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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노래 Nov 18. 2023

이것이 차이파이의 현주소
어떤 결격사유도 없다

EPZ K1


'Made in China'


중국에서 생산되었다는 이 문장이 익숙해지는데 30년이 걸렸다. 처음 10년간은 절대로 상종해서는 안될, 가짜 상품에 찍히는 낙인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10년간은 저렴한 맛에 쓸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그 후 10년간은 아무런 감정을 갖게 되지 않았다. Made in China가 아닌 공산품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워질 만큼 보통의 의미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어폰/헤드폰으로 대표되는 포터블 음향기기 취미생활에도 거의 비슷한 변화가 있었다. 20년 전에는 Made in China 제품이 희귀했고, 그런 제품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중국은 생산지였을 뿐 제조사는 아니었고, 당연히 중국 이름을 걸고 나온 브랜드도 없었다. 지금은 전체 이어폰/헤드폰 시장 중에 약 절반가량을 중국 브랜드가 차지하고 있다. 설사 중국 브랜드가 아니라고 해도 최상위 플래그십 모델을 제외하면 모두 중국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중국 브랜드의 음향기기와 그것들로 음악을 감상하는 행위, 흐름을 통틀어 차이파이라고 부른다. 본격적인 장비를 투자해 음악감상을 하는 <Hi-Fi>와 중국의 <China>를 합친 말이다. <Made in China> 가 주던 인식의 변화와 동일하게, 차이파이에 대한 인식은 '그걸 대체 왜 쓰는가'에서 '입문용으로는 싼맛에 써볼 수는 있겠다'로 바뀌었고 이내 '소리 자체는 잘 뽑아내지만, 아직 음악의 맛을 이끌어내기엔 음악성이 부족하다'로 바뀌었다. 


2023년에도 이 생각이 유효한가 하면, 그렇지 않다. 




EPZ K1


금액 : 81,000

드라이버 : 1DD + 1BA

커넥터 : 0.78mm 2pin

플러그 : 3.5mm

구성품 : 파우치, 실리콘 이어팁 3쌍, 2단 실리콘 이어팁 3쌍


K1은 EPZ의 엔트리급 유선 이어폰으로, 그간 들어본 모든 이어폰 중에 가장 좋은 가성비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2022 VGP에서 수상된 이력이 있을 만큼 공식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Q1이라는 형제 모델도 있는데 그 모델 역시 만만치 않는 모델이고, 역시 2022 VGP에서 수상했다. 둘을 비교한다면 이런 차이가 있다. (머잖아 Q1를 소개하는 글도 올려 보려고 한다)


K1 : 밝고 경쾌함, 높은 해상도, 고음 위주 사운드, 1DD + 1BA 하이브리드

Q1 :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저음 위주 사운드, 진한 음악성, 1DD 



K1은 '드디어 차이파이에 결격 사유가 없다'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제품이다. 이 이어폰의 만듦새는 훌륭하고 음질은 뛰어나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차이파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대체 무엇이 다르다는 얘기일까. 


어떤 제품을 카피하다 보면 처음엔 똑같이 만드는데에 열중한다. 시간이 흘러 카피 제품의 완성도는 높아질 수 밖에 없지만 뭔가 허전한 부분이 채워지지 않는다. 제품 뒤에 있는 '이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K1은 드디어 듣는 사람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이어폰의 사운드는 부드럽게 귀에 감기며, 음악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음악감상의 환희를 전달해준다. 


보통 10만원 이하의 이어폰들은 그 자체로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평가하기 어렵다. 이상하지 않은 소리, 정상인 소리를 내는 데에 급급할 뿐이라서다. 닭들 사이에 끼어있는 한마리의 학처럼 K1의 경쟁상대는 10만원 이하의 제품들이 아니다. 자기만의 소리를 분명히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 소양도 출중하게 갖추었다. 


사실 음악감상용 음향기기들은 극도로 높은 성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극도로 높은 성능은 전문가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성능이 확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의 고가 제품을 선호한다. 따라서 차이파이가 가야할 방향은 높은 성능이 아니라 저렴하게 음악감상에 입문한 분들을 위해 더 재미있고 아름다운 음악의 맛을 이끌어내주는 것이다. EPZ의 K1은 이 깨달음을 설파하고 있는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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