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옆 테이블 청춘들이여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그저 '일을 하다 만난 사람'이라 하겠다. 방 안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상쾌할까? 하지만 나의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일을 하다 보면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특히, 일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도 않은 사람과도 식사를 해야 한다거나, 술자리에 동석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그는 우리 조직과 갑을 관계에 있는 사람이었고, 업무적으로도 그 외적으로도 숨 쉬듯 갑질을 일삼는 사람이었다. 그날은 그 갑질이 폭발한 날이었다.
나는 그와 관련된 사업의 우리 측 메인 담당자였고 내 상사들과 함께였다. 시작까지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물론 좋아서 간 자리는 아니었으므로 전혀 즐겁지는 않았으나 견딜 만은 했다는 뜻이다.
안주로 골뱅이무침을 시켰다. 맥줏집에 손님이라고는 우리 테이블과 옆쪽 긴 테이블에 둘러앉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무리뿐이었다. 1차에서 이미 혀가 꼬일 정도로 거하게 취한 그는 골뱅이를 직접 무치기 시작했다. 다 무친 젓가락에 묻은 양념을 야무지게 먹고 다시 골뱅이를 한 움큼 들어 올리더니 내 옆자리 상사에게 권했다. 그녀가 한 번에 받아먹었다.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나와 비슷한 입장이라고 생각했던, 아니 어쩌면 사회생활 후배인 나를 보호해 줄 수도 있겠다고 믿었던 그녀가, 한 번에 받아먹었다. 평소 '윗분'들의 말이라면 거절하는 법이 없는 그녀였기에 대단한 충격은 아니었으나 약간은 놀랐다. 그녀가 먹은 후, 그는 다시 한번 골뱅이를 집어 한 입 먹었다. 계속 같은 젓가락으로. 그러더니 또 골뱅이를 집어 들었다. 그렇다. 다음은 나였다.
예상 못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 시간들 속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어떡하지, 진짜 싫은데, 어떻게 피하지, 어쩌지...
특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옆 테이블의 청춘들이었다. 본인들끼리 너무나 즐거워 보였기에 아무도 우리 쪽을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내가 신경 쓰였다.
저 청춘들이 힘든 대학생활을 이겨내고 사회에 나왔을 때 이런 꼴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이게 그들의 미래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는 사이 젓가락이 내 눈앞에 들이닥쳤다. "자, 먹어봐. 아~". 머릿속 생각은 멈췄고 오로지 본능에 의해 나는 턱살이 접힐 때까지 목을 뒤로 뺐다. 그리고 나의 주특기인 물음표 날리기를 시전 했다. "이게 뭐예요? 부추예요? 파에요?".
골뱅이랑 같이 무쳐진 그 초록잎이 부추든 파든 사실 하나도 안 궁금했다. 그저 받아먹지 않기 위해서는 입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에 뱉은 아무 물음표였다.
"아이, 섭섭하네". 그가 내 옆자리 상사를 보며 얘기했다. '끝난 건가?' 방심한 찰나, 2차 공격이 들어왔다. "아이, 아~ 해봐~". 이번에도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내 목이었다. 한껏 턱살을 구겨 접으며 나는 앞접시를 내밀었다. "여기 주세요~ 이게 뭐예요? 부추예요? 파에요?".
술에게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더 이상 자존심 상해할 정도의 의식조차 없었기에 그것으로 서로 웃으며 골뱅이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기어코 받아먹기를 거부한 채로.
누군가에겐 이게 별일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업무상 위력 관계에 있는 사람의 명령에 불복종하기란 사적인 자리에서조차 나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옆 테이블의 청춘들이었다.
웃음이 끊이지 않던 그 테이블. 그들이 계속 그렇게 싱그럽고 밝았으면. 그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나는 그 사회를 이미 만들어가고 있던 일원 중 하나일 것이다. 비록 내 몫이 아주, 아주 작을지언정 그들이 만날 세상에는 내 영향도 미쳐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골뱅이를 받아먹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받아먹으면 계속될 것이다. 상사가 받아먹는 걸 내가 어쩔 순 없다 치더라도 적어도 나는 받아먹지 말자. 적어도 내 선에서는 끊어내자.
나름의 전투를 마치고,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몰랐을 수도 있지만 옆 테이블의 청춘들에게 감사 인사를 바친다.
저에게 용기를 주어 감사해요. 여러분의 싱그러움이 여러분의 미래를 상상하게 했고, 그때는 사회가 좀 더 아름다웠으면 하고 바라게 됐어요.
저는 골뱅이무침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도 좋아하시나요?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원치 않게 받아먹을 일은 없기를 바라요. 당당하게 거절하고도 자책하지 않기를 바라요. 여러분의 존엄을 침해하는 일을 억지로 하지 않고도 평범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게요.
그러고 보니 지금쯤이면 이미 졸업을 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돌고 돌아 옆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누군가 여러분에게 골뱅이를 받아먹으라고 권한다면, 여러분에게 받은 용기를 잘 간직하고 있다가 제가 대신 물음표를 날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