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 꿈은 도서관 사서였다
“도와줄 사람 없이 아이 둘 키우면서 맞벌이한다는 게 욕심 아니야?”
“좋겠다. 도서관 사서는 안 바쁘잖아. 아이들 키우면서 쉬엄쉬엄 다니기에 딱 좋네.”
“뭐? 주말에도 근무한다고? 뭐 그런 회사가 다 있니? 월급은 코딱지만큼 주면서.”
“그래도, 다녀야지 어쩌겠어. 내가 휴직할 거니깐, 넌 다녀.”
순서대로
동료
첫째 어린이집 친구 엄마
시댁 어르신
남편의 말이다.
지금은 지옥 같아도, 나름 “덕업일치”라고 생각하며, 힘들어도 웃고 행복하게 다녔던 때가 있었다. 기업체 자료실에서 1년 육아휴직자의 대체로 근무를 하며 ‘내가 생각했던 도서관 사서는 이런 게 아닌데’라는 생각과 “왜 4년제 나왔는데, 보조업무를 맡아서 해, 너도 정규직 되려면 도서관 업무 말고, 나와서 분석 리포트를 써야 해”라고 하셨던 말씀에 치기에 어려,
“그래 나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고 재미있는 책이 많은 공공도서관을 가야겠어!” 하고 내 발로
뛰쳐나왔다.
나의 머릿속의 공공도서관 이미지는, 내 인생 첫 도서관, 주말마다 늘 걸어갔던 지금도 그곳에 있는 동네 도서관이다.
햇볕이 유난히도 잘 들던, 유년 시절의 반을 보냈던 이 층집 베개로 쓰기에도 너무 두꺼운 백과사전 옆, 세계 명작 동화와 전래 동화 한 질. 기억으로는 한 60권이었으려나, 분홍색 책 등을 뽐내던 나의 첫 책들. 유입된 경로는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책들이 너덜너덜해지고,
흥미를 잃어갈 때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걸어서 꼬박 30분이 걸리는 산꼭대기 도서관에 데려갔었다.
끝이 안 보이는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비 오면 지렁이가 꿈틀대서 작은 비명과 함께 까치발로 걸어가야 하던 빨간 벽돌이 깔려있는 작은 길을 따라가면 나오던 도서관. 살짝 음침한 1층 로비와는 달리, 난간을 꼭 붙잡고 한 칸 한 칸 내려간 지하 일 층은 매점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와, 전공을 배우며 알게 된, 그때는 그냥 여닫는 게 즐거웠던 카드 목록함 그리고 두꺼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있는 그곳 어린이 자료실이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 봤던 책은 반듯반듯 같은 크기의 전집이 다였던 지라,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그림책들이 정리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았던 게 나의 첫 기억.
엄마를 따라, 엄마가 고른 책을 들고 뒤뚱뒤뚱 서가 사이를 졸졸졸 따라다니고, 대출 반납을 하고 엄마 손을 꼭 잡고 집에 오는 길이 마냥 즐거웠는데, 몇 년 뒤 네 살 터울의 동생이 생기고, 동생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 다녔던 기억은 친정집에 오래된 앨범에도 남아있다.
땀을 삐죽삐죽 흘리며, 늘 가위바위보 했던 계단에서 한 장, 눈이 이렇게 많이 온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도서관 앞에서 누가 눈사람인지 구별이 안 되는 사진 한 장, 가을날 도서관 앞 놀이터에서 신나게 그네 타는 사진 한 장.
주말이 되면, 혹은 읽던 책을 다 읽으면 동생과 함께 나란히 걸어 늘 도서관으로 달려갔고,
고른 책이 빌려올 수 있는 대출권 수보다 많을 때는 진지하게 저울질하며, 못 빌려오는 책은 다른 친구들이 못 빌려 가게 책 등을 뒤집어 꽂아 숨겨놨던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다녔던 어린이 자료실에서, 중학생이 된 나는 종합자료실로, 동생은 어린이 자료실에서 책을 빌리게 되고, 잠시 나만의 시간에 음악을 들으며 두꺼운 책들 사이를 지나다닐 때면 마치 내가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동생과 함께 서가 사이에서 함께 보던 제빵 책에서는 달콤한 빵 향기가 날 것 같았고, 사춘기 시절 친구와 함께 가서 슬쩍 본 잡지는 연예계 가십거리를 보며 낄낄낄 즐거워했더란다.
해리포터와 같이 순서대로 읽어야 할 책이 내가 빌릴 순서의 권 수가 없으면 무척 아쉬워도 했으며, 도서관에서 재미있을 것 같아 읽었던 고전소설이 수능 볼 때 나왔을 때는 그렇게 반갑더라. 중, 고등학교 자원봉사 시간을 채워야 할 때, 도서관에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으며, 사서 선생님께 달려가 서가가 꽉 찼으니 단 조정을 하겠다고 하며 목장갑까지 얻어 끼고 낑낑댔던 그때. 대학에 가고 나서 첫여름방학을 의미깊게 보낸다며 컴퓨터 학원에 다니며 땄던, 컴퓨터활용능력 2급 필기시험을 준비할 때도, 졸업을 앞두고, 졸업 조건이었던 정보처리기사 시험을 준비할 때도 난 늘 그 도서관을 찾았다.
그리고, 늘 가던 도서관에서 나도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며, 유난히 소극적이던 나는 용기 내어 어린이실 사서 선생님께 물어봤다.
"선생님처럼 도서관에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바쁠 주말에, 뒤에 대출하려는 사람이 길게 줄을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쁜 글씨로 "문헌정보학과"를 써주시며 "대학을 이 과로 가야 해"라고 말해준 선생님. 그 후 난, 문헌정보학과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년 시절, 가장 즐거웠던 공간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았던 그날. 작은 종이를 품에 안고 신나게 집에 온 그날.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사서가 되고, 이제는 내가 대답하는 입장이 된 이 질문.
"선생님처럼 도서관에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
라고 말하는 학생 앞에서 난, 정답을 알려줄 수 있을까? 또한, ”꼭 사서가 되렴.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