췌외과는 업무가 과하기로 유명했다.

평일에는 수십명의 담낭 수술 환자들로

주말에는 수십명의 항암치료 환자들로 

입원환자 목록이 빼곡하게 채워진다.     


때로는 휘플씨수술 등의 무려 6시간에서 8시간은 걸리는

대수술도 잡히게 되고


그런 날은 수술이 다 끝날 때까지 

퇴근을 못하고

수술 후에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상태가 안정된 것을 확인한 후에


병동 환자들 회진까지 모두 돌고 나서야

겨우 집에 가볼까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 그 시간은 밤 9시, 10시 이후.

기록적인 날은 새벽 1시가 넘어서 퇴근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나서 그날 아침 6시에 출근. 핫하하핫.



1년 차 때 간담췌외과 파트를 돌 때는

정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정확히 2년 여 전인데,

병원에 적응도 하기 전인데

할 일은 정말 태산같았고

뭐가 뭔지도 하나도 모르겠고

그로 인해 작은 실수들로

선배 전공의와 교수님에게 밤낮으로 혼나곤 했었다.



그로부터 2년 후.



3년 차인 지금.



1년 차 때보다는 훨씬 낫긴하다.

기본 잡무가 좀 줄긴했고

혼나게 되는 타겟이 내가 아닌 1년 차이기 때문.


하지만 더 힘든 것은

1년 차 때보다 훨씬 일찍 출근하는 것.


대략 아침 5시 반까지는 병원에 와야 한다는 것.

7시 갓 넘어서 회진을 돌러 오시는 교수님과

회진 때 40명 넘는 환자들에 대해

아무것도 파악이 안되어 있는 채로 만나게 되는 것은

하,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



여하튼 지금도 힘들지만

1년 차는 그 누구보다 힘들다.


나와 같이 천사같은(!?) 선배가 바로 위에 있어도

고통스러운 것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한 달 전부터 간담췌외과를 같이 돌게 된

이 병원에 3개월 차에 접어드는 새로운 1년차 선생.



올해 새로 들어온 4명의 1년차들 중

나이는 많은 축에 속했고

똑똑함이나 성실도는 중간이나 그 이하이긴 했다.


그래도 괜찮다.

이 정도면 그저 감사하지.


게다가 이 녀석은 내 친구의 지인.

그래서 다른 1년차들보다는 좀 더 신경써줬었다.


그리고 이 친구는

인턴을 마치고

군의관을 다녀오고

동네 병원에서 대략 1년 정도 근무했던 경력이 있었다.


인턴만 갓 마친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는 아닌,

그래도 의사 경력이 꽤나 있는(?!) 친구였다.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면

이미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온갖 평가를 하고 뒷이야기를 공유하곤 한다.



“얘는 좀 괜찮은 것 같더라.”


“쟤는 좀 개념 없던데? 어떻게 그때 그럴 수가 있지?”


등등..



그래서 결국 대략 절반은 좋은 평판을, 나머지는 안좋은 평판을 받게 된다.


내 밑으로 오게 된 이 친구는

안좋은 평판을 듣고 있는 신입 1년 차 중 한 명이었다.


나 또한 1년 차 때 그 그룹에 속했던(!?) 터라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또 그게 사람이 일부러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 슬로우 스타터이기에 그런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기에

혼내거나 싫은 소리를 안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노력은 나 혼자만의 노력에 불과했다.



내 위의 4년차 선생님이나

펠로우 선생님, 그리고 교수님까지..

혼냄 폭격이 이어졌다.




그 날은 회진을 다 돌고나서


교수님께서도 정신차리라는 의미의 따끔한 한마디를 하셨다.


그리고는 당직실로 펠로우 선생님과 4년차 선생님과 그와 나.

이렇게 4명이 문을 닫고 들어왔다.



분위기는 냉랭함과 살벌함 그 자체.


펠로우 선생님이 한 차례 혼냄 폭격을 날리고 퇴장하셨다.


다음 주자는 4년차 치프 선생님.



“임마, 이거 왜 이렇게 했냐. 똑바로 안할래?

너 내일부터는 회진 전에 프리라운딩 다 돌고

환자들 CT 전부다 보고 파악해놔. 알았어?”


혼남의 끝은 4년차 선생님의 이런 멘트였다.



‘하,, 저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건데, 1년 차 때는 저거 절대로 할 수 없는 건데..’



사실 아랫 연차의 실수를 지적하고 바로잡아주는 것은

윗 사람으로서 꼭 해야하는 것이긴 하다.



다만, 그런 혼남과 까임에 매우 익숙한 나로서 드는 생각은

‘그래도 정도껏 해야 할텐데...’



치프 선생님 마저 퇴장하시고

그와 나. 이렇게 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 시각은 밤 9시.



분위기는 분위기고, 혼나는건 혼나는거지만

오더 정리는 1시간 어치가(!) 남아 있기 때문.


누군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고

빨리 해야 퇴근이라도 하니까..



1년차 녀석도 옆 컴퓨터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옆을 힐끗 봤을 때 그의 눈에는 이미 얼이 빠져있었다.


침묵의 시공간에서 어느 정도 일을 마무리한 후

말을 꺼냈다.



“임마, 괜찮냐? 그지같지??”

“아닙니다. 선생님...”



“야, 다 그런거야. 1년 차 때는 억울한 일도 많고 

바쁘고 좀 말도 안되는 상황도 많아.”

“네.. 그래도 제가 부족하니까 그런거겠죠... 

근데. 수련을 계속하는 게 맞을지,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아, 니 맘. 나 1년 차 때 진짜 거짓말 안하고

100번은 넘게 진지하게 나갈라고 고민했었어.”

“그런가요?”


“그래. 진짜야.. 그래서 난 1년 차들한테 뭐라고 안해. 

왜냐면 내가 1년 차때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실수투성이였거든. 

1년 차때 뭘 잘하는 건 말도 안돼. 

치프 선생님이나 펠로우 선생님들도

본인 1년 차 때 얼마나 잘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러게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에고, 그래. 난 더 심한 말도 많이 듣고 진짜 많이 혼났었어. 

너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너무 맘 상하지 말고, 기운내라. 

시간 늦었으니 얼른 집가서 푹 쉬고.”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에효, 얼마나 힘들까.



불과 2년 전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진짜 혼나기는 더 많이 혼나고

윗년차 선생님들은 지금보다 더 악마들(?!)이었는데..




왜 안도망갔을까.

(문득 떠오르는 강력한 후회감)




아주 기특하게도 단 하루도 도망치지 않았던 나였다.

      


그런데,

그는 도망쳤다.



그날 이후, 바로 그 다음날부터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밤이 그를 본 마지막 밤이었다.



하....



다음 날 아침 외과의국은 난리가 났다.


그의 도망이 모두에게 알려진 탓이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

“니가 많이 혼내서 그런거 아냐??”


등등


수많은 말들이 오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오가는 말들이 아니다.



내 밑에 있던 1년 차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 말은 즉,


1년 차의 업무를 할 사람은 바로 누구???



입원 환자 40명의 담당의는 누구???

수많은 환자들 수술동의서 받을 사람 누구???

입원 환자 40명 경과기록지 매일 써야 하는 사람 누구???

내일 자 처방 내야 하는 사람 누구???

CT 검사 판독 받으러 교수님 찾아가야 하는 사람 누구???

다음 날 수술 10개 미리 파악해서 마취과랑 상의 해야 하는 사람 누구???




오늘 밤만이 아닌, 매일 밤낮 주인공은 나야 나. 태산같이 쌓인 일을 할 사람은 바로 나야 나 나야 나. 출처 : mnet




모든 1년 차가 해야 하는 일들이 나의 일이 되었다.




게다가 입원 환자 40명의 모든 콜들은 누가??


콜미 콜미. 모든 전화는 나에게 해주세요. 1+3년차 여기 있습니다. 핫하하핫. 출처 : mnet



나의 1+3년 차 업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인 2역

월급 조차 똑같이 받으며

일타쌍피

일석이조

아, 이런건 반대 뜻이겠구나.

(흥분되어 나오는 아무말 대잔치)



“몇 일 있다가 돌아오겠지~~.

아직 몰라 한 1주일은 있어봐야 아는거잖아.”


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1주 후에도 돌아오지 않았고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1+3년 차라는 특수한 업무를 지속해오고 있다.

(나야말로 진짜 도망가고 싶다.)







그가 떠난 후

1년 차 동기들이 그와 만나 설득하러 갔었다.


다른 전공의들도 전화 또는 카톡을 보냈다.




그의 빈자리가 가장 컸던

그를 가장 보고 싶어하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 마지막날 밤.

나는 그에게 솔직한 조언을 해주었다.


나갈지를 고민하던

나가면 선생님이 일을 다 하셔야 하는데

죄송해서 어떻게 하냐는 그에게

나는 말했다.






"얌마, 그건 상관없어.

물론 니가 나가면 일은 내가 다 해야겠지만

그것도 한 때지 뭐.



젤 중요한 건 니 마음이야.

길게 보고 니가 외과의사가 되고 싶으면,

외과 전문의 따고 싶으면

힘들고 뭐같아도 버티고 하는거고

그게 아니면 포기하는거야.



포기하는 게 지는 것도 아니야.

그냥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것일 뿐이지뭐.



어떤 선택을 하던 정답은 없는 거니까, 

충분히 잘 생각해봐.


(정답은 있어. 제발 나가지마라.. 제발..

앞으로는 진짜 일도 쪼금만 시킬게,

내가 일을 더 많이 할게.. 혼내지도 않을게.. 제발..)



맘 정해서 계속 하기로 한거면 좋은거고,

나가기로 한거라도 어딜가든 잘 헤쳐나갈거라 믿는다.


(앞으로 진짜 잘해줄게. 맨날 커피 사줄게. 

딴 데 간다고 별 수 있겠니? 이미 석 달이나 됐자나. 

이번 일만 잘 견뎌내면 앞으로는 더 잘할 수 있을거야.)



출처: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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