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육체를 위해서는 고마운 것이지만 정신력을 크게 기르는 것은 마음의 상처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나는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서점 특유의 냄새, 분위기, 그리고 보물찾기 같은 새로운 책과의 만남을 좋아한다.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진 않는 만큼, 나의 이목을 집중시킬 대상이 나타나면 끝을 보는 성격인지라, 책도 시기에 따라 편력이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꾸준히 손에서 놓지 않았던 건 '심리학'이다.
나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되서인지, 심리학이 내 마음의 해설노트가 되어주었던 그 첫 맛이 아직까지 얼얼하게 남아있다. 한국인이라면 맛있게 매운거에 환장하니까.
심리학이 맵다고 말하는 게 이상해보일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근래에 서점에 가면 심리학 베스트셀러 이름들이 하나 같이 비슷하다.
'너는 상처받지 않아도 돼.'
'당신이 뭔데 나를 상처줘.'
'당신의 잘못이 아니야. 상처 받을 필요 없어.'
이런 류의 책들을 훑다보면, 우리 사회가 특히나 청년들이 낭떠러지 끝에 몰려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인생의 낙오자, 감정의 쓰레기통, 사회적 도태. 수많은 꼬리표들이 그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저런 책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실제로 상처 받은 이들은 어느 관점에서는 피해자일테고, 온전히 그들 책임으로 보기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상처 받을 이유도 마땅히 없을 수 있다.
다만, 나는 저런 류의 책들이 인스턴트 식품처럼 느껴진다. 청양 고추와 직접 고안한 비법 소스로 만든 맛있게 매운 맛이 아니라, 시판하는 '단짠'의 느낌이다. 무난하고, 한끼 때우기 적당하고, 그리고 어디서 먹어본 듯한 맛.
스마트폰, 유튜브, 게임, 인스턴트 식품. 이들의 공통점은 빠르게 원하는 자극/욕구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위로 받고 싶은 감정도 비슷할 거 같다. 그 누구도 아픈 마음을 1주일, 1달 넘게 간직하고 싶진 않을테니까.
그런데, 당신이 정말 상처 받기 쉬운 사람이라 느껴진다면, 먼저 고민해야할 부분이 존재한다. 사실 굉장히 간단하면서도 근본적인 물음이다.
나는 왜 상처를 받을까?
사람을 쉽게 믿어서 일 수도, 일에서 과도한 책임감을 가져서 일 수도, 감정 쓰레기통 취급을 당해서 일 수도, 싫은 걸 싫다고 잘 말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원인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고, 상황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비슷하다. 식상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원인을 생각하는 과정에서의 '자기 부정'은 옳지 않다. 내가 사람과의 거리를 뒀으면, 일을 적당히 했으면, 불편하다 말했으면, 호불호를 확실히 했다면 하고 후회하면 안된다. 인스턴트 식품들이 연주하는 악마의 속삭임처럼, '너가 상처 받지 않는 성숙한 어른이 되는 데에는 방도가 있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면 안된다.
사람은 전부 다르다. 물론 심리학적으로 기질을 나누고, 성격 유형으로 그룹화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개개인 양육 환경도 경험도 완전히 다르다. 만약 상처를 받았다 느껴진다면, 원인을 분석하되 자기 부정이 아닌 '자기 수용'이 필요하다. 나만의 비법 소스를 만들어야 한다. 그건 양산형 책이 주장하는 '일반론'처럼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60년된 동네 맛집'처럼 개인의 인생 스토리텔링으로 완성될 수 있다.
'자기 수용'은 문자 그대로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장단점을 가리면 안된다. 상처 받은 사실도 간과해선 안되고, 상처를 받고 난 뒤의 감정, 부정적 생각들도 전부 다 수용해야 한다. 중요한 건, 수용하는 것이 참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참으면 마음의 병이 생긴다. 수용은 있는 그대로의 지금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제 위에 쓴 예시를 바꿔보자.
내가 사람을 쉽게 믿었구나, 일을 나 혼자 과도하게 처리했구나, 싫다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구나. 그리고 그 다음에 '왜'인지를 자신에게 물어봐야한다. 숨겨져 있는 '배경 자아'는 개인의 일화들의 연속으로 형성되므로, 스스로의 경험들을 되돌아봐야 한다. 양육자에게 버려지는 듯한 공포를 느낀 적은 없는지, 남들의 눈치를 많이 보다 고생했던 경험은 없는지, 과도하게 욕구를 표출하다가 억압받는 기분을 느낀 적은 없는지.
자신의 내러티브를 되돌아보고 나면, 다음은 더 간단한다. '부정적이라 받아들여지는 내러티브'를 자신이 생각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면 된다. 처음부터 과도하게 꺾으면 분명 넘어질 테니까, 한발짝씩 다가가보며 생각을 체화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혼자 과도하게 일을 하면서도 욕을 먹어서 아래와 같이 처신했다.
'교수님. 저 친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평 불만만 늘어놓습니다. 실상은 제가 모든 일을 다 처리해왔는데, 이제는 제가 조금 지친 거 같아서 저 친구를 팀 프로젝트에서 제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신력을 크게 기르는 것은 마음의 상처라고 명언에서 말하는 데, 사실 마음의 상처만 있으면 오히려 정신병으로 이어질 확률이 더 높다. 아마 프루스트는 마음의 상처를 긍정적 에너지로 활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상처 쉽게 받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스스로가 책임감이 높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적으로는 그럴 수는 있는데,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감'은 없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를 아끼고 챙길 수 있는 책임감은 인간 관계, 일, 가족 등 어디에서나 중요하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다면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건 '선을 만드는 것'이다. 자기 수용을 통해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불편해하는 것들이 명확해진다면 다른 사람들이 넘으면 안되는 선을 명확히 그으면 된다. 선을 그을 줄 아는 사람이 오히려 더 멋있고 사회적으로도 인정 받는다.
단순히 너는 나를 상처줄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상처는 근육통처럼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면 된다. 근력을 키우든, 운동을 하고 나면 푹 쉬든, 아니면 힘을 써야 하는 상황을 피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