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무르익은 가을의 노래

SIVGA PENG

by 범노래

* 셰에라자드로부터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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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NG


옛날 옛적 북쪽 바다에 KUN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물고기가 살았습니다. 어느날 이 물고기는 자신의 무대가한정된 바다가 아니라 더 넓고 자유로운 하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순수한 의지로 몸에 날개를 달아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 KUN은 이제 PENG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남쪽으로 멀고도 먼 여행을 떠납니다. PENG은 한번의 날개짓으로 자연의 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는 초현실적인 존재입니다.


당연하게도 실재하는건 아니고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새입니다. KUN과 PENG을 따로 쓰기도 하고 변신 전후를 합쳐 KUNPENG으로도 씁니다. 물고기에서 새로의 변신은 열망과 한계의 초월,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거대한 야망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성장, 자유 추구, 자신 안에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강력한 은유로 중국 문학에서 자주 사용된다고 하네요. 워낙 좋은 뜻이다보니 예술품이나 전자제품등의 공산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얼마전 참관한 2025 포터블웨이브 오디오쇼에서도 KUN / PENG / KUNPENG 이름의 제품이 여럿 출전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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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VGA


시브가는 <장인정신, 전통(유선), 우드(자연), 클래식(음악)> 키워드를 갖고 있는 중국의 이어폰/헤드폰 전문 브랜드입니다. 그간 시브가 제품을 10개 가량 경험해봤는데 M200이라는 개방형 이어폰을 제외하고는 앞서 언급한 키워드에서 벗어난 적이 없을정도로 외길만을 우직하게 걷는 장인 브랜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시브가의 핵심 라인업은 유선 헤드폰이며, 개방형과 밀폐형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2025년 7월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목록을 정리해보면


1) 개방형

Anser (299,000)

Luan (484,000)

SV023 (699,000)

P2 Pro (654,000) -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


2) 밀폐형

SV021 Robin (223,000)

Oriole (334,000)


밀폐형 진형의 열세입니다. 아무래도 휴대를 우선한다면 무선을 선택할 테고, 남은 유선 중에서 사운드 품질을 우선한다면 개방형의 장점이 많기에 더 다양한 제품을 갖추게 된 것이겠죠. 제품 수도 부족하지만 대장급(플래그십)의 금액 차이도 많이 나는데요,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타난 밀폐형의 대장이 바로 PENG 입니다. 금액은 690,000원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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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아프리카산 지브라우드

인체공학적 앵글 이어패드

프리미엄 양가죽 헤드밴드

하드케이스 제공

Dual 3.5mm to 4.4mm 커넥터 케이블 (4.4mm - 3.5mm 변환 케이블, 3.5mm - 6.3mm 변환 단자 포함)

341g


시브가의 디자인은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우드와 메탈을 세련되게 조합시키고 장인정신이란 키워드에 걸맞게 절두철미한 마감으로 완성시키죠. 이전에 썼던 시브가의 다른 헤드폰 리뷰에서 내용을 복사 - 붙여넣기 해도 지장이 없을 정도입니다. 시브가의 여러 헤드폰들을 만나봤지만 밀폐형이 개방형보다 디자인 만족도가 높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 브랜드가 우드를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는만큼 디자인이나 질감 표현에 밀폐형이 더 유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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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브가 특유의 이어패드가 눈에 띕니다. 이거 참 물건이예요. 인간의 귀 - 뺨 - 턱으로 이어지는 라인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생겼는데, 완벽한 밀착도를 보이려면 이어패드 각 부위의 두께가 달라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긴 이어패드가 실제로는 별로 없죠. 이어컵이 앞뒤로 90도 자유롭게 회전하는 스위블 기능도 눈여겨 볼만합니다. 보통은 앞이나 뒤 한쪽으로만 눕힐 수 있게 만들어지죠. 가동 범위가 넓다는 것은 곧 뛰어난 핏, 완벽한 밀착도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착용감은 단단합니다. 처음에는 어... 좀 조이나? 라는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오래 착용해도 그 느낌이 그대로 유지되어 어느순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스포츠카의 시트를 떠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일반 차량과 다르게 스포츠카의 시트는 더 넓은 면적을 밀착시키고 더 단단하게 감싸안으며 거친 움직임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꽉 잡아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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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브가 제품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디자인과 마감, 이어패드의 밀착도, 적당한 압박감에서 비롯된 훌륭한 착용감은 다른 브랜드의 귀감이 됩니다. 차이파이와 장인정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습니다만 이제는 그런 얘기를 하기 어려운 시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이어폰/헤드폰 브랜드를 통틀어 시브가는 독보적인 수준의 만듦새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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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운드


제가 시브가라는 브랜드를 처음 알게 된 게 2021년이니 4년 정도가 됐습니다. 그 짧은 사이에 참 많은 시브가 제품들을 리뷰했었네요. 전통을 키워드로 삼은 것 치고 은근 제품이 추가되는 속도가 빠른 듯 하지만 그건 아시아 공통의 문화 '빠름'에 어느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어쨌든 그 기간동안 시브가는 빠르게 발전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거쳐왔습니다.


제가 눈치 챈 것은 최근 모델로 올수록 더 고음이 부드러워지고 저음의 존재감이 확실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건 다양한 유저층을 포섭하는데 아주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과거 제품들은 고음이 앙칼지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볼륨을 높일수록 더 그랬고, 저음 비중 또한 낮았기 때문에 더 도드라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정말 고음을 좋아하지 않으면 추천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고음 위주이긴 하나 극단적이지는 않다' 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브가를 소개할 때 반드시 빼놓지 말아야 할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봅니다. '최저의 금액으로 최고의 클래식 사운드를' 혹시나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최우선적으로 시브가 브랜드를 떠올려야 합니다. PENG 역시 클래식 장르에 발군의 매칭을 갖고 있어요. 큰 틀에서 시브가 사운드는 한번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일단 우드를 공통적으로 쓰다보니 사운드의 방향이 어느정도 제한된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나 이런 흐름 역시 약간의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모델로 올수록 더 올라운더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클래식을 들을 사람에게만 추천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소화할 수 있는 장르가 꽤 많아졌습니다. 그렇다해도 '다이내믹', '타격감', '묵직함' 이런 느낌이 강하지는 않으니 참고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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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앰프 의존도


PENG이 추가되면서 시브가의 개방형 VS 밀폐형 헤드폰 구도가 3:3이 되었지요.


1) 개방형

Anser (299,000)

Luan (484,000)

SV023 (699,000)


2) 밀폐형

SV021 Robin (223,000)

Oriole (334,000)

Peng (690,000)


* 치사하게(?) 혼자 평판 자력형을 채택한 P2 Pro는 제외시킴


라인업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좀 신기한 걸 발견했습니다. 개방형은 플래그십이 영문+숫자인데, 밀폐형은 엔트리가 영문+숫자입니다. 게다가 이 브랜드는 새 이름을 모델명으로 많이 사용하는만큼 당연히 전설이나 신화에 들어가는 게 플래그십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밀폐형에서는 플래그십이지만 개방형에서는 미들 위치에 있습니다. 일관성 있게 라인업을 정리해주면 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어쨌든 본론으로 들어가서 저는 이 모델들을 전부 들어봤는데요, 개방형과 밀폐형 공통적으로 금액이 올라갈수록 사운드가 좋아지지만 앰프를 연결해주면 그 차이의 폭이 더욱 커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플래그십 SV023은 300Ω, PENG은 340Ω이라는 높은 임피던스를 갖고 있어 32~38Ω인 아래 모델들과 완벽하게 선을 긋고 있습니다.


다만 헤드폰앰프가 '필수'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우선 볼륨 확보 문제입니다. 보통 헤드폰의 임피던스가 300옴이 넘으면 볼륨 확보에서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메인 DAP인 FIIO M11S 기준으로 이어폰은 30~50, 헤드폰은 50~60 정도의 볼륨을 사용하는데 PENG은 70 정도로 맞춰서 듣고 있습니다. (보통 Gain 기준) *이 정도면 굳이 헤드폰앰프를 써야 하나 싶거든요. 실제로 32Ω인 다른 시브가 제품과 비교해봐도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요. 하나 더, 센디오디오 Aiva 2의 임피던스는 32Ω입니다만 비교 청취해본 결과 앰프가 반드시 필요하며, PENG보다 오히려 볼륨을 더 많이 먹습니다. 이래서 제가 제품의 스펙이나 측정값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해요.


*350Ω의 임피던스를 가진 FIIO FT3는 동일한 환경에서 볼륨을 90까지 올려야 하며, 이 경우 볼륨 자체는 확보되지만 소리가 매우 날카롭게 재생되어 헤드폰앰프가 필수라고 판단함.


앰프 없이 재생하면 전체적으로 소리의 감이 멀게 느껴지고 뒤쪽에서 소극적으로 속삭인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데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 제품이 플래그십이니 약간 뒤에서 느긋하게 재생되는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 가능한 수준입니다. PENG은 시브가에서 가장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강하며, 가장 낮은 무게중심과 안정적인 사운드를 냅니다. 거대한 전설의 새를 이름으로 정한만큼 듬직하고 품이 넓은 사운드를 지향하고 있어 역시 브랜드 내 플래그십답지요. 앰프를 연결하면 확실히 좋지만, 앰프를 연결하지 않아도 나름의 맛이 있습니다.


다시 정리해보죠. 시브가는 일반 브랜드 '시브가'와 프리미엄 브랜드 '센디오디오'로 나뉩니다. 센디오디오 제품들은 100% 앰프 필수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리가 제대로 안나온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시브가는 진입장벽이 낮은만큼 추가적인 앰프가 없어도 제 성능이 충분히 나오게 설계했을겁니다. 시브가의 플래그십 SV023과 PENG은 앰프를 연결하지 않아도 좋지만 연결하면 더 좋아지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센디오디오로 넘어가기 전 앰프의 필요성에 대해 한번 경험하게 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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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탄탄해지고 견고해지는 시브가의 성(城)


라인업이 잘 짜여야만 좋은 브랜드가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좋은 브랜드는 어김없이 라인업이 잘 짜여있습니다. 라인업이 잘 짜여있지 않으면 고객이 브랜드에 호감을 갖고 제품을 선택하려 할 때 해당되는 제품이 없는 빈자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돌아서서 다른 브랜드를 찾으러 가겠지요.


시브가의 라인업이 촘촘해지고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PENG은 우드의 울림과 자연 악기 소리의 매력을 잘 살려주는 훌륭하고 모범적인 밀폐형 헤드폰이며 별도의 헤드폰 앰프가 없더라도, 훌륭한 헤드폰 앰프를 보유하더라도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경계선, 미들급에 속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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