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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노래 Aug 23. 2024

오픈형 이어폰의 새로운 전설

SIVGA M200

제가 포터블 음향기기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인 20여년 전에 시장을 주름잡던 오픈형 이어폰들이 있었습니다. 오디오테크니카의 CM7 ti, 삼성의 EP-1, 소니의 E888, 뱅앤올룹슨의 A8 이었지요. 이 쟁쟁한 이어폰들의 금액은 10만원이 훌쩍 넘었고 학생이었던 저는 그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뭐 어찌저찌해서 이 제품들을 모두 수집할 수 있게 됐습니다만 일단은 훨씬 저렴하면서 유명한 브랜드였던 젠하이저 제품으로 만족해야만 했지요. 


'전설적' 칭호가 아깝지 않은 젠하이저 이어폰 MX300 / 400 / 500은 가격은 낮았지만 누구라도 인정할만한 상품성을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 번들 이어폰으로도 제공이 되었기 때문에 써보신 분들이 꽤나 많을거예요. 단돈 몇만원으로 독일 브랜드 제품을 쓸 수 있다는 자기위안도 좋았고, 무엇보다 대 오픈형 이어폰 시대를 대표할만한 사운드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았습니다. 


오픈형 이어폰에서 커널형으로 대세가 바뀌면서 지금에 와서는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마이너한 제품이 되어버렸지만, 커널형 제품에서 절대 들을 수 없는 개방감이라는 면에서 명맥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20여년 전부터 급격하게 이어폰 / 헤드폰 산업이 발전되었기 때문에 그때를 추억할만한 레트로 아이템으로도 손색없다고 봅니다. 





시브가는 2016년에 설립된 중국의 하이파이 브랜드로, 다른 차이파이와는 사뭇 다르게 전통이라는 가치에 높은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통이란 여러개의 키워드로 세분화 할 수 있는데, 장인정신이라고 하는 깐깐한 만듦새, 우드 재질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제작 방식, 무선이 대세인 이 시점에서 굳이 유선만을 강조하는 제품 라인업, 음의 자연스러운 연결 - 아날로그 - 및 분위기 형성에 대단히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브랜드의 철학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현재 주류와는 상관없이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해 이어폰 / 헤드폰을 만든다'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분히 과거 방식이라고 볼 수 있는 오픈형 이어폰을 출시 한 것이 이상하지 않지요. 시브가 유일의 오픈형 이어폰 M200은 과거 젠하이저 MX300 / 400 / 500을 떠올리게 하는, 오픈형 이어폰의 전설을 다시 써내려 갈 수 있을만한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M200은 매트 샴페인 단일 컬러로, 항공 등급의 알루미늄 소재로 만들어졌습니다. 단단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고 바 부분이 매우 짧아 착용했을 때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없습니다. 이렇게 바 부분이 길게 늘어진 이어폰을 좌우 귀 모양이 다른 분이 착용했을 때 한쪽은 앞을 향하고 다른 한쪽은 뒤를 향하는 등의 이질감이 강하게 들 수 있다는 점을 최소화한 디자인이라 여러모로 칭찬하고 싶은 디자인과 마감새입니다. 


가격은 77,000원으로 MX시리즈에 비하면 가격이 꽤나 세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요즘 이어폰의 금액 기준이 워낙에 수직상승하고 있는 터라 저렴하다는 평가를 더 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시브가가 자랑하는 높은 마감 수준과 금액 대비 느껴지는 고급스러움은 이어폰 본체 뿐만 아니라 케이블에서까지 느낄 수 있으니 어지간하면 이 이어폰을 비싸다고 말하긴 어렵겠지요. 



시브가의 사운드 시그니처는 매우 명확하고 고른 편입니다. 전 모델이 하나같이 '아름다운 고음' 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두고 달려가고 있지요. 그래서 구멍이 막힌 이어솜을 사용한다고 해서 답답한 느낌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과거 오픈형 이어폰들 대부분이 저음이 많고 낮은 해상도의 먹먹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는데, 아무리 추억보정이라고 해도 지금 그 사운드를 다시 들어보면 '이걸 내가 좋아했다고...?' 라는 의문을 부를 겁니다. 아무리 오픈형 이어폰이 과거의 향수를 지향한다고 해도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사운드를 가져야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원래 고음 지향색이 강한 시브가이고 오픈형 이어폰은 저음이 일부 날아가는 현상이 있기 때문에 둘의 시너지로 완전히 극단적인 사운드가 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M200의 사운드는 탄탄하고 이상적인 밸런스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 오픈형 이어폰 사운드의 향수를 추앙하려는 분들은 구멍이 막힌 이어솜을, 현대의 오픈형 이어폰에 걸맞는 사운드를 원하거나 시브가 고유 사운드 시그니처에 공감하시는 분들은 구멍이 뚫린 이어솜을 사용하시길 추천드립니다.


블랙과 아이보리 두가지 색상의 사운드 차이는 없습니다. 이어솜의 밀도에 차등을 두어 사운드 변화를 꾀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저 디자인적 선택지로만 둔 모양입니다. 이 제품의 전체 디자인 컨셉에 맞추려면 아이보리 이어솜을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지만, 아무래도 오염에 굉장히 취약한 컬러라서 그것이 마음에 걸리는 분들은 블랙 이어솜을 선택하라는 거지요. 



인라인 마이크는 통화시 조금의 편리함을 줄 수 있지만 음질과 내구성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옵션입니다. 게다가 마이크가 달린 쪽으로 무게가 쏠려서 그쪽 이어폰이 귀에서 빠지는 등의 문제도 겪는다고 하니 음향 애호가라면 질색할 법 하죠. M200은 아쉽게도 마이크가 있는 버전만 출시되었네요. 본사에서 마이크 없는 버전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를 지나가는 말로 들었는데, 그대로 지나가버렸나 봅니다. 



고가의 오픈형 이어폰이 없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고가의 오픈형 이어폰을 만들어도 특정 환경(주로 실내)에서만 제 성능을 발휘한다는 제약이 걸려있어 잘 팔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픈형 이어폰의 금액은 사실상 상한선이 있다고 봐도 되겠지요. 이런 점에서 M200의 금액은 딱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브 이어폰으로 하나 쟁여놓기에 부담이 없는 금액이예요. 요즘에도 만원대의 오픈형 이어폰을 찾으려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는 있지만 오픈형 이어폰이 대새였던 그때보다는 보는 눈높이가 꽤나 올라갔기도 하고, 경제력 또한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좋아졌기 때문에 그렇게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M200은 오픈형 이어폰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도, 과거 오픈형 이어폰의 향수를 찾으려는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도, 예쁜 고음을 좋아하는 엔트리급 이어폰을 찾는 분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제품입니다. 훌륭한 사운드는 물론 고급스러운 마감과 단단한 내구성이 더해져 전설적인 오픈형 이어폰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유튜브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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