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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해상도와 극에 달한 공간 활용

final A6000

by 범노래

* 셰에라자드로부터 콘텐츠 제공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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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이어폰' 칭호를 수여받은 파이널 E시리즈의 사운드 테마는 '헤드룸을 가득 채운 따듯한 부드러움' 이었습니다. 현재 주류라고 볼 수 있는 중국계 이어폰들과는 완전히 상반된 성향이라는 점,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분들도 큰 각오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저렴한 금액이라는 점, 남녀노소 귀 모양과 크기에 구애받지 않는 원기둥 이어폰 형태도 높은 E시리즈의 인기 요인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E시리즈는 최대한 다양한 대상을 아우를 수 있는 대중적인 성질을 다수 갖고 있었습니다.


파이널에는 E시리즈 외에도 다양한 시리즈가 존재합니다. 그 중 E시리즈와 가장 근접한 거리에 있는 A시리즈의 테마는 '높은 해상도와 입체적인 공간연출' 입니다. 따라서 조금 진지한 자세로 사운드를 들으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높은 해상도라든가 입체적인 공간은 집중하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려운 속성이거니와, ‘그래서 이게…… 좋은거야?’ 라는 의문도 따라올 수 있으니까요.


A시리즈는 높은 해상도를 위해 f-CORE 라는 새롭게 개발된 다이내믹 드라이버가 탑재되었고, 입체적인 공간 표현을 위해 꺾인 다각면체 몸체로 구성되었습니다. 높은 해상도는 조금 더 날카롭게 들리게 마련이며, 입체적인 공간을 표현하게 되면 당연히 그 내부의 밀도감은 떨어지게 됩니다. 요약하면 E시리즈와는 완전히 정반대 속성을 지닌 사운드라는 얘깁니다. E시리즈를 통해 파이널을 알게 되신 분들은 A시리즈를 접해보고서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요.


이렇듯 파이널의 시리즈들은 각각 뚜렷하고 차별된 테마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게 이를 상세페이지에서 안내해주고 있지요. 좋은 소리를 만드는 브랜드는 많지만 그걸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브랜드는 적습니다. 어떤 브랜드에 호감을 갖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겠지만 파이널은 '친절함' 항목의 점수가 유독 높은 편입니다.

혹시나 이렇게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파이널의 사운드가 갈팡질팡, 또는 두루뭉술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 수 있기에 자칭 파이널 전문가인 제가 정리해드리자면 파이널 제품을 관통하는 것은 음악성입니다. 그들이 전면에 내세우는 문구, '음악은 힘입니다'에서 알 수 있듯 음악에 담겨있는 여러 요소들을 끌어내주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거지요. 그래서 소리를 잘 재생합니다가 아닌, 소리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공감의 태도가 더욱 크게 와닿습니다. 뜬구름 잡는 소리말고 현실적인 걸 얘기하자면 악기 표현력이 뛰어난 편이고, 특히 또랑또랑한 울림의 중음역대가 중점인 여성 보컬 및 피아노 소리가 발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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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제품들은 숫자 1000 단위로 모델명이 정해집니다. 아예 학생용이라고 못을 박은 초 저렴이 500은 예외로 두고, 엔트리 모델 1000부터 플래그십 모델 8000까지 단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본사에서는 각 시리즈마다 '3000'을 기준으로 삼아 사운드를 세팅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각 시리즈의 3000 모델을 들어보시면 파이널이라는 브랜드가 해당 카테고리에서 들려주고자 하는 소리가 어떤 것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딱히 본사에서 숨겨놓은 것 같지는 않지만 이 모델명의 구분에는 한가지 뜻이 더 숨어있습니다. 3000을 기준으로 그 이하의 모델들은 별다른 노력과 이해, 경험이 없어도 어렵지 않게 그 사운드의 실체와 의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반면 3000 위부터는 위로 갈수록 파이널의 의도가 더 강렬해지는데 오히려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도록 숨겨져 있습니다. 그 결과로 높은 강도의 비난을 받기도 하지요. 가격도 더 오르고 더 상급인데 왜 소리는 더 후퇴한 거냐고. 이 돈 주고 이 제품을 왜 사야하냐고 말이죠.

그건 후퇴가 아닙니다. 더 나은 소리를 향한 심도있는 연구개발, 다른 말로는 축성된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장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다소 무모하고 위험하며 경제성이 없는 도전이 필요한 법이지요. 다행이 파이널이 시도한 여러 도전들은 '그 의도를 따라가고 어느정도의 공감을 하면'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허황된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여러 예가 있었어요. Piano Forte, ZE8000, Sonorous... (피아노 포르테와 소노로스는 숫자 형태로 라인업이 정렬되기 이전 시대 제품)

그러니 파이널에서 3000 이상의 상급 제품을 내놓았다면 보다 능동적으로 파이널의 의도를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첫인상이 별로일 가능성이 꽤 높거든요. 물론 이런 속사정(?)을 모든 분들이 이해하고 공감해줄 리가 없습니다만 적어도 음향 애호가들이나 파이널 팬 입장에서는 감상의 지평을 넓혀주는 '음향기기 명가' 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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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6000 (1)

A6000은 699,000원으로, 가격에 대한 판단이 크게 갈릴 것 같습니다. 부정적인 쪽은 주로 패키징과 제품 디자인으로 가격을 판단했을 경우입니다. A6000 자체만 놓고 봐도 금액이 무색하게 조촐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하위 모델들 (A3000 / A4000 / A5000)과 별 차별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실망을 넘어 배신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최근 공산품의 패키지 추세가 간소화되고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며 특히 규모가 큰 대형 브랜드일수록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이런 면을 보면 파이널도 당당히 대형 브랜드입니다(?)


A시리즈 최상위 A8000처럼 아예 범접할 수 없는 럭셔리 디자인까지는 아니어도 조금 더 고급 느낌이 나게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파이널의 고급 모델에서 곧잘 사용되던 일본의 전통 마감 기법 ‘시보’를 사용했는데, 가까이서 보면 꽤 근사하지만 멀리서 대충보면 그렇게 안보이거든요. 그러고 보니 A6000에서는 시보 대신 ‘하드 그레인 가공’ 이라고 설명해놓았더라고요. 좀 더 글로벌한 마켓을 위한 변화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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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6000 (2)


긍정적인 쪽은 당연하게도 사운드 퍼포먼스로 이 제품을 평가할 경우입니다. 이 이어폰의 사운드는 최소한 100만원대 제품과 겨뤄야만 비로소 우열을 가릴 수 있습니다. 비슷한 금액대의 제품들은 미안해질 정도로 격차가 벌어지고 마는데, 금액이 왜 이렇게 낮게 책정됐지?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패키지나 제품 디자인에 배정되어야 할 비용을 온전히 사운드쪽에 몰빵한 결과일까요?


앞서 A시리즈의 주된 목표 두가지를 '해상도', '공간표현' 이라고 설명했는데, A6000은 이 두가지 조건에서 모두 최대치의 능력을 갖고 있어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낱낱이 쪼개져 귓속으로 휘몰아치는 소리의 알갱이를 하나하나 받아들여야하고, 머릿속에 펼쳐진 스테이지(헤드룸)의 모양과 크기를 가늠해야 합니다. 어느 타이밍에 소리가 시작되어 어느 타이밍에 모습을 완전히 감추는지, 소리가 어느 지점에서 생성되어 어느 지점으로 이동하는지, 곡의 구성 요소들은 어떤 공간에 배치되며 그 사이 공간은 얼마나 여유로운지에 대한 이런 냉철하고 집요한(?) 분석이 바로 A6000의 의도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키 포인트입니다.


A6000으로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 전에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들려옵니다. 과장이 심한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진짜 그래요. 엄밀히 따지면 없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건 아닙니다. 주 멜로디에 가려져 안보이던 소리들의 존재를 명확하게 짚어내주어 우리가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이건 해상도를 마냥 높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공간을 활용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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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드룸, 충분히 활용하고 있습니까?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몸속 어딘가에 사운드가 펼쳐지는 룸이 생겨납니다. 이걸 헤드룸이라 부르지요. 많은 리뷰에서 헤드룸에 대한 언급은 잘 되지 않는 편입니다. 스피커는 실재하는 공간을 활용하지만 헤드룸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헤드룸의 형태나 크기도 다들 제각각으로 느껴 비교하기조차 어렵죠. 그래서 보통은 헤드룸의 크기로 어필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서 확실히 개방형 제품이 밀폐형 제품보다 우위를 갖게 되죠. 파이널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헤드룸의 크기나 모양이 스피커에 비해
어차피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A6000의 헤드룸 사이즈는 크지 않습니다. 즉 소리가 바깥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형태는 아닙니다. 오히려 안쪽으로 향하는 방향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그 공간을 아주 영리하게 최대한 활용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32평의 아파트라 할지라도 구조에 따라서 더 넓게, 더 좁게 느껴지는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여유로운 악기간의 배치, 소리의 이동을 명확하게 표현해줄 수 있는 공간적 분리, 공간의 구석구석까지 낭비됨 없이 철저한 활용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감은 광대합니다. 그 결과로 소리가 더 높은 곳에서, 더 낮은 곳에서, 더 멀리 앞쪽과 뒷쪽에서 맺히고 그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합니다.

마치 수많은 레이어로 나뉜 공간이 하나로 합쳐져 보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보통 하나의 드라이버를 사용한 제품보다는 여러 개의 드라이버를 내장한 이어폰이 보다 입체적이고 화려하면서도 분리도가 높은 사운드를 표현해냅니다. 그런데 역시 세상에 꼭 그러란 법은 없어요. 이런 공간 활용에 힘을 더 실어주기 위해 기존 A시리즈에 제공되던 파이널 E팁이 아니라 파이널 E for TWS를 채용한 것도 특징입니다. TWS 버전은 이어팁의 높이가 낮고 구경이 큰 특징을 가지는데, 일반적인 파이널 E팁에 비해 넓은 공간을 연출하면서 밀도감이 떨어져 자연스러움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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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S ZE8000 / VS A5000


어마무시하게 높은 해상도라든지, 공간의 표현 방식에 대한 설명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분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건 기분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과거 제가 올렸던 ZE8000의 설명과 거의 일치하거든요. A6000이 그리는 공간의 형태와 그로인해 받게 되는 감상은 ZE8000과 방향성은 같고, 특유의 이질적인 느낌이 없다는 점이 다릅니다. 공간이 완전하게 내 머리통을 중심으로 감싸고 있지 않고 좀 더 앞쪽을 향해 있어 일반적인 이어폰에서 볼 수 있는 무대를 형성합니다. 또 강하게 호불호가 갈렸던 짙은 저음의 안개가 전혀 느껴지지 않다는 것도 다릅니다. 이런 면에서는 A시리즈 공통된 사운드 특징인 ‘선명함, 명료함’을 따르고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전에 출시된 가장 가까운 형제 A5000과도 비교해볼 수 있겠습니다. 전체적인 사운드 밸런스는 A5000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중고음 영역대는 f-CORE 다이내믹 드라이버의 영향이, 중저음 영역대는 케이블이 담당하고 있어 어떤 곡을 들으면 고음 위주의 이어폰이 되지만, 어떤 곡을 들으면 저음 위주의 이어폰이 됩니다. 당연히 둘 다 잘 표현되는 곡도 있으니 한쪽으로 치우쳐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반면 소리의 입자 크기가 A6000쪽이 훨씬 더 작습니다.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더 듣고자 한다면 확실하게 한차원 더 높은 수준의 해상도와 분리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공간의 형태와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A5000은 좀 더 소리가 직설적으로 귀에 꽂히는 편이고, A6000은 소리가 더 광범위하게 흩뿌려져 있어 소리를 수집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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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부


높은 해상도를 추구하는 이어폰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아서 이걸 파악하고 비교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공간 표현에 중점을 둔 이어폰은 희귀하고 그 완성도가 어떤지에 대한 평가 역시 분분합니다. 이 이어폰의 가장 큰 강점이 높은 해상도와 높은 공간 활용이기 때문에 공간 표현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만 올바른 가치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한 A6000이 연출한 공간에 적응하는 데에도 꽤나 시간이 소요되며, 이 이어폰에 사용된 f-Core 드라이버와 케이블 둘 다 에이징이 오래걸린다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충분히 몸이 풀어지지 않은 A6000은 저음이 딱딱하고 고음은 거칠며, 공간이 찌그러진 형태로 표현되기 때문에 첫인상이 별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침내 A6000과의 동기화(?)가 끝나면 어째서 파이널이 음향기기 명가인지, 어째서 그토록 많은 이들이 ‘파 - 멘’을 외치는 지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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