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의 심리학 (2)

관계의 후폭풍과 자이가르닉 효과

by 유세미나

나는 불안함이 많다. 일어나지 않는 일을 걱정하는 '예기 불안' 뿐만 아니라,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와 미련도 많다. 이미 결과가 나온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나 자신을 탓하곤 하였다.


좀 오래된 신조어이긴 하지만, 잠에 들기 전 지나간 일에 후회가 커지는 것을 '이불킥'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남들은 기억도 나지 않을 일들의 바짓가랑이를 나 홀로 붙잡곤 했었다.


내 딴에는 부정적인 결과뿐만 아니라, 그 과정 하나하나가 시린 듯이 아팠다. A라는 선택지는 어땠을까, B라는 말이 나았을까, C라는 행동이 좋았을까 하며 스스로를 채점하였다.


결국 내가 원하지 않은 결과나, 낮은 점수를 매겼던 모든 과정들이 '미완성'이라 느꼈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은 그 결말을 알 수 없으니 언제나 완성되기 어렵다.


다만, 내가 지나왔던 '자갈길' 보다는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포장도로 같인 생긴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후회했다. 초보 운전자가 차선 변경을 못하는 것처럼, 생각과 감정이 미성숙해서 그런 것이라 여겼다.

train-4165566_1280.jpg [출처 :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

그런데, 사실 우리는 지나오지 않은 길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의 무게를 매기는 것은, 어쩌면 겪어온 일들의 값어치를 따지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일지 모른다.


과연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달라졌을까?

포장도로가 아스팔트라면 굉장히 뜨거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길은 차도라 차들을 피하느라 신경이 예민해졌을 수도 있다. 정확한 사실 여부를 알지 못하지만, 마을에 도착해서 한참 동안은 '그 포장 도로'를 잊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완성되지 않은 일들을 쉽게 잊지 못한다. 이러한 사실을 처음 발견한 심리학자 자이가르닉은 이를 '미완성 효과'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명명하였다 (Zeigarnic, 1927).

13421_2020_1033_Fig1_HTML.jpg [출처 : Reference [5]] 자이가르닉의 모습.

인간관계에서도 자이가르닉 효과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관계는 두 사람 이상이 맺는 것이니까, 미완성이 더 많이 작용하는 곳이다. 상대의 생각과 감정은 완전히 알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공백을 자신만의 상상으로 채우곤 한다.


사랑을 할 때도 자이가르닉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상대를 알아갈 때의 감정, 흔히 '썸'이라 부르는 관계가 생기는 것은 알 듯 모를 듯한 상대의 마음과, 완성되지 않은 '관계'에서 오는 거 같다.


불안함이 높은 사람들은 주변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나 역시도 모든 상황과 결과에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그러나, 관계의 갈등, 혹은 끝은 항상 '미해결성'을 남긴다. 이별의 이유를 찾기 위해 쏟았던 시간이 나를 더 짓누르곤 했었다.


특히나, 사람들은 행동을 함(action)으로 인해 발생한 후회보다, 하지 않음(inaction)으로 인한 후회를 더 크게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Savitsky et al., 1997). 어쩌면 미성숙한 첫사랑의 아픔도 이곳에서 기인할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미해결성, 미완성'에 대한 이유를 굳이 찾으려 하지 않는다. 어떠한 선택을 했든, 어떠한 관계였든, 그 시점의 과정과 결과들이 '상대방과 나의 최선'이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길은 과거의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직접 갔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눈으로 보는 것과 피부로 직접 느끼는 것은 다르다. 땅을 딛고 있는 감각을 몸소 느꼈을 때, 선택에 대한 가치와 무게가 마치 중력처럼 쏟아질 것이다.


헤어진 연인에게 나타나는 후회나 미련, 즉 '후폭풍'도 결국 '미해결성'에 의해서 생긴다. 최선을 다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힘든 것은, 앞서 소개한 이론처럼 '하지 않음으로 인한 미완성' 때문일 것이다.


혹여나 재회를 하고 싶거나, 흔들리는 관계를 붙잡고 싶다면 '미해결성'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미해결성은 비밀이나 신비로움이 아니라, 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발 디딜 수 없는 나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은 '미해결성으로 인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이별이나 관계에서의 '미해결성'은 수면 장애 및 일상생활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장기간 (3개월이 넘는)의 걸친 미해결 (unfinishied) 업무는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수면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Syrek and Antoni., 2014, Syrek et al., 2017).


만약 인간 관계도 하나의 업무로 여길 수 있다면, 관계에서 생긴 '미완성'도 분명 수면 장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와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미완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 수용과 비슷할 수 있으나, 외부의 요인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르다.


나는 부침을 겪을수록, 완성되지 않은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불안정한 완벽함은 오히려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곤 한다.


삶은 업무나 과제와 다르다. 인생의 과업은 있을 수 있지만 매 순간 주어진 일과는 다르게 인생은 장시간에 걸쳐 이루어진다. 현재의 실수들에 지나치게 몰두하다 보면, 완전함/완벽함의 기준을 오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은 그 사태를 바라보는 나의 감정과 생각뿐임을 잊으면 안 된다.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니, 그들의 감정에 '해결성'이라는 성질을 부여하면 안 된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나의 뜻대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 생각과 감정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대부분의 부정적 감정이나 생각 역시도 그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미해결성'에서 온다 생각한다.


미해결성도 긍정적으로 사용한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미해결성에 끌려다니지 않는다면, 미완성의 미학을 수용하는 삶을 통해 보다 건강한 관계와 가치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해결성'을 부여하는 주체는 결국 나 자신임을 기억하자.


* 사실, 자이가르닉 효과는 현재는 각광받지 않는다. 대신 비슷한 이론인 '폰 레스토프 효과' (Von Restorff Effect)가 여러 학술 서적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MacLeod, 2020).


* 폰 레스토프 효과의 경우, 고립된 기억(isolated) (다른 정보와 엮이지 않는, 특별한 기억)이 기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함이 자명하다.


Reference

[1] Zeignaric, B. (1927). Das Behalten erledigter und unerledigter Handlungern. Psychologische Forschung, 9, 1-85.

[2] Savitsky, K., Medvec, V. H., & Gilovich, T. (1997). Remembering and regretting: The Zeigarnik effect and the cognitive availability of regrettable actions and inaction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23(3), 248-257.

[3] Syrek, C. J., & Antoni, C. H. (2014). Unfinished tasks foster rumination and impair sleeping—Particularly if leaders have high performance expectations. Journal of Occupational Health Psychology, 19(4), 490.

[4] [3] Syrek, C. J., Weigelt, O., Peifer, C., & Antoni, C. H. (2017). Zeigarnik’s sleepless nights: How unfinished tasks at the end of the week impair employee sleep on the weekend through rumination. Journal of Occupational Health Psychology, 22(2), 225.

[5] MacLeod, C. M. (2020). Zeigarnik and von Restorff: The memory effects and the stories behind them. Memory & Cognition, 48, 1073-1088.

keyword
작가의 이전글미완성의 심리학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