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팽이 돌리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였다. 용돈을 모아 팽이를 하나씩 샀고, 팽이만 담는 전용 가방이 따로 있을 정도로 모으게 됐다. 그 가방에는 다양한 종류의 팽이가 가득했다. 나는 방과 후가 되면 책가방 대신 팽이 가방을 메고 동네 곳곳을 누볐다. 덩치가 작았던 나에게 팽이 가방은 거대했고, 그로 인해 나도 덩달아 동네 유명인사가 됐다.
그렇다고 해서 팽이를 잘 돌려서 동네를 휩쓸고 다닌 건 또 아니다. 나의 실력은 미처 강했던 승부욕을 따라잡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더 많았다. 팽이 종류가 다양하다고, 그 숫자가 많다고, 값비싼 팽이가 있다는 게 실력을 보장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팽이 대결에서 이기는 방법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세게 돌리는 게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서야 깨달았다. 굳이 싸우지 않아도, 상대가 먼저 지쳐 쓰러져도 승리한다는 것을. 결국 관건은 어떻게 내가 보유한 팽이를 그 중심에 맞춰 '잘 돌아가게 하느냐'였다.
결국 상대를 이기기 위한 방법은 상대보다 나에 대한 '집중'이었다. 중심을 제대로 잡는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완전한 공격도 가능한 일이었기에. 오뚝이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이유도 잘 잡혀있는 '무게중심'인 것처럼 말이다.
살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숱한 난관, 장애물과 마주하게 된다. 이들의 방해 속에서도 한 발자국이라도 전진하기 위해선 스스로 삶에 대한 '중심'을 잘 잡는 것이 필수다. 스스로가 믿으며 지켜온 것들을 살펴내야 흔들림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어느 침대 광고 속 문구처럼 삶의 유지도 나의 중심이 잡혀 있을 때 가능하다. 나는 내 삶의 무게중심을 어디에 쏟고 있는지를. 그것이 사랑인지, 일(work)인지 또는 신념인지, 돈인지.
주변의 초를 모두 태우고도 끝까지 사라지지 않고 그 안을 지키는 곧은 심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