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 비로소 멈춰지는 것들

특별함과 평범함, 그리고 미련과 끈기의 차이.

by 유세미나

나는 하고 싶은 게 굉장히 많았다. 정확히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많았다.


나의 형은 어린 시절 '육상 선수'로 전국을 제패했었다. 아토피와 땀띠 때문에 고생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운동을 잘하는 형이 그저 멋져 보였다.


그래서 형과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운동을 잘하는 형이 나에게 져줄 때면 한없이 행복했다. 그러나 나의 몸은 운동을 할수록, 땀이 날수록 더 이상의 운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어린 시절의 나는 외부 활동보다는 '독서'등의 활동적이지 않은 취미들에 이끌렸다. 아마도 넘치는 나의 호기심과 열정을 책이라는 창구를 통해 지적 호기심으로 승화시켰던 것 같다.


재밌는 점은, 나 역시도 달리기를 못하는 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교내 예선에서 손가락 안에 들었으며, 계주에도 항상 뽑혔었다.


다만, 나는 나의 신체의 한계를 한순간 '보았고' (정확히는 부모님께 '보여졌고'), 그 때문에 나의 어린 시절의 운동은 잠시 멈춰지게 되었다.


나는 어느 순간 나의 운동 능력이 형편없다 믿게 되었고, 이는 내가 운동을 대할 때 '낮은 자세'를 갖게 되는데 일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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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한 번쯤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거나, 혹은 주변에 이런 생각 또는 말을 하는 이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특별하다


나는 누군가가 자신을 특별하다 말하는 것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은 소중하고 특별한 법이니까.


하지만, '나는 특별하다'는 말은 양가적인 특성을 지니는 거 같다. 자신감의 표현이면서도, 동시에 오만함의 표현이다. 누가 어떤 상황에 하냐에 따라 말에서 풍기는 내음이 달라진다.


그 내음을 구분하는 방법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다. '특별함'의 기준은 굉장히 변화무쌍해서 가끔씩 오해와 때로는 혐오를 일으키기도 한다.


나는 '어떠한 관점에서 보느냐'가 중요하다 생각한다. '자기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과 '남과 비교해서 내가 특별하다' 생각하는 것은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아마도 자신감에 가득 찬 긍정적인 자기 PR로 보일 테고, 후자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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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굉장히 독특한 이야기로 들릴 테지만, 논문을 읽거나 독서 등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접할 때면 설레는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나는 나의 이러한 모습이 좋다. 그리고 이 같은 모습을 특별하다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특별함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불행히도 어렸을 때는, 나는 나의 특별함을 가까운 타인들에게 부정당했다. 그들은 '삼촌이란 탈'을 쓰고 가족인 양 행세하며 어린 시절 나의 뇌리에 '내가 특별하지 않음'을 각인시켰다.


우습게도, 그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는 누구보다 관대하였다. 그들에게는 '남들보다 너희들은 특별하다'라는 세뇌(?)를 지속하였다. (하지만 권성징악의 결말답게 나의 사촌들은 모두 이상해졌고, 나는 열심히 잘 살고 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과'에 굉장히 집착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몸부림쳤다. 정확히는 '남들 눈에 특별하게 보이기 위해' 뼈를 깎았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받지 못해 좌절도 여러 번 했다. '남들 눈에 특별해 보이는 결과'들조차 나에게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나를 더욱 닦달하였다.


그런데 그런 닦달과는 달리 나는 절실하진 않았다. 과정이 절실하지 않으니 절실한 결과는 꿈도 꾸지 못했던 거 같다. 스트레스받던 나의 내면과 달리,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만 다했다.


왜인지는 커가면서 깨닫게 되었다. 사실 문제는 내가 '나와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내가 나를 특별하다 생각하지 않으면,
내 한계를 뛰어넘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가 없다.


남들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언젠가 분명 지쳐 쓰러질 것이다. 땀띠나 아토피 같은 알레르기 반응도 결국 몸에서 보내는 '거부 신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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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현대 사회에서 멈춘다는 것은 '사형 선고'에 가깝다. 그래서, 그 누군가의 말처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분명 많고 이는 한숨을 돌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멈춰서 볼 수 있는 것들은 '내가 현재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의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나는 그래서 '보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스스로의 내면을 되돌아봤을 때 비로소 나의 '특별함과 평범함'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 봤을 때 비로소 '잘못된 시각'은 멈춰진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미련'이다. 인정 욕구로 가득 찬 마음을 제대로 보았을 때, 그제야 부정적인 감정이 멈춰지고 하루를 멋지게 보낼 끈기를 갖게 된다.


나의 신체 능력의 평범함을 깨달은 나는 '끈기'를 가질 수 있었다. 재밌게도 지금 나의 취미 중 하나는 '런닝'이 되었다. 물론 이것도 나의 '무릎 부상'을 보고 나서 잠시 멈춰지게 되었지만 :)


평범함과 특별함에 대해서 가장 좋아하는 영상이 있다. 배우 오정세님의 56회 백상예술대상에서의 수상 소감이다. 그는 아래와 같이 수상소감을 말하였다.


세상에는 참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이 많은 거 같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략]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 분 탓이 아닙니다.

그냥 계속하다 보면 평소와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여러분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니 나 역시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범한 자기 자신의 특별함을 따뜻한 눈빛으로 보고,


끈기를 갖고 나아가다 보면 분명,


위로와 보상이 우리 모두의 발걸음을 멈춰지게 할 테니까.


* 오정세님 영상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LmgWxezH7cc&t=3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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