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늘 곁에 있는
나의 첫 도서관은 어렴풋하게 기억을 하나, 그렇다고 '언제부터' 책을 좋아했냐는 질문에는 항상 "글쎄요."라고 대답하며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책 좋아하시니, 도서관 사서니 너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상대방에게 “책만 좋아해서는 안 되더라고요.”라고 곁들어 말하기도 하는 요즘. 책은 내가 어릴 때, 나이 들어서, 학생일 때, 주부일 때, 기쁠 때, 슬플 때 언제든 내 옆에 있었다. 손 닿는 곳 어디에나 늘 책이 머물렀으며, 습관적으로 책을 펼쳤다.
학창 시절에는, 오로지 '재미'에 초점을 두고 머릿속에서 주인공이 뛰어노는, 나만의 영화가 상영되는 책들을 좋아했으며, 고3 수능 끝난 후, 기욤 뮈소의 책을 선물 받고는, 그의 신작이 나오면 지금까지도 늘 찾아서 읽고 있더란다. 삶의 터닝포인트가 필요할 때는 뻔하지만, 나에게 잔소리해 주는 책들을 찾았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무언갈 시작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그 어디보다도 책을 먼저 찾았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니 지금, 이 생활을 잘 해내기 위하여 책의 도움을 받은 날도, 가끔은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나를 잃어간다는 느낌이 드는 우울한 날에도 현실도피를 위해 책을 펼쳐 든 날도 많았다. 아이가 잠을 자는 시간, 조용히 곁을 빠져나와 조용히 클래식이 흐르는 라디오를 틀거나 음악 애플리케이션에 저장해 둔 플레이리스트를 곁들이거나 앱에서 추천하는 잔잔한 음악을 배경 삼아 커피와 함께 종종 점심을 넘기고 책을 펼치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던지, 늘 마음이 어지럽거나 운동하기에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면 여전히 책을 펼쳐 든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펼쳐 드는 책들 또한 가지각색이었고, 온갖 걱정들로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 날에는 손끝으로 활자를 따라가며 읽거나, 이마저도 하얀 것은 종이, 검정 것은 글자로 보이는 날에는 조용히 읊조리며 읽기를 반복하였다.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다행히 내 곁에는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몇 가지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과, 좋아하는 책과 음악, 그리고 정을 듬뿍 주고 있는 식물.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나 혼자 내적 친밀감을 쌓은 노란 고양이 나비를 찾는 인근 산책로까지 내가 있는 이곳에 온 정을 붙이고 있다랄까.
사실, 남들이 보기엔 지극히 외향적인 인간(대문자 EEEE)이나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나는, 꼭 누군가를 만나기 전 책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외출할 때는 꼭 책 한 권을 가방 속에 챙겼으며, 함께 갈 책 한 권 고르는 시간도, 약속을 위해 이동하는 찰나에 만난 책을 만나는 시간도 참으로 소중하였다.
평소 루틴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 가야 할 때면, 그 상황에 맞는 옷이 아닌, 어떤 책을 들고 갈지를 더 신중히 고르기도 하는 나. 다 읽기 못하고 들고 오는 건 물론, 그 지역의 서점에서 또 새로운 책을 사 오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어느샌가 나의 여행 아닌 여행의 기억은, ‘아- 그때 읽었던 책은 그 책이었구나, 그곳에서 산 책은 이 책이었지.’라고 기억에 남고는 한다.
먼 여행이 아니더라도, 평상시와 다른 일정이 생기면 만남의 장소는 서점. 삼십 분은 일찍 도착하여 혼자 책들 사이를 거닐며 읽고 싶은 책들을 탐색하였으며, 시간이 안 되는 날에는, 약속이 끝나면 꼭 혼자라도 들렸던 설레던 장소.
가끔 서점이나,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기가 빨린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서점은 나에게 콧노래가
나올 만큼 즐거운 놀이터였고, 사람에게 쏟은 에너지를 활자로 가득 채워주는 공간이었다.
서점을 좋아하니, 책도 많이 사나요?라는 질문에 “제 책을 사는 데는 많이 고민하지만, 아이들이나 책을 선물할 때는 비교적 잘 사는 편입니다.”라고 답한다.
내 책을 사는 기준은 마치 내 집을 사는 것처럼 높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또는 주변에 함께한 사람들에게 책 선물하기는 참 좋아한다. 아직도 책 선물은 선물 중에 가장 어렵지만,
상대방이 기뻐하는 모습 혹은 책을 읽고 난 뒤 건네는 한마디가 나에게는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엔도르핀이라고 할까.
여러모로, 책이 있기에, 책이 좋기에, 책을 매개로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일을 아주 작은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 내가 도서관 사서가 되게끔 한 게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하여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그래도 난, 내 직업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