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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의 숲에서 열리는
프라이빗 독주회

final S5000

by 범노래

* 셰에라자드로부터 콘텐츠 제작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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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널 S시리즈


지난번 S4000 리뷰에서 S4000 / S5000 두 모델을 다 경험해보면 S시리즈 전체의 특징을 확실히 정리할 수 있겠다고 얘기했었는데 이제 S5000까지 경험해 봤으니 때가 되었습니다. 파이널 S시리즈는 두가지 주제를 갖고 있고, 본사에서 이를 명확하고도 친절하게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1) 매우 섬세하고 세밀한 감각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을겁니다. 그런데 내가 누구인지, 타인과 구별되는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는 어떻게 규명할 수 있는 걸까요. 나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나라는 객체가 가진 속성만을 가지고 파악하는 개인주의적인 관점으로 봅니다. 때문에 누가 뭐라던 나는 나인 것이고, 나라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의 속성을 가지고 파악하는 집단주의적인 관점으로 봅니다. 누군가의 가족, 누군가의 동료, 누군가의 스승이나 제자로서 맺어진 관계에서의 내가 있는 것이죠.


이처럼 음향기기가 재생하는 사운드를 파악하는 방법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음 하나하나를 분석하여 세기는 어떤지, 밝기는 어떤지, 빛깔과 질감은 어떤지를 모두 종합해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연결될 때의 변화와 각 음들이 어떤 관계로 맺어졌는지에서 비롯된 뉘앙스, 분위기를 느끼는 겁니다.


나를 바라보는 두가지 방법은 동서양에서 각각 채용되었지만 사운드를 파악하는 방법은 대부분 전자의 방법만 사용됩니다. S시리즈는 후자에 집중하여 새로운 감상법을 제안하는 고성능 시리즈입니다. 다분히 동양적인 사상(?)으로 만들어진 이어폰이로군요. 전자에 집중한 파이널 제품도 물론 있습니다. A시리즈입니다.


2) BA의 새로운 가능성 발견


가성비 단계를 넘어선 수준의 싱글 다이내믹 드라이버 이어폰은 현재까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가성비 단계를 넘어선 'BA만으로 구성된 이어폰'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BA만으로 구성된 이어폰들이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고, 이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외면받게 된다는 의미겠지요. 그렇다면 그 한계는 무엇일까요? 종합적으로 얘기하자면 음의 다채로운 표현력이 부족합니다.


가성비 / 입문 등급의 제품에서는 이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고 부각되지도 않지만 중급을 넘어 고급으로 갈수록 명백한 한계가 됩니다. 울림 표현이 자연스럽지 않고, 생동감이나 타격감 같은 부분도 뭔가 뻣뻣하다고 해야되나 좀 어색합니다. 또 음이 가늘고 앙상해 연출되는 공간의 밀도가 낮게 느껴지는데다 평면적, 단편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한계는 아주 작고 낮은 음에서부터 아주 크고 높은 음까지 한번에 펼쳐지고 그 변화의 폭이 큰 장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특정 음역대를 담당하는 여러 개의 BA를 사용하거나, 저음역대를 담당하는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따로 둡니다. 이게 보통 사용되는 하이브리드 방식이죠. 이렇게 드라이버별로 소리를 나누는 방식은 어떻게 만들어도 *풀레인지에 비해 자연스러움이 덜합니다. 여러 개의 드라이버가 각각 자기만의 담당 영역이 있는데, 다른 드라이버의 담당 영역과 맞닿는 부분에서 알력 다툼(?)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 가청 주파수의 모든 음역대를 담당하는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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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시리즈에 채용된 기술들은 BA 드라이버만으로 구성된 이어폰의 한계를 모두 극복하고자 투입되었습니다. 먼저 풀레인지 BA 드라이버 2개를 옆으로 붙여서 증폭 효과를 노렸습니다. 2개의 진동판을 맞붙여 더욱 강력한 사운드를 만드는 푸시풀(Push - Pull) 구조의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BA 버전으로 만든 것이라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또 BA 드라이버에서 만들어진 사운드를 노즐로 내보낼 때 튜브를 사용하지 않고, 그 공간 자체를 방(챔버)로 만들어 소리의 기가 죽지 않도록(?) 튜닝했습니다. 이 기술을 톤 챔버라고 부르는데, 이어폰 몸체를 통으로 울리기 때문에 풍성하고 입체적인 표현이 가능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어팁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Fusion G라는 이름의 새로운 이어팁은 S시리즈 전용이 아니지만 S시리즈의 사운드를 완성하는데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고밀도 폼 + 부드러운 실리콘 + 단단한 실리콘 3종의 콤비네이션으로 만들어졌고, 소유한 여러 이어팁과 비교해 본 결과 딱히 단점이 존재하지 않는 만능 팁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실리콘 팁에 비해 단단한 타격감은 살짝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애초에 파이널 유선 이어폰 중에 강력한 타격감을 중시하는 제품이 아예 없기 때문에 딱히 문제 삼을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브랜드 고유 색채라고 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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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순 덩어리!


이런 S시리즈의 큰 주제를 이해한다고 해도, 실제로 수용하는데는 다소 어려움이 따릅니다. 이 이어폰이 갖고 있는 여러 모순들 때문입니다. S시리즈는 첫인상과 귀에 익숙해진 뒤의 인상이 치명적일 정도로 다릅니다. 이 따위 소리를 이 돈 들여서 산다고? 라는 맹렬한 비난에서 이렇게 대담하고 색다른 접근이라니, 정말 수준이 높은 친구로군! 라는 감탄으로 바뀝니다. 뭔 스톡홀름 신드롬도 아니고......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제가 약장수 같아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진짜 솔직하게 표현한 감상입니다.


1) 해상력 - 분명히 소리가 먹먹해서 못들어주겠다고 생각이 드는데, 듣다보면 결코 해상력이 낮지 않습니다.

2) 밀도감 - 분명 뭔가 허하고 앙상한 느낌이었는데, 듣다 보면 풍성하게 꽉 차오릅니다.

3) 공간 연출 - 분명 음들이 한쪽에 쏠려서 찌그러져 있었는데, 듣다 보면 자연스러운 크기와 모양의 공간이 됩니다.


공통점이 보이지요? 첫인상은 별로지만 나중가면 나쁘지 않다는 것. 다시 해석하면 시간이 충분히 흘러 적응이 되더라도 이렇게 소리를 낱낱이 분석하면 경쟁 이어폰 대비 점수가 높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시리즈는 너무나도 훌륭한 이어폰입니다. 적응해야 겨우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면서 너무나 훌륭한 이어폰이라고 말하는 이 모순, 원래 인생은 모순 투성이라고 하죠. 그걸 겸허히 받아들여야 어른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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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환의 숲에서 열리는 프라이빗한 독주회


그렇게까지 해서 이 이어폰을 진득하게 들어야 하는 이유, 장점은 무엇인가 궁금하실테지요. S시리즈는 다른 어떤 이어폰에서도 들을 수 없는 독특한 매력과 중독성이 있습니다. 이 특유의 사운드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역시 '몽환' 입니다.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닌 다른 차원으로 듣는이를 옮기고 그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강력한 결계로 가둡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음악이 아름답고 우아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고, 음들이 하나하나 살아나 우아한 몸짓으로 내 주변을 맴도는 환상에 취한 듯 감각과 이성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천공의 성 라퓨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웃집 토토로, 지브리 장편 애니메이션을 보면 완전히 그 세계에 동화되었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게 딱히 슬픈 것도 아니고, 영화가 끝나 아쉬운 것도 아니고, 눈에 먼지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왜인지 모르게 마음 한 켠이 아련해지면서 눈물이 흐르죠. 혹자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인간다움을 자극해서라는데 이 S시리즈의 감상도 그와 비슷합니다.


이 느낌을 모든 이가 받거나 공감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과거부터 파이널이 이런 독특한 매력을 지닌 제품들을 종종 내놓았었는데 그들에 대한 평가가 보통은 안좋은 편이었으니까요. 정형적이고 보편적인, 누구나 와! 할만한 제품들을 내놓다가도 잊을만하면 다시 선보입니다. 이런 근성과 고집이야말로 진정 예술가다운 면모다, 여윽시 파이널이지, 라고 생각하는 파이널 진성 팬도 분명히 있을겁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진정한 가치를 알아봐주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이라는 점에서 '프라이빗'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고, 싱글 BA(2개의 BA를 붙여 하나처럼 만들었으니 정확하게 말하면 2BA)의 단정하고 아담한 분위기 때문에 '독주회'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게 좀 중요 포인트라 설명을 보태자면 S시리즈는 보컬이 빠진 순수 악기 연주에 매칭이 훨씬 좋고, 악기의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더 좋습니다. 그래서 이 조각들을 모아 한 문장으로 만들면 '몽환의 숲에서 열리는 프라이빗 독주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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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S S4000

그렇다면 S5000과 S4000은 어떤 점이 다를까요?


1) 가격과 저음

S4000은 589,000원, S5000은 699,000원입니다. 같은 미들급에서 이 정도면 아주 큰 금액 차이는 아닙니다. 헌데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파이널의 모델 넘버링 특성상 4000에서 5000으로 올라갈 때 성향이 크게 변화하는데 그게 바로 저음의 형태와 깊이입니다.


'오디오는 저음으로 완성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 음향기기 경험으로 비추어보면 십분 이해가 되는 말입니다. 어떤 브랜드나 제품의 매력이 중음이나 고음에 있을 수는 있어도 전체적인 수준을 끌어올리는데는 저음의 완성도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파이널도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인지 5000 넘버부터 저음의 느낌이 확 달라집니다.


저음 비중이 좀 많이 높지 않나? 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파이널 특유의 여유로운 공간 활용에 익숙해지면 그 저음이 넓게 퍼져 자리잡게 되기 때문에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답변드리고 싶습니다.


2) 황동

S4000은 실버 컬러의 스테인리스 재질이었고 S5000은 코퍼/골드 컬러의 황동 재질입니다. 보통 형제 모델로 나올 경우 실버 VS 골드(코퍼) 2종으로 나오죠.


음향기기는 몸체, 즉 울림통의 재질에 따라 소리의 특성이 변화합니다. 스피커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고 헤드폰이나 이어폰은 좀 덜 탄다고 봐야 할텐데, 그 중에서도 특히나 BA 이어폰은 몸체의 재질에 거의 영항을 받지 않습니다. BA에서 생성된 소리가 좁은 구멍(스파우트)을 통해 튜브로 전달되어 바로 노즐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S시리즈는 앞서 설명한 톤 챔버 기술로 통울림을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소재에 따른 사운드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황동 특유의 색채, 따뜻한 온도감, 웅장하고 힘있게 밀어붙이는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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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운드


본사에서 설명하고 있는 S4000과 S5000의 사운드 묘사는 이렇습니다.

S4000 : 날카로운 울림과 선명함을 주는 스테인리스 스틸 스트레이트 사운드

S5000 : 관악기의 소재로도 사용되는 황동 몸체가 주는 따뜻한 울림과 농밀하고 섬세한 사운드


설명만 보면 S4000이 고음 성향, S5000은 저음 성향 이렇게 구분될 것 같지만 실제로 음역대 밸런스가 갈린다는 느낌은 적습니다. 그보다는 감성에 차이가 있습니다. S4000은 도시 감성, S5000은 시골 감성이라고 할까요. 좀 더 따뜻하고 인정머리(?)가 있습니다. 앞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인간다움에 대해서 언급했었지요. 인간의 체온에 가장 가까운 온도감을 내는 것이 황동 하우징이지 싶습니다.


제가 들어본 것 중 음악성이 가장 뛰어난 이어폰 리스트를 만든다면 거기에 S4000과 S5000 두 모델이 다 들어갈 겁니다. 그건 좀 거시기하니 하나를 제외하라 한다면 역시나 남는 것은 S500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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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뒤집어 보는 파이널의 음향 세계


제가 어떤 콘텐츠를 만들려 할 때 갖는 기본적으로 견지하는 태도 중 하나는 남들과 다른 나만의 색깔을 갖자는 겁니다. 그래서 옆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고 가끔은 뒤집어서 보기도 하지요. 그러다 보면 논리적 비약이 드러나 객관성이 증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런 제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파이널도 어느정도는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음향기기 명가 파이널은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제품을 완성도 높게 뽑아낼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어떤 브랜드도 가지 않는 길을 걷는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보통은 이 두개의 성격이 공존하지 않는데 굉장히 특이하단 말이지요. 나만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세상을 뒤집어 보는 시각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도 눈을 감고 마음을 열고 S시리즈가 들려주는 환상에 흠뻑 취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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