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형 모니터링 헤드폰의 정석

Audeze LCD-S20

by 범노래

* 셰에라자드로부터 콘텐츠 제작 비용을 받았습니다.

2.JPG


- 오디지 정신


2017년에 오디지의 첫번째 이어폰 iSINE 10 / 20을 국내에 선보이면서 본사에서 한 얘기가 있습니다. 오디지의 첫번째 목표는 프로들에게 인정받는 프로용 헤드폰을 만드는 것, 두번째 목표는 훌륭한 음악감상용 헤드폰을 만드는 것, 세번째 목표는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를 이용한 다양한 분야(게이밍, 스피커 등)에 진출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방향성은 2025년인 지금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오디지가 전세계급의 프리미엄 헤드폰 브랜드로 성장한 데는 현업에 종사하는 프로들의 입김이 꽤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디지의 프로용 제품들은 세계 최고의 레코딩 스튜디오가 찬사를 아끼지 않을 정도로 신뢰받고 있거든요. 오디지가 좀 부탁한다고 해서, 일정 대가를 지불한다고 해서 그들이 쉽게 움직여 줄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 그 행사의 Q&A에 이런 질문도 나왔습니다. 오디지의 영역을 더 확장하기 위해 10~20만원대의 저렴한 제품을 만들 계획이 없냐고. 그런데 담당자께서 아주 단호하게 얘기하시더라고요.


'없다, 우리는 프리미엄을 유지하기 위해 최고의 제품만을 만든다'


오디지는 까다로운 프로를 대상으로 제품을 만드는 만큼 까다로운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프로들을 상대하느라 그렇게 되어버렸는지, 애초에 그런 까다로운 성향을 지닌 끼리끼리(?) 만났는지 모르겠습니다.


4.JPG


- LCD-S20


오디지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엔트리급 밀폐형 모니터링(프로용) 헤드폰입니다. 오디지 본사 사이트 기준으로 지금 현재 취급하고 있는 제품 라인업이 음감용은 7개, 프로용 역시 7개로 균형이 맞는 상태라고 볼 수 있지만 개방형과 밀폐형의 차이는 심각합니다. 음감용 라인업에서 LCD-2 Closed Back 단 1개, 프로용 라인업에서 LCD-XC 단 1개입니다.


사실 울트라손처럼 특별하게 밀폐형을 고집하는 브랜드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프리미엄 헤드폰 브랜드는 개방형이 주력입니다. 헤드폰의 등급이 높아질수록 개방형의 총점이 높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나 청취 환경상 밀폐형 헤드폰이 필요한 분도 분명히 있을겁니다. 그런면에서 용도별 1개는 너무 적다고 볼 수 있지요. 게다가 앞서 언급한대로 오디지의 금액은 상당한 진입장벽이 존재합니다.


예전에 비해 음악을 제작하거나 편집하는 업무 자체는 진입장벽이 상당히 낮아졌습니다. 그만큼 더 저렴하면서 성능이 뛰어난 엔트리급 모니터링 헤드폰의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거지요. LCD-S20은 이런 목적을 위해 출시되었습니다. 금액은 799,000원으로, 성격상 형님이라고 볼 수 있는 LCD-XC가 2,100,000원이니 3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그나저나 iSINE10 / iSINE20의 관계로 보았을 때는 LCD-S10이라는 형제 모델이 나올 가능성도 있을 것 같네요. 어디까지나 제 추측일 뿐입니다.


9.JPG
10.JPG


- 디자인과 착용감


2023년 출시된 게이밍 헤드셋 맥스웰에서 기본 프레임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0만원 이하 엔트리 레벨(100만원 이하는 엔트리 취급하는 프리미엄 브랜드 오디지 클래스)에서 두루 사용되는 표준형 폼팩터로 결정한 모양이예요. 헤드폰에서 가장 파손이 잦은 길이 조절부가 따로 없고, 프레임 전체가 프리미엄 마그네슘 + 알루미늄 + 강철이라서 충격에도 강합니다. 한마디로 내구성이 짱짱한 헤드폰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사이즈를 조절할 수 있는 내부 헤드밴드는 손상되어도 쉽게 교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3단계로 뚫린 구멍에 맞추는 것으로만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에 3단계 중 내 머리에 딱 맞는 사이즈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 중간 머리 사이즈를 가졌다면 애매할 수 있거든요. 게다가 최대 크기도 제한적입니다. 저는 상위 5%의 대두로 최대 사이즈에서 겨우 착용 가능했습니다. 저보다 더 머리가 크신 분들이라면 착용 자체가 제한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오디지의 또다른 진입장벽인 무게 역시 550g으로 만만치 않습니다.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 구조상 매우 얇은 진동판을 사용하게 되며, 앞뒤로 무거운 자석을 붙여 구동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무게는 필수불가결입니다. 게다가 프리미엄을 자처하는 오디지 입장에서 플라스틱을 사용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겁니다. 메탈 소재 역시 무게를 상승시키는 요인이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음향기기의 무게는 곧 성능과 비례한다고 보기 때문에 충분히 감내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디지를 선택하는 많은 분들도 아마 비슷할 테고요. 왕이 되려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법이라지요. 처음 머리에 얹을 때는 분명히 묵직함을 느낄 수 있는데 점점 심해지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6.JPG


LCD-S20은 헤드폰 쪽 커넥터가 싱글이라 왼쪽/오른쪽 더 편한 쪽을 선택하여 연결합니다. 이런 형태는 주로 모니터링(프로용) 제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서로 다른 2개의 소스기기를 연결해서 헤드폰으로 동시에 들을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근데 그런 특수 용도가 아니라도 이렇게 되어 있는 편이 덜 걸리적거리기 때문에 음감용도 이런식으로 그냥 만들면 안되나 라는 생각을 가끔 해보곤 합니다.


13.JPG


이어패드의 밀도가 꽤 높게 세팅되어 밀폐형 헤드폰에 기대하는 차음성을 충족시키고 있고, 피부에 맞닿는 느낌이라든가 압박감은 준수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어패드가 자석으로 되어 있어 탈부착이 굉장히 쉽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모든 헤드폰의 이어패드가 이렇게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끔 핀 구조로 힘을 주어 체결해야하거나 돌려 끼우게 되어 있는 고가 헤드폰을 만나면 식은땀이 흐릅니다. 잡아먹는 시간도 아깝고 이어패드가 찢어질까봐 손이 덜덜덜 떨리거든요.


12.JPG


- 사운드


1) 3:4:3 법칙


제품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제가 오랜기간 오디지 제품을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오디지의 표준 사운드는 단단하고 정확하지만 양이 약간 부족한 저음, 두텁고 풍성하며 윤기가 흐르는 중음, 깔끔하게 절제된 고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3:4:3의 법칙(?)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중음의 양이 가장 많을 뿐더러 다른 음역대에 비해 앞으로 튀어나와 도드라지는 느낌이라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보통 사운드 얘기를 할 때 저음이나 고음을 주로 얘기하지만 실질적으로 브랜드의 캐릭터를 결정짓는 건 중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사운드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은 모니터링 제품군을 대상으로 비교해보면 더 쉽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LCD-S20도 이런 오디지 사운드 시그니처가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2) 장비를 타지 않는다


저는 평판 - 자력형 드라이버를 채용한 헤드폰을 만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치형 헤드폰 앰프에 연결합니다. 표기된 임피던스가 낮더라도 헤드폰 앰프를 연결했을 때 소리가 크게 변화할 가능성이 일반 다이내믹 드라이버 헤드폰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입니다. LCD-S20도 당연히 이런 절차를 밟았는데, 여태 오디지에서 출시한 평판 자력형 헤드폰 중에 가장 앰프를 타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디지의 음감용 라인업에 비해 모니터링 라인업들이 전반적으로 앰프를 덜 타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LCD-S20은 월등합니다. 표기 임피던스는 18Ω에 불과하고, DAP나 노트북에 직결하더라도 성능적으로 거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평가가 좋은 헤드폰 중에는 '고출력의 거치형 헤드폰앰프에 연결해야만 제 성능이 나온다' 라는 설명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픈형 헤드폰 3대장 - 젠하이저 HD600, AKG K701, 베이어 다이나믹 DT880이 모두 다 그렇거든요. 그래서 마음속으로 여태 이 헤드폰을 구매한 수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헤드폰 앰프를 보유하고 있을까 라며 안타까워하곤 합니다. 이런 경우 헤드폰보다 헤드폰 앰프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LCD-S20은 엔트리급 포지션에 충실하기 위해, 어떤 기기에서도 제 성능이 나오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3) 약점 극복


오디지의 최근 경향을 보면 이전에 비해 공간에 대한 비중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부터 평판 - 자력형 드라이버 헤드폰들은 다이내믹 드라이버 헤드폰에 비해 공간의 비중이 낮고 공간 연출력이 떨어지는 편이지요. 그러나 2018년에 출시한 게이밍 헤드셋 모비우스가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WAVES의 3D 서라운드 기술과 머리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헤드트래킹을 통해 현실과 거의 흡사한 공간 연출력을 보여줬고, 이 때 달성한 현장감의 수준은 아직까지도 따라가는 제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모비우스 역시 3D 서라운드 기술을 제외하면 그렇게 공간감이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보다 최근에 출시된 맥스웰은 3D 서라운드 기술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PC나 콘솔에서 수준높은 가상 서라운드를 지원하게 되면서 헤드폰은 그 소리를 잘 받아서 표현해주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공간을 잘 표현하게끔 헤드폰의 물리적인 구조를 변경하여 출시한 것이 바로 맥스웰입니다. LCD-S20은 맥스웰의 외형을 그대로 따온만큼 이런 속성이 기본적으로 배어 있습니다.


그래미 3회 수상에 빛나는 프로듀서/엔지니어 마크 어셀리는 'LCD-S20은 스튜디오에서 헤드폰 트래킹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라고 말했지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모니터가 아니라 트래킹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소리만을 듣는 범주보다 더 넓은, 소리와 공간의 개념까지 모두 추적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20250608_174204.png


4) 공기를 머금다


헤드폰의 사운드를 만드는 것은 드라이버의 일이지만 거기서 만들어진 사운드가 우리 귀에 곧바로 도달하지는 않습니다. 소리의 길을 만들어주는 여러 구조물들을 거치거든요. 헤드폰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고유의 구조물들이 오디지의 또다른 핵심 기술입니다. Symmetric Linear Acoustic Modulator (SLAM, 대칭 선형 음향 변조기)라는 기술도 마찬가지로 드라이버 바깥쪽에 나선형의 구조물을 설치하고 그곳으로 소리가 회전하면서 빠져나가게끔 만들었습니다. 소리가 더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며, 특히 저음 반응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이전에 CRBN2를 소개할 때 처음으로 선보인 기술인데 LCD-S20에도 적용되었습니다.


본사에서는 주로 저음 확장과 반응을 조명하고 있지만 저는 사운드 전체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음 사이 사이에 공기가 들어간 듯한 느낌으로 이전보다 소리가 더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더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충격을 완화해주는 에어 서스펜션이 추가된 것과 비슷합니다. 특히 기존 오디지에서 가장 매력이 떨어졌던 고음 부분에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맑고 투명한 속성을 띠게 되었으며 낭랑한 울림이 추가되어 듣기에 더 편해졌거든요.


그럼에도 오디지가 자랑하는 탁월한 타이밍, 정확한 음의 끊고 맺음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3:4:3의 음역대 법칙과 더불어 오디지 사운드를 규명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건 주로 저음에서 드러납니다. 아주 낮은 초저음까지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퍼지거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타이밍으로 제어됩니다. 오디지의 저음은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14.JPG


- 밀폐형 모니터링 헤드폰의 정석


LCD-S20은 오디지의 명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며, 신뢰할 수 있는 성능을 지닌 밀폐형 모니터링 헤드폰입니다. LCD-XC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고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이라 생각하고요,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프로 및 아마추어들에게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마음속 가성비 1위 무선 이어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