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일기_압생트

by 벅구

유독 거리에 사람이 많은 날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 들었던 의문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목을 끌고 있는 갖가지 괴물들을 보고 나서야 해소되었다. 할로윈이었다.


아주 어렸을 적. 외출을 하면 어머니 손을 잡고 걷던 시절에 할로윈 복장이라고 신문지로 접은 왕관에 커다란 수건을 빨래집게로 고정시켜 왕 흉내를 내면서 다녔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용기를 잃고 부끄러움을 얻었기에 부러움을 담아 변장한 사람들을 잠시 지켜보았다. 돌아가지 못할 시간에 대한 그리움일까. 부러움은 점점 슬픔으로 변할 것 같았고 나는 도망치듯이 내가 어울리지 않는 장소를 벗어났다.


한적한 골목을 찾아 누비다 발견한 처음 보는 바. 소란스러운 시간과 동떨어진, 자신만의 시간을 지켜나가고 있는 듯한 곳이었다. 그 느낌에 이끌려 나는 바의 문을 열었다.


나무로 된 인테리어. 차분하게 다가오는 우드향. 밖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마저 잔잔한 음악처럼 들리게 해주는 느긋한 분위기를 바는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특별한 장식품이 없는 바의 단 한 곳에 해바라기 그림 하나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그림을 보자 무엇을 마셔야 할지 결정이 섰다.


압생트는 특별히 맛있다고 생각하는 술은 아니다. 강한 향에 달짝지근한 약을 마시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러나 때때로 그 색깔을 보면 홀리듯이 주문하고 마는 그런 술이다. '녹색 요정'이라고 불리는 술답게 영롱한 초록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에 담아봐야 하는, 유혹에 지고야 마는 그러한 술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요정에게 취해간다.


작은 창 너머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사람들 사이로는 종종 괴물들이 지나간다. 문득 나도 분장을 하고 화려한 복장을 갖춘 뒤 저곳으로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한번 어릴 적 그때처럼 주변의 시선을 즐기며 아무리 초라한 분장이라도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는 그때의 나를 그리워한다. 그때의 마음을 추억한다. 나는 할로윈에 홀리고 있는 것일까. 괴물들 사이로 얼핏 웃고 있는 '초록 요정'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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