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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무결에 한발짝 더

FIIO FX17

by 범노래

* 셰에라자드로부터 콘텐츠 제작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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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rn For Music, FIIO

제가 피오라는 브랜드를 처음 알게 된건 2012년경, 엄지손가락 두개만한 크기의 포터블 앰프였습니다. 당시엔 포터블 앰프라는 카테고리가 생소했는데, 고성능 이어폰 / 헤드폰을 넘어 하나의 시스템(포터블 하이파이)을 구축하기 위한 DAP나 포터블 앰프가 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포터블 하이파이계의 한 획을 그은 전설의 DAP AK100이 나온 것도 2012년이지요. 오디오(하이파이) 역시 처음에는 스피커의 중요도가 높지만 깊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소스기기나 DAC, AMP, 케이블 등 각 부품들의 역할과 중요성이 높아집니다. 이렇게 DAP를 포함한 재생기기, DAC, AMP, 케이블, 이어팁 등 모든 분야의 포터블 하이파이 제품들이 이 시기를 맞아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피오는 포터블 하이파이의 모든 분야를, 가장 큰 규모로 다루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그만큼 포터블 하이파이라는 시장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유저와 소통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엔 피오가 이렇게까지 큰 존재가 될 줄 상상도 못했는데, 지금은 과장 약간 보태서 포터블 하이파이가 곧 피오라고 말해도 될 정도입니다.


피오라는 브랜드를 10년 넘게 알아오면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느낌을 나열해보자면 이렇습니다.


1) 중국 브랜드다 = 기본적인 가성비가 좋다
2) 제품 만듦새와 디자인이 깔끔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디자인 컨셉을 모색한다
3) 패지키가 멋스럽고 구성품을 넉넉하게 제공하여 3번과 더불어 흐뭇한 만족감을 준다
4) 음악성보다는 음질(성능)을 강조한다
5) 대체적으로 상쾌하고 경쾌하며, 투명하고 깨끗한 사운드를 추구한다
6) 상대적으로 등급이 낮은 모델의 추천도가 높다
7) 제품 카테고리별로 중점을 두는 사운드의 특징이 확연히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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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년의 정수를 이 창조물에 담았습니다, FX17

피오의 새로운 플래그십 유선 이어폰입니다. 금액은 2,390,000원이고 1DD + 4BA + 8EST(5-way)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간 피오가 고가의 유선 이어폰을 내놓더라도 가격이 100만원대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드디어 200만원대 제품이 나왔네요. 앞자리 수가 바뀐 만큼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초절정 프리미엄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습니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지게 되는 디자인입니다. 피오의 디자인 감각은 언제나 세련되고 탁월한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가다 음... 호불호 타겠는데? 라고 생각되는 제품들이 있었습니다. 주로 기계적인 감성이 강하게 투영된 경우였지요. FX17의 디자인은 깔끔한 무지의 통금속으로 만들어졌고, 약간의 포인트와 굴곡으로 변화만 준 디자인이라 호불호가 없을 듯 합니다. 플래그십은 보통 아주 단정하거나 아주 화려하거나 극단적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전 아무래도 단정한 쪽이 취향인 듯 해요. 이어폰의 재질은 페이스 플레이트와 쉘 모두 티타늄을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스테인리스 스틸보다 가벼워 착용감은 더 좋고, 강도가 높아 흠집에도 더 강한 면모를 보입니다.


다이내믹 드라이버의 진동판으로는 베릴륨 다음으로 높은 임피던스를 가지는 리튬 + 마그네슘 합금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플래그십 제품인데 '두번째' 라고 하는 게 약간 의아하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베릴륨 드라이버는 언젠가 출시될 FX19를 위해 남겨놓은 것이 아닐까 예상해봅니다. (피오는 1 < 3 < 5 < 7 < 9 로 등급이 상승)


8개의 EST 드라이버로 진정한 공기감을 구현했다고 합니다. EST는 출시 초기부터 장단점이 분명히 드러나는 드라이버였습니다. 장점은 '공기감, 에어리함'으로 여겨지는 개방감을 충실하게 표현해줄 수 있다는 것, 단점은 다른 종류의 드라이버(BA, DD)와 조화롭지 않고 혼자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 고음이 거칠고 날카롭게 느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EST가 출시된지 꽤나 여러 해가 지났고 여러 브랜드의 튜닝 노하우가 많이 쌓인 만큼 요즘 출시되는 EST 드라이버는 단점이 잘 느껴지지 않긴 합니다. FX17 모델도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드러나지 않는 완성된 모습을 들려주었습니다. 제 생각인데 EST를 8개나 채용하면서 개별 드라이버의 성깔은 죽이면서 힘을 조금씩 보태는 식으로 강약을 조절했다고 봅니다. 요리를 잘 하려면 약불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하죠. 적은 개수의 EST로 강불 조리하는 것보다 많은 개수의 EST로 약불 조리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되는 거죠.


슈퍼카에서 영감을 받은 S.Turbo 어쿠스틱 디자인으로 강력한 사운드를 재생합니다. 이어폰 내부 울림통을 최적화하고 더욱 효과적으로 증폭할 수 있는 내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이어폰의 크기가 역대 피오 이어폰 중에서 가장 큽니다. 타 브랜드의 끝판왕 이어폰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크기라고 생각되네요. 이어폰 크기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반복해서 하는 얘기지만 이어폰 크기는 착용감에 지장이 없다는 전제 하에 클수록 좋긴 합니다. 특히 프리미엄급 이어폰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인 '공간 연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케이블의 재질 역시 골드 + 실버 + 코퍼로 여태 피오에서 잘 채용하지 않았던 금 재질까지 적극 사용해 고급스럽게 사운드를 완성했습니다. 금은 동이나 은과 달리 전도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음질 면에서는 다소 손해를 볼 수 있는 재료이지만 고급스러운 풍미를 더할 수 있어 프리미엄 등급에서 종종 사용됩니다.


플러그는 USB-C / 3.5mm / 4.4mm 교체형입니다. 이제 거의 사장된 2.5mm 대신 스마트폰에 바로 연결할 수 있게 USB-C 플러그를 제공합니다. USB-C 플러그에는 새끼 손톱만한 변환단자 수준의 작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32bit / 384kHz 규격의 음원까지 재생 지원할 수 있는 DAC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제품은 DAP 같은 전문 재생기기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것을 더 권장하지만 간편하게 스마트폰에 연결하고 싶을 때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지요. 분명 2.5mm 플러그보다는 쓰임새있는 옵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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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소가 지어지는 패키지의 감동


피오는 유저에게 언제나 대접받는 느낌을 받게 하지요. 언박싱을 할 때부터 확실하게 이런 이미지를 잡고 갑니다. 요새 패키징이 예전에 비해서 전체적으로 간결해지는 추세이긴 합니다만 소수를 위한 플래그십 제품들은 조금 결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서랍식 초호화 패키지인데요, 시리얼 번호가 각인된 네임 플레이트가 화룡점정입니다.

FX17에는 무려 22쌍의 이어팁이 제공됩니다. 제가 본 구성품 중에 가장 많은, 그야말로 이어팁 폭탄이라 불러도 되겠습니다. 이어팁을 비교하는 것으로만 글을 한편 뚝딱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더군요. 아주 간략하게 각 소리의 변화를 요약해봤습니다.

* 기본 구성품
폼팁 2쌍 : 착용감과 차음성을 높이고 소리를 먹먹하게, 푸근하게 바꿉니다.
2단 우산팁 2쌍 : 공간감을 최대한 줄이고 귀에 가깝게, 쏟아붓듯이 들립니다.

밸런스 이어팁 3쌍 : 표준 세팅입니다.
베이스 이어팁 3쌍 : 저음 비중을 높입니다.
보컬 이어팁 3쌍 : 사람 목소리 비중을 높입니다.

* 별도로 모델명이 존재하고 따로 판매되는 이어팁들
HS20 3쌍 : 끈적끈적하게 착 달라붙는 착용감입니다. 소리를 투명하게 유지합니다. (아래 3종 중 밸런스파)
HS18 3쌍 : 공간감을 적당히 줄여 집중도와 밀도감을 향상시키는 세팅입니다.
Spinfit 3쌍 : 공간감을 최대로 넓히고 보컬의 위치를 귀 가까이 당기는 세팅입니다.

피오를 위시한 여러 차이파이 브랜드에서 필터를 교체하거나 여러 종류의 이어팁을 제공하는 등의 자체 튜닝 옵션을 제공하지요. 제 경험상 필터 교체는 이어팁 교체보다 이어폰의 성향을 지나치게 많이 바꾸고, 자연스러움 항목 점수가 떨어집니다. 엔트리 ~ 미들급에서는 이 부분이 그다지 문제되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확확 바뀌는게 여러 이어폰을 쓰는 것 같아 좋을 수 있지만 프리미엄급 이상이라면 필터보다 이어팁으로 세부 튜닝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FX17도 다행이 이 방식을 채택했네요.


제가 테스트해본 결과 별도로 모델명이 존재하고 따로 판매되는 이어팁 3종이 기본 구성품보다 사운드 총점이 더 높습니다. 그 중에 하나만 꼽자면 제 추천은 HS18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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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데까지 간다


여기까지는 상세페이지에서 제공된 정보들에 대한 정리였고, 이제부터는 제 방식대로의 감상입니다. 앞서 언급한 피오의 일곱가지 특징을 하나씩 반추하며 설명을 곁들어보겠습니다.


1) 중국 브랜드다, 가성비가 좋다


피오 역시 중국 브랜드이기 때문에 가성비에 대해 크나큰 기대를 할 수 있겠지만 100만원 이상의 프리미엄, 그 중에서도 끝판왕을 다투는 플래그십이라면 가성비 의미가 없어지는 구간입니다. 게다가 피오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이미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좀 더 낮은 진입장벽을 지닌 Jade Audio라든지 개성과 유니크함을 추구한 SNOWSKY 등 서브 브랜드를 구분하여 운영 중입니다. 그러니 FX17은 포터블 하이파이의 대장 피오, 피오의 대장 이어폰 지위에 맞게 '이어폰 종결자'로서 타 브랜드와 대등한 싸움을 벌인다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2) 제품 만듦새와 디자인이 깔끔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디자인 컨셉을 모색한다

3) 패지키가 멋스럽고 구성품을 넉넉하게 제공하여 3번과 더불어 흐뭇한 만족감을 준다


이 두가지는 위에서 충분히 설명한 듯하여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4) 음악성보다는 음질(성능)을 강조한다

5) 대체적으로 상쾌하고 경쾌하며, 투명하고 깨끗한 사운드를 추구한다


FX17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높은 성능입니다. 초저음부터 초고음까지, 아주 작은 소리부터 매우 큰 소리까지 탁월하게 표현해냅니다. EST가 8개나 들어가서 고음~초고음에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만큼이나 든든하고 웅장한 초저음~저음 비중도 높은 편입니다. 전체적으로는 V자 형태로 저음과 고음이 강조되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음이 아주 깔끔하게 정제되어 있고, 고음 역시 소리 자체를 강하게 표현하기보다는 공기감을 주는데 주력하고 있어 각 음역대가 막 도드라지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소리의 모든 높낮이와 모든 크기에서 고르게 깔끔하고 탄탄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또한 이 높은 성능이 아주 적극적으로 표출되지 않고 한발짝 뒤로 물러나 있습니다. 그간 제가 들어본 피오 이어폰 중 가장 얌전한(?) 사운드를 갖고 있는데, 한 브랜드를 대표한다는 묵직한 무게감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대장은 안쪽 깊숙이 들어가 있는 법이거든요.


피오는 독자적인 길을 가는 모험을 시도하기보다는 최대한 안정적으로 균일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객관성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점수를 얻으려 하는 방향보다는 점수를 잃지 않으려하는 모습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성이 적극적으로 표출되는 '음악성' 부문에서는 딱 기본만 지킨다는 느낌입니다. 프리미엄급의 제품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웅장한 분위기 정도만 연출하는 정도고 전체적으로는 담백한 음색입니다.


확실히 타 브랜드의 플래그십 이어폰과 비교해보면 잔향이 많지 않아 깔끔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다른 피오의 이어폰보다는 확실히 잔향이 많고, 음과 음사이를 더 고급스러움으로 버무려 부드럽게 이어놓은 것 같은 여유로움과 우아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금 소재가 들어간 케이블에서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는 사운드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이런 객관적인 사운드 기조는 피오의 큰 그림, '포터블 하이파이 대장'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는데 유리합니다. 개성이 적을수록 표준이 되기 쉽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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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오의 정체성


6) 상대적으로 등급이 낮은 모델의 추천도가 높다


이것 역시 피오의 브랜드 특성에 기인합니다. 피오는 엔트리급부터 프리미엄급까지 모두 다루는 브랜드입니다. 이렇게 타깃층이 넓은 브랜드는 십중팔구 엔트리급의 상품성이 더 인정받습니다. 그렇다면 이 제품은 어떤 점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을까요.


각 브랜드의 끝판왕 이어폰들을 여럿 비교하며 들으면 사운드의 어떤 특정한 면이 부각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부분은 이것이다' 라는 거지요. 그러나 FX17은 그 모든 요소가 골고루 빛을 받을 수 있도록 튀어나오는 부분이 없습니다. 균형잡힌 플래그십 이어폰을 선택하려 한다면 이것이 강점으로 발휘될 수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미세 조정은 22쌍의 다양한 이어팁으로 가능하니까요.


7) 제품 카테고리별로 중점을 두는 사운드의 특징이 확연히 구별된다


제가 판단하기로 피오 브랜드 전체를 관통하는 사운드 시그니처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대신 제품 카테고리별로 중점을 두는 사운드의 특징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래서 피오의 DAP는 서로 비슷한 소리를 내고, 피오의 AMP들도 서로 비슷한 소리를 냅니다. 유선 이어폰의 경우엔 하위 카테고리가 있지요. 드라이버의 조합에 따라 FA / FD / FX / FH 등으로 나뉘는데 같은 시리즈 내의 형제 모델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계열의 소리가 나지만, 다른 시리즈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납니다.


이걸 다시 정리하면 피오는 각 모델이 속한 제품군이 어떤 소리를 가져야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방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 '각 포지션에 맞는 성능과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것' 입니다. DD + BA + EST 트라이브리드 시리즈에 속해있는 FX17 역시 이런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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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오의 모든 이어폰을 집대성하다

피오가 성장해왔던 가장 큰 까닭은 어떤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면모를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흠결이 존재하지 않는 철두철미함이라 생각합니다. FX17은 최상위 모델인 만큼 그 완성도가 절정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언젠가 FX17을 뛰어넘을 플래그십 FX19가 출시될 때까지 피오의 대장 이어폰 자리를 든든하게 유지시켜 줄 위엄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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