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MAHA YH-5000SE & HA-L7A
몇 달 전 야마하의 YH-5000SE 하이엔드 헤드폰을 리뷰했었습니다.
https://brunch.co.kr/@beomnorae/36
제가 들어본 모든 헤드폰 중에 가장 뛰어난 음악성을 지녔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리뷰를 마칠때까지 흥분을 감추지 못했었지요. 마침 이 헤드폰과 페어가 되는 헤드폰 앰프가 출시되었다고 해서 또다시 심장이 두근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디오는 매칭의 미학이라는 말도 있고, 분명 1+1은 2보다 크죠. 우여곡절 끝에 둘을 모두 대여해서 감상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야마하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음향기기 브랜드입니다. 1887년에 설립된 기나긴 역사, 세계 최고의 매출액을 지닌 악기 제조사, AV(홈시어터) / 하이파이 / 프로오디오 / 포터블 하이파이 등 넓은 범주를 모두 다루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와 비견될 만한 음향기기 브랜드는 분명 한손으로 꼽을 정도겠지요.
그러나 야마하의 전체 비중에서 포터블 음향기기의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은 편입니다. 악기를 제외한다면 AV쪽의 비중이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포터블 음향기기의 성격은 대부분 AV쪽과 거의 유사한 방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산업과 마찬가지로 포터블 하이파이쪽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유저들은 무선 제품을 사용하며, 소수의 음향애호가만이 유선 제품을 사용합니다. 야마하도 이런 양극화된 시장에 맞추어 라인업의 대부분은 무선으로 갖추고 유선은 하이엔드 세트 단 하나만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YH-5000SE헤드폰과 HA-L7A 헤드폰 앰프입니다.
HA-L7A은 야마하 최초의 하이엔드 DAC / AMP 입니다. 언뜻 건축물처럼 보이는 웅장하고 묵직한 외관을 지니고 있지요. 이런 형태의 디자인을 채택한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본관 / 별관처럼 분리되어 있는 좌우는 DAC 파트와 AMP 파트가 완벽하게 분리해서 설계된 것을 대놓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상단에 배치된 구조물 내부에는 순도높은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토로이달 트랜스'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토로이달 트랜스는 포터블 하이파이 제품군에서 잘 사용되지 않지만 중급 이상의 하이파이에서는 대단히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부품입니다. 따라서 하이파이에 익숙하신 분들이라면 저 디자인만 보더라도 내부에 토로이달 트랜스가 내장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야마하는 종합 음향 브랜드다운 면모를 녹여 HA-L7A를 디자인했습니다.
저는 하이엔드 헤드폰 YH-5000SE를 대단히 높게 평가했지만 다른 분들의 평가는 꽤나 갈리더라고요. 야마하가 자기 주장이 대단히 뚜렷한 브랜드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들의 주장은 간단히 말해서 '혼이 없으면 음악이 아니다.' 입니다. 좀 더 풀어보자면 '음악에 담긴 에너지와 현장감을 얼마나,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가 핵심 메시지입니다. 이를 야마하쪽에서는 'True Sound'라 명명하고 있습니다.
야마하는 적극적으로 제품의 사운드에 개입합니다. 아무리 실력이 부족해도, 다소 밋밋하게 들리는 음악도 훌륭하게 재탄생시킵니다. 다 죽은 음악도 살리는 화타선생이라고 비유하고 싶을 정도로요. 이렇게 강한 제품의 자기주장은 다른 브랜드에서, 특히나 하이엔드 제품에서는 거의 만나볼 수 없습니다. 보통 엔트리급에서 상급으로 올라갈수록 브랜드의 색채가 더 진해지지만 오히려 플래그십(하이엔드) 제품에서는 그 색채가 옅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야마하는 엔트리부터 하이엔드까지 모두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아티스트의 의도에 더해 야마하의 의도가 더해져 더욱 음악을 강렬하게, 높은 농도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이에 충분히 공감한다면 야마하가 들려주는 고유의 음악성에 박수를 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제조사의 지나친 개입이 원래 아티스트의 의도를 훼손하거나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엔 아무래도 좋은 평가를 할 수 없겠죠.
헤드폰과 헤드폰 앰프를 조합했을 때 나타나는 조합의 결과는 두가지로 나뉩니다. 헤드폰과 헤드폰 앰프가 서로 다른 영역을 개척한 후 그것이 합쳐져 큰 그림이 되는 경우도 있고, 헤드폰과 헤드폰 앰프가 완전히 같은 성향이라 더욱 증폭되어 강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브랜드에서 헤드폰과 헤드폰 앰프를 둘 다 만들면 대개 후자가 되더라고요. YH-5000SE와 HA-L7A는 거의 같은 성향을 가졌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HA-L7A의 사운드를 가장 첨예하게 보여주는 모드가 바로『 퓨어 뮤직 모드』입니다. 이 모드에서는 다른 어떤 사운드 조절 옵션도 작동하지 않고 오로지 야마하가 들려주고 싶은 세팅 그대로 듣게 됩니다. 투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순수한 음질, 음악의 모든 요소가 살아숨쉬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듯 느껴지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지요.
음향 애호가들이 음악만 듣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감상할 때에도 동일한 에너지와 현장감을 전달하기 위해 HA-L7A에는 야마하의 전매특허인 음장모드를 일곱개 내장하고 있습니다. 야마하가 수십년간 홈시어터 시장을 지배해온 근간에는 이 음장모드가 있습니다.
1) 시네마 / 드라마
영화 감상용입니다. 시네마는 블록버스터같은 큰 규모의 웅장함, 서브우퍼처럼 낮게 깔리는 초저음, 소위 빵빵 터지는 사운드에 적합합니다.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잔잔하며 주로 인물들간의 대화로 구성되는 만큼 사람의 목소리 대역이 조금 더 강조된 튜닝을 보입니다.
2) 콘서트홀 / 아웃도어 라이브
실황공연 감상용입니다. 특유의 열려있는 공간과 메아리(울림) 느낌을 표현하는데, 실내인 콘서트홀에서는 조금 더 높은 강도, 실외인 아웃도어 라이브에서는 조금 낮은 강도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3) BGM / STRAIGHT
음악이 들리는 거리를 극단적으로 나누어놓은 모드입니다. BGM은 최대한 멀리서 음악을 들려주어 내가 하는 작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배경에 깔아둡니다. STRAIGHT는 정반대로 가장 가깝게 음악을 들려주어 마치 이어폰으로 듣는 듯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뮤직 비디오
앞서 설명한 퓨어 뮤직 모드와 다르게 특별히 어떤 부분이 강조되지 않은 무난한 음악 감상용입니다. 퓨어 뮤직 모드가 야마하 색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된다면 이 모드를 추천드릴 수 있습니다.
저에게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뒤집어 말한다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삶은 죽은 것과 다름없죠. 그렇기 때문에 야마하처럼 강렬하게 음악의 혼을 일깨워주는 브랜드는 소중합니다. 야마하 최고의 포터블 헤드파이 시스템 YH-5000SE와 L7A는 다른 모든 하이엔드 헤드파이 시스템과 다른 캐릭터를 갖고 있습니다. 음악의 매 순간마다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귀중한 경험, 저는 다시 한번 야마하에 감동했습니다.
이 글은 야마하 YH-5000SE & L7A 국내 총판을 담당하는 『이어폰샵』으로부터 비용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또한 유튜브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