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와 휴리스틱
팬데믹 시대에 접어들면서 새롭게 등장한 신조어가 하나 있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였던 시기 마스크로 인해 얼굴 일부를 볼 수 없었고, 이 때문에 하관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외모로 사기(?)를 친다는 의미의 '마기꾼' (마스크 + 사기꾼)이다. (일본에서는 '마스크 매직'이라 부른다고 한다)
남들에게 비치는 모습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비대칭적 심미성(외모지상주의)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단면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생기는 심리적 효과들이 여러 연구들을 통해 입증되었다.
2016년, 일본 여성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하여, 마스크 사용의 기대(마스크를 쓰면 외적인 매력이 상승할 것)와 다르게 오히려 매력(attractiveness)을 떨어뜨린다는 '위생 마스크(sanitary mask) 효과'를 주장하였다 (Miyazhaki and Kawahra, 2016). 이때 매력의 하락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가 '건강하지 않아 보임(unhealthy)'였으며, 흥미롭게도 '이미 매력적인 얼굴은 얼굴 가림(occlusion)의 효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보였다.
팬데믹 사태 이후로 마스크 착용이 더 이상 '건강함의 척도'가 되지 않게 되자, 매력도가 평범하거나 낮은 사람의 경우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매력도가 상승할 수 있으며, 마스크 착용이 매력도 및 감정 상태의 비언어적 표현의 기준을 바꿀 수 있음을 보였다 (Patel et al., 2020).
외적인 것의 기준은 개개인마다 다르다 생각하기 때문에 '평균'이라는 표현을 지양하는 편인데, 더군다나 '마기꾼'이란 말도 위 연구에서 언급된 낮은 매력도와 연관되는 듯하여 한편으론 씁쓸하다. 더욱이, 소통 과정에서 비언어가 상대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만큼, 마스크 착용이 '소통에서의 오해'를 종종 불러일으키곤 했었을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팬데믹에서 '위생 마스크 효과'가 성립하지 않음을 보였으며, 단순히 부정적인 요소들을 가리는 것뿐만 아니라 올바른 이미지 등의 사회적 '미'가 요인일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Hies and Lewis, 2022).
'마기꾼' 효과는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만 적용된다고 하니, 위의 재밌는 심리적 효과들을 사용할 때 유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다행히도 현시점은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심리이론들을 고려해야 할 수고가 덜어졌다. (그래도 코로나가 다시 유행이라고 하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마스크는 얼굴의 일정 부분을 가려, '완전한 모습의 얼굴'을 볼 수 없게 한다. 이 세상엔 팬데믹 시절의 마스크처럼, '미완성'에 기여하는 다양한 매개체들이 존재한다.
나는 완벽주의의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미완성의 미학'에 대한 갈망이 있다. 완성되지 않은 것이 윤활유가 되어 생각의 속도를 높이기도 하고, 완벽하지 않은 것이 나를 수없이 채찍질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예기불안'이 높은 편이라, 결론이 불분명한 일들을 마주할 때면 나만의 상상 속 할리우드에서 영화 다섯 편은 거뜬히 만들어내곤 한다. 가끔은 생각과 현실을 분리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잠식당하기도 한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기 위하여, '미완성의 심리학'에 관한 포스팅을 시리즈로 준비하였다. 총 3부로 나누어 연재할 예정이며, 목차는 다음과 같다. 주제에 맞게 목차를 구성하였으니,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분명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실 것이라 기대한다.
미완성의 심리학 (1) - 완벽주의와 휴리스틱
미완성의 심리학 (2) - 관계의 후폭풍과 자이가르닉 효과
미완성의 심리학 (3) - 거짓 기억과 자아, 그리고 성격
완벽주의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던지고 싶은 근본적인 화두가 있다.
합리적/이성적 사고란 무엇인가. 완전 무결한 합리성이란 존재하는가.
나는 가장 이성적이라 믿는 것이, 때로는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의 집합체라 느낄 때가 있다. 감정을 배제한 채 말한다는 이들의 어투에서, 덕지덕지 붙어있는 '인정 욕구, 결핍, 자존심, 자만심' 등을 느낄 때가 있다. 요새 MBTI가 유행하다 보니, 'T형 인간'에 대한 희화화가 밈처럼 나오고 있다. 사회성의 결여가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다'라는 주장에서, 우리는 이미 '합리성'에 대한 깊은 오해가 있는 듯 보인다.
합리성 (rationality)은 어떠한 행동/판단(action)이 행위자의 욕구(desire)에 의거한 '합리적' 증거(evidence)와 신념(belief)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합리성의 근본적 한계는 '모든 선택지(증거)'를 고려하는 것이 불가능함에서 기인한다 (Elster, 1989). 맥락에 관련 있으며, 다른 요소들에는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현재의 상황에만 적용되어야 하는, 모든 기준의 선택지를 고려하는 것은 컴퓨터 알고리즘이 아닌 이상 어렵다. (심지어 AI도 데이터 수집 등의 문제로 불가능하다)
본인을 굉장히 이성적/합리적이라 믿는 사람들은 오히려 지나치게 편향(biased)되어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교수와 같이 오래 공부한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생기는 현상 중 하나가 '사고의 수로화(canalization) 현상'이다. 이들은 공부를 거듭하며 고착화된 인지 과정을 통해, 주어진 상황/현상을 두고 'A는 B다'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하곤 한다. A가 B일 확률이 높을 순 있으나, 천부권 등의 인간 기본 권리가 아닌 이상 옳고 그름의 흑백 논리는 존재할 수 없다.
나는 흔히 말하는 'T형 인간'이 나쁘다 주장하고 싶진 않다. 다만, 본인을 과도하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 믿는 사람에게, 합리성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할 수도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자기 성찰 과정 중에, 어쩌면 그 누구보다 감정적으로 결핍과 혼돈을 느끼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합리성과 비슷한 관점에서, 사람들의 인지/사고는 지름길을 택하곤 한다. 선택지를 모두 고려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본인의 기준에서 최선의 선택지를 정하고 이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이 지름길의 도로명 주소는, '휴리스틱'이라 불리곤 한다.
휴리스틱은 인지 차원에서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깨어있는 모든 순간에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뇌를 사용하기 때문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기 위해선 지름길을 잘 찾아가야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심지어는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정할 때도 휴리스틱이 작용한다. 심지어는 민주주의 꽃인 선거에서도 이성적 판단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Blais, 2000).
때로는 이러한 휴리스틱이 선택한 후에도 일어나기도 한다. 특정 행동이 인지상태를 바꿀 수 있는 '인지부조화', 자신이 선택한 로또가 당첨될 것이라 믿는 '내부귀인'까지 다양한 패턴들이 매 순간 일어나고 있다.
나는 완벽주의도 이성적 사고와 연결된다 생각한다. 모든 선택을 자신이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상황 역시 합리성을 기준으로 가치를 매기며, 자신이 심사숙고한 의견과 기준만이 완벽하다는 휴리스틱에 갇혀있는 것이 완벽주의의 일면이라 본다. (물론 긍정적 완벽주의자는 능동적 문제 해결로 동기부여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존재한다 (Burns, 2005))
하지만, 완전 무결한 합리성은 사실 존재할 수 없다. 주관적으로 보이는 완벽함도, 또 다른 시각에서는 미완성된 결과물일 수 있다. 완벽하다고 믿는 것은 특정 개인의 휴리스틱에 불과할 수 있다. 보잘것없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세상에 존재하는 더 많은 아름다움을 느낄 기회를 박탈당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완벽하지 못하면 불안하다 느껴질 수 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하였듯, 불안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수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수용뿐만 아니라, 이미 벌어진 상황에 대한 수용도 중요하다. 현재 직면한 상황/문제가 어떠하든, 더 이상 바꿀 수 없음을 인지해야 한다. 합리적으로 바꿔야 하는 것은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이 아니라, 역경을 대하는 태도이다.
불안함이 커질 땐 '인지부조화'의 효과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긍정적인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심적으로 여유가 생길 수 있다. 습관처럼 굳은 과거의 나와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 수 있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간 뇌의 위대함'을 느낄 것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지만, 그 개인이 용기를 낸다면 충분히 바뀔 수 있다.
합리성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또 해본다면, 완벽주의와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선택지'를 늘리는 것이다. '선택지'를 늘리려면 다각도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혼자서 하기 어렵다면,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에게 가서 문제 상황을 공유해 보는 것도 좋다. 산이의 노래처럼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라 해도 좋다. 이야기를 들을 때 '저 생각은 합리적이지 않아'하고 거부하면 안 된다. 그러한 방어 기제가 아마 그 순간 가장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일 것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대인 관계, 특히 연인 관계에서의 '미완성의 미학'에 대해서 다뤄보려 한다.
p.s. 만약 다음 포스팅이 기다려진다면, 그것 또한 미완성의 미학일 것이다.
Reference
[1] Miyazaki, Y., & Kawahara, J. I. (2016). The sanitary‐mask effect on perceived facial attractiveness. Japanese Psychological Research, 58(3), 261-272.
[2] Patel, V., Mazzaferro, D. M., Sarwer, D. B., & Bartlett, S. P. (2020). Beauty and the mask. Plastic and Reconstructive Surgery Global Open, 8(8).
[3] Hies, O., & Lewis, M. B. (2022). Beyond the beauty of occlusion: Medical masks increase facial attractiveness more than other face coverings. Cognitive Research: Principles and Implications, 7, 1-6.
[4] Elster, J. (1989). Solomonic judgements: Studies in the limitation of rationality. Cambridge University Press.
[5] Blais, A. (2000). To vote or not to vote?: The merits and limits of rational choice theory. University of Pittsburgh Pre.
[6] Burns, L. R., & Fedewa, B. A. (2005). Cognitive styles: Links with perfectionistic thinking.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38(1), 103-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