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fine Quatio
- Kefine
존윅 시리즈라고 혹시 아십니까? 한국에 <범죄도시>가 있다면 해외에는 <존윅>이 있다고 할 정도로 잘만든 액션 영화입니다. 제가 인상깊게 본 존윅 리뷰에 주옥같은 멘트가 하나 등장하죠.
'그런거 할 시간에 존윅은 X명 더 죽입니다.'
이 말은 뚜렷한 주제 의식, 미쟝센, 인물간의 갈등과 개연성, 반전 장치 등 영화의 여러 요소들을 고루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액션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는 의미입니다. 중국의 Kefine이라는 이어폰 브랜드도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어폰의 다른 요소(패키징, 디자인, 마케팅 활동)에 자신들의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운드로 승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거든요. 할아버지 이름 대신 설립자 이름(Ke)을 걸고 말이지요.
Kefine(이하 커핀)에서 그간 선보인 제품은 3종입니다. 세 모델 공통으로 해당 금액대의 어떤 브랜드, 어떤 모델과 비교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사운드에서는 근소하게나마 우위를 가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커핀의 짧은 역사를 고려해본다면 정말 대단한 '깡'을 갖고 있는 것인데요, 말 나온김에 세 모델을 간단하게 좀 소개해드리도록 하지요.
1) Klanar (185,000원) : 14.5mm 대구경의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를 채택한 이어폰입니다. 평판 자력형 특유의 높은 음질,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운드를 이례적으로 낮은 금액에 선보였습니다.
2) Delci (119,000원) : Diamond Like Carbon 소재의 다이내믹 드라이버 이어폰입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 풍성한 느낌을 전달하는 DD의 특징을 잘 살려 음악적인 느낌이 충만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3) Klean (75,400원) : 엔트리 모델답게 약간은 미숙하지만 클라나와 델시 두 모델의 사운드 성향을 어느정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노즐 교체를 통해 사운드를 변경하는 재미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 Quatio
Quatio는 Kefine의 플래그십이자 4번째 이어폰으로 Quad + Audio라는 의미입니다. 이때까지는 모두 싱글 드라이버를 사용했었는데 첫번째 선보인 멀티 드라이버 이어폰이 무려 4개를 사용한 제품이네요. 그걸 기념삼아 모델명으로 지은 것 같습니다. 그럼 발음이 쿼디오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어째서 콰티오인가... 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겠죠?
이 브랜드 좀 청개구리 성격이 있습니다. Ke + Refine이면 커파인이 맞을 것 같은데 커핀이라고 불러달라고 하거든요. 그게 아니라도 다른쪽으로 생각해보면 수닭이 아니라 수탉이라 하고, 안밖이 아니라 안팎이라고 발음하니 아예 말이 안되는 것도 아닙니다. 네,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갑시다.
198,000원
10mm DD(전대역) + 8mm DD(저음) + 2BA(고음) Hybrid
총 392가닥의 은도금 동선
2pin / 3.5mm or 4.4mm 플러그 교체
3종 교체형 노즐
이어팁 4종 총 12쌍
하드케이스
간단히 스펙을 정리해봤습니다. 일단은 멀티 드라이버의 튜닝이 싱글 드라이버보다 훨씬 까다로울텐데 그래도 20만원을 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드네요. 하긴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를 채택한 클라나도 20만원이 넘지 않았으니 이 브랜드의 상한선이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왜 이어폰의 금액이 20만원 넘어야 하지?' 정말 반갑고 훌륭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콰티오의 성향을 간단히 풀자면 클린의 상위호환이라고 생각합니다. 클린에서 보여준 '열린 가능성'을 더욱 넓게 확장하고, 성능 또한 끌어올린 것이지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서 다양한 드라이버 구조 + 3종 교체형 노즐 + 4종 이어팁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멀티 드라이버 구성도 특이합니다. 전 당연히 가장 큰 직경을 갖고 있는 10mm DD가 저음을 담당하는 줄 알았는데 전체 음역대를 아우르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8mm DD가 저음을 담당하며, 2BA는 고음역대를 담당한다고 하는군요. 간간히 멀티 드라이버 중 하나가 전체 음역대를 담당하는 풀레인지인 경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이는 멀티 드라이버 특유의 분리도, 입체감, 디테일을 살리면서도 전체적인 사운드의 조화를 더 신경썼다는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 싱글 드라이버만을 채택한 브랜드다운 선택입니다. 성능이 더 높아지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체감이 훼손되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 디자인 & 착용감
앞서 언급한대로 이 브랜드는 패키지나 디자인에 큰 무게를 싣지는 않습니다. 그냥 적당히(?) 고급스럽게, 검은색 바탕에 브랜드 로고를 깔끔하게 넣는 식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착용감도 무난한 편이지만 이어폰 몸통 자체가 조금 두꺼운 편으로 귓구멍의 폭이 좁은 분이라면 이어폰이 바깥으로 밀려나가려는 듯한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은 사이즈의 DD를 2개 앞뒤로 붙인 푸시풀(Push-Pull) 구조라면 부피가 좀 더 작아질 수 있었을텐데 구경이 다른 DD를 입체적으로 배치했기 때문에 공간을 많이 차지하게 된 것으로 보이네요.
- 사운드
콰티오처럼 들을 수 있는 사운드의 가짓수가 많으면 무엇을 기준으로 사운드를 서술해야 하는지 고민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게다가 노즐과 이어팁이 장착되지 않은 채로 패키징되었다면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발자의 의도가 뭔지 모르니까요. 다행이 노즐과 이어팁이 장착되어 있어서 그걸 기준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콰티오의 첫 인상은 음 두께가 굵직하다는 겁니다. 요즘 대다수가 광활한 공간 연출을 부각시키기 위해 음의 입자를 작게 만들고 최대한 음 사이가 멀게 느껴지도록 배치를 하기 때문에 음선이 가늘고 무게 중심이 높게 느껴지는 편이거든요. 특히나 차이파이 제품 중에서는 이런 두껍고 묵직한 느낌이 귀합니다.
그리고 소리의 끝이 둥글어서 편안합니다. 이것도 일반적인 차이파이와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보통 고음을 집중적으로 케어하면서 끝을 날카롭게 갈아 시원하고 깨끗한, 때로는 투명한 소리를 의도하거든요. 그러면 위쪽으로 공간이 뻥 뚫려있는 소리가 나게 됩니다. 커널형 이어폰의 단점인 막혀있는 느낌을 해소하고, 높은 등급으로 갈수록 공간이 넓고 개방감이 좋은 경향을 띠기 때문에 이런식의 사운드 세팅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팅의 단점은 아무래도 천대받는 저음입니다. 여러 개의 찬란한 조명을 한 몸에 받는 고음과 달리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에 저음이 있는 느낌인데다 부여되는 공간의 크기조차 몇배는 차이납니다.
콰티오의 고음과 저음의 대우는 아주 공평합니다. 균형이 아주 잘 맞아요. 고음에만 비추던 조명을 저음에도 비추고 있고 같은 평수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쪽으로만 확장된 공간이 아니라 저 아래쪽으로도 쭈욱 내려가는 넓은 공간을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아마 비슷한 금액대의 차이파이 제품과 비교하면 고음의 비중이 낮아 더 답답하게 들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제 기준에서는 이게 정상인 밸런스입니다.
그리고 소리의 속도가 느리고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이것도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 안정감있고 차분하며, 감성적인 표현을 하는데 유리합니다. 반대로 나쁜 쪽으로 해석하면 소리의 텐션, 긴장감이 떨어지고 생동감이 아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보통의 차이파이는 후자를 주로 선택하지요. 개인적으로는 전자를 더 선호합니다. 일단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음악성 점수가 높고, 제품의 등급이 높아질수록 전자의 분위기를 더 강하게 풍기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콰티오의 가장 큰 장점은 균형미입니다. 제가 늘 지겹도록 언급하는 음질 / 음악성 / 공간감의 합산 점수가 20만원 아래에서는 가장 높다고 생각합니다. 각 항목에서 최고의 자리는 차지하지 못할지라도 그 제품과 경쟁할 수준은 될 겁니다. 세 요소가 모두 최상급에 랭크된다는 얘기지요. 20만원을 투자하여 단 하나의 이어폰만을 남겨야 한다면 유력한 우승후보가 되겠습니다.
- 이어팁 변경
형태와 색상이 다른 총 4종류의 이어팁이 존재합니다. 먼저 형태로 구분을 해보도록 하죠.
1) 높이가 낮은 그릇형, 노즐의 직경이 큰 이어팁 : 공간의 크기를 확장하고 공간에 중점을 둡니다. 소리와의 거리가 멀어 안정적이며 편안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2) 높이가 높은 항아리형, 노즐의 직경이 작은 이어팁 : 공간의 크기를 축소하고 음 표현에 중점을 둡니다. 소리와의 거리가 가까워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다음은 색상 구분입니다.
3) 블랙 : 저음형, 느릿느릿하며 힘이 풀어져 있는 느낌입니다.
4) 화이트 : 고음형, 빠릿빠릿하며 긴장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는 세팅은 높이가 낮은 그릇형, 노즐의 직경이 큰 블랙 이어팁입니다. 근데 생각보다 이어팁을 변경해도 변경되는 사운드의 폭이 엄청 크지는 않습니다. 미세조절용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 노즐 변경
블랙 :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운드
실버 : 기본 세팅, 균형잡힌 밸런스형
골드 : 맑고 투명한 고해상도 사운드
이어팁에 비해 노즐 변경은 아예 다른 이어폰이 된다고 봐도 될 정도로 큰 차이가 납니다. 블랙 노즐은 극한의 아날로그 - 진공관 같은 사운드가 납니다. 저는 좀 어둡고 답답한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반대로 골드 노즐은 제가 앞서 설명한 보통의 차이파이 이어폰 같은 사운드입니다. 아주 밝고 고음에 힘이 잔뜩 실려있으며 음 끝이 날카롭게 날이 서있습니다. 이걸 맑고 투명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나...? 싶어요.
제 추천은 실버입니다. 블랙이나 골드나 둘 다 조금 극단적인 방향이라고 생각되었거든요. 물론 적응을 하면 둘 다 매력넘치는 사운드이긴 한데, 주식(?)으로 먹을 만한 건 아닙니다. 앞서 콰티오의 가장 큰 매력이 훌륭한 균형감, 밸런스라고 말씀드렸는데 당연히 실버 노즐에 해당되는 얘기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20만원 이하에서 아무도 날 막을 수 없다
커핀은 '같은 금액을 투자했을 때 자기네 것보다 더 좋은 소리를 내는 제품은 없을거다'라고 굳게 주장하고 있고, 저는 그 주장에 토를 달 생각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 브랜드의 제품들은 음색적으로 호불호가 거의 없는 타입이라서 아주 특별한 취향이 아니라면 절대 손해볼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커핀 한잔하고 가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