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VGA Robin(SV021) PRO
* 셰에라자드로부터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시브가의 페어 전략
SIVGA는 중국의 이어폰&헤드폰 전문 브랜드입니다. 저는 이 브랜드를 만날 때마다 자연(우드), 전통(유선), 장인정신이란 세가지 키워드로 소개하고 있는데요, 몇 년간의 이런 활동이 꽤 효과를 보인듯 이제는 많은 국내 분들에게 익숙한 브랜드가 된 것 같습니다. 시브가에서 최근들어 예전에 출시했던 모델의 상급 버전을 페어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어폰에서는 Que - Que UTG, Nightingale - Nightingale PRO 이렇게 선보였는데, 이번에는 헤드폰 차례인 듯하네요. Robin(SV021)의 상급 모델 Robin(SV021) PRO가 이번 리뷰의 주인공입니다.
보통 이렇게 구형과 신형이 갈릴 경우, 상위호환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구형은 단종되고 신형만 판매를 하게 되지요. 그러나 시브가는 조금 다릅니다. 전체적인 평점이야 신형 모델이 더 높겠지만 구형 모델이 더 뛰어난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따라서 둘 다 동시에 판매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모델 하나를 좀 더 상품성이 좋은 메이저 모델, 상품성은 약간 부족하지만 독특한 매력을 지닌 마이너 모델로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 Robin(SV021) PRO
시브가 대부분 제품들이 '새' 이름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이 제품 역시 Robin(지빠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보다는 SV021로 더 잘 알려진 듯합니다. 저는 기계적인 느낌의 영문+숫자보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 게다가 동물을 좋아하니 이전에 출시된 쪽을 로빈, 이 글의 주인공은 로빈 프로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로빈(2021년 출시, 22만 3000원)과 로빈 프로(2026년 출시, 27만 5000원)는 밀폐형 유선 헤드폰으로, 20만원대 금액으로 만날 수 있는 시브가에서 가장 저렴한 헤드폰 형제입니다. 엔트리급답게 시브가 헤드폰 중 가장 슬림하고 아담한 사이즈를 지니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크기 구분은 귀를 완전히 덮는 오버이어 사이즈인데, 비슷한 경쟁 모델보다 더 작아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어컵의 크기는 최소화하고 대신 이어패드의 사이즈를 늘렸거든요.
헤드폰 No.1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착용감을 가지게 된 데에는 이렇게 크게 만들어놓은 이어패드가 꽤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착용감 끝판왕이라고 생각하는 BOSE 제품에 비교했을 때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로빈 프로의 착용감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수준입니다. 넉넉한 크기의 이어패드 안쪽에는 오버이어 사이즈 헤드폰치고 꽤 큰 50mm의 드라이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착용감만 허락된다면 드라이버의 크기는 클수록 좋지요. 그 외에 실내/실외 환경에서 두루 사용할 수 있는 1.6m의 분리형 케이블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도 다른 제품과 구별되는 특징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로빈 프로의 가장 큰 장점은 이 브랜드의 3대 키워드 중 하나인 장인정신입니다. 이것은 곧 마감 완성도를 의미합니다. 이어컵을 움직일 때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느낌, 길이 조절부의 확실한 구분감, 케이블 연결시 '딱' 하는 체결 소리, 우드와 메탈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멋스럽게 완성된 디자인 등, 그들이 주장하는 장인정신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엔트리 포지션인 로빈과 로빈 프로가 이 정도라면 더 높은 등급의 제품들은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예전에 로빈을 처음 만났을 때도 금액대비 마감 완성도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로빈 프로에서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한단계 더 높아진 완성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제품을 실제로 옆에 놓고 비교했을 때 첫 느낌은 '비슷한데?' 였지만 뜯어볼수록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로빈에 비해 로빈 프로의 금액이 오르긴 했지만 이 정도의 디테일 변화라면 소리가 똑같다고 해도 합당하다는 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 로빈과 로빈 프로
로빈은 BOSE와 SONY가 떠오를 정도로 굉장히 무난하고 대중적인 사운드를 선택했습니다. 아무래도 시브가 초창기에 나온 모델이다보니 시브가 고유의 개성이 적다고도 볼 수 있고, 위험도가 낮은(?) 무난한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로빈 프로는 성능과 개성 양면에서 모두 강렬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최대한 많은 분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성격의 로빈과, '나 아니면 할 수 없어'라는 독보적인 면모를 지닌 로빈 프로는 같은 태생의 제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반대되는 사운드를 지니고 있어요.
두 모델은 헤드폰 앰프 의존도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로빈은 헤드폰 앰프가 전혀 필요하지 않고, 헤드폰 앰프에 연결했을 때 오히려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로빈 프로는 헤드폰 앰프가 권장...... 아니 필수입니다. 앰프에 연결한 것과 연결하지 않은 것의 차이가 현격해서 앰프 없이는 로빈에 판정패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다행인 것은 앰프의 등급을 따지지는 않습니다. 다양한 형태와 금액대의 헤드폰 앰프에 연결하여 비교해보니, 아주 저렴한 동글 DAC/AMP나 끝판왕 헤드폰에 매칭되는 400만원대 거치형 DAC/AMP나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앰프이기만 하면 뭐가 됐든 OK라는 느낌이라서 헤드폰 앰프가 필수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부담되지는 않을겁니다.
제조사 시브가에 빙의해서 변호를 해보자면, 요즘 시대에 굳이 유선을 쓰겠다는 건 어느정도 사운드에 진심인 음향애호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어폰&헤드폰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DAC/AMP의 존재는 알고 있을테고, 그 중 가장 휴대와 구매가 쉬운 동글 DAC/AMP 하나 정도는 갖고 있을 공산이 크다는 계산입니다. 근데 그럴거면 기본 구성품에 하나 껴주지...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아직 시브가가 DAC/AMP 카테고리는 진출하지 않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요.
- 나이팅게일과 로빈 프로
로빈 프로의 첫인상은 꽤 난해합니다. '뭔가 잘못됐나?' 싶어 애꿎은 플러그를 뺐다 다시 껴보기도 하고, 이어컵과 헤드밴드 위치를 바꿔보기도 했지만 크게 변화가 없습니다. 이것은 의도된 사운드로, 밀폐형 구조의 작은 헤드폰에서 크고 입체적인 공간 표현과 개방감을 연출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개방감이나 공간감이라는 속성이 예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많은 분들에게 점수를 얻게 되었지만 여전히 음질이나 음악성에 비해서는 우선순위가 낮기에 일반적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특징은 에이징을 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기 때문에 내가 에이징이 되어야 합니다. 적응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물론..... 아무리 들어도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자면 이 제품은 처음부터 진입장벽이 존재합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첫인상에 헤드폰 앰프가 강제되니까요. 제 생각에 로빈 프로는 로빈과 다르게 공간이 커지고 입체적으로 변한 만큼 그곳을 채울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그것이 헤드폰 앰프입니다. 얼마전 리뷰했던 MEZE Audio의 99 Classics V2에서도 이전 99 Classcis에 비해 훨씬 크고 입체적인 공간을 연출하려 했고, 그래서 동글 DAC/AMP를 추가로 제공했었지요. 그와 거의 비슷한 변화로 이해하시면 되겠네요.
다행히 이전에 시브가의 다른 모델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봐서 엄청나게 당황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이팅게일이라는 이어폰이 있었는데, 결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뭔가 이상하다는 첫인상이 있었거든요. 구조상 이어폰은 공간을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부러 어느 한쪽을 열어두어 소리를 새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다른 이어폰에서 들을 수 없었던 묘한 공간감과 독보적인 개방감을 갖게 되었지요. 결과적으로 나이팅게일은 '여성보컬', '바이올린' 이 두가지 항목에서 어떤 이어폰도 달성하지 못한 매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발칙하고(?) 일탈적인 시도에 적극 찬성하는 편입니다. 납득할 수 있는 결과만 뽑아준다면요.
*나이팅게일은 일반 버전과 프로 버전이 존재합니다. 일반 버전은 미칠듯한 고음에 몰빵한 극단적인 사운드, 프로 버전은 저음과 안정감을 보강한 대중적인 사운드입니다. 제가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은 일반 버전입니다.
- 심수봉과 피아노
로빈 프로의 사운드에는 슬프고 우는 것 같은 흐느낌이 배어있습니다. 거기에 깊이가 더해졌죠. 그래서 제가 떠올린 여성 보컬이 바로 심수봉입니다. 제 아버지 세대에서 유명하신 분이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방송에서 흘러나온, 한이 맺혀있는 구슬픈 음색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원래 트로트라는 장르가 그런 감성이 있긴 하지만 낭중지추라고 해야 할까요, 혼자서 찬란히 빛나는 아름다움을 지닌 목소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로빈 프로를 심수봉을 닮은 헤드폰, 심수봉을 위한 헤드폰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그렇게 말은 했지만 심수봉의 노래를 듣기 위해 전용 헤드폰을 구매하실 분들은 별로 없을 것 같고요. 그 다음으로 이 헤드폰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장르는 피아노 곡입니다. 피아노 특유의 또랑또랑한 울림을 이처럼 잘 표현해주는 제품은 극히 드뭅니다. 시브가의 세 가지 키워드 자연(우드), 전통(유선), 장인정신에서 알 수 있듯 이 브랜드는 클래식에 대체로 강합니다. 그런데 클래식이라는 장르의 범주가 엄청나게 넓죠. 사용되는 악기도 많고 형식도 제각각입니다. 앞서 얘기한대로 나이팅게일이라는 이어폰은 바이올린과 같은 고음역대 현악기 연주에 기가 막힌 성능을 냈고, 로빈 프로는 피아노 연주에 기가 막힌 성능을 냅니다. 피아노 전용 헤드폰이라고 하면 조금 더 활용도가 높아질 것 같네요.
- 독보적 5관왕
이 제품은 20만원대 밀폐형 유선 헤드폰 카테고리에서 우승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들을 갖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마감 완성도입니다. 제가 시브가 제품들을 여럿 소개하면서 장인정신이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중국이 무슨 장인정신 ㅋㅋ 말같지도 않은 소리하네' 라는 댓글이 종종 달립니다. 그럼에도 저는 굴하지 않고 또 반복하겠습니다. 시브가는 제가 알고 있는 모든 헤드폰 브랜드 중에서 가장 마감 완성도가 좋습니다.
둘째로 착용감입니다. 로빈 프로보다 더 착용감이 좋은 헤드폰은 희귀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셋째로 클래식 재생 능력입니다. 시브가 제품 리뷰에서 제가 거의 빼놓지 않고 하는 얘기가 '시브가는 클래식에 아주 좋다', '클래식 장르에 한해서라면 시브가의 가성비를 따라올 수 없다' 입니다.
여기까지는 예전에 출시된 로빈 모델도 해당됩니다. 생긴게 거의 비슷하고, 사운드의 큰 틀에서 보면 자연악기에 강점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다음 넷째와 다섯째는 로빈 프로에만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넷째로 공간감 & 개방감 & 현장감입니다. 이 헤드폰이 밀폐형 구조라는 것을 헷갈리게 만들 정도의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마지막 다섯째로 빨려들 것 같은 마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헤드폰도 로빈 프로 같은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넷째와 다섯째가 이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한데, 진입장벽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전에 없던 특별함을 맛보고 싶다, 이 브랜드만이 들려주는 고유의 사운드를 존중하고 응원한다' 라는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제품입니다. 이런 뚝심과 깡다구가 제가 시브가를 좋아하고 높게 평가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