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안 나신다고요?

기억 삭제자와 일하기

by 식빵이

나의 기억력은 선택적으로 좋다. 단순 암기력, 단기 기억력은 좋은 편이고,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지 못한 것들은 하릴없이 잊힌다. 친구가 우리 그때 어디서 뭐 했잖아! 하면 퍼즐 맞추듯 시간을 더듬어야 서서히 기억이 나는 반면에(끝내 기억을 못 해내는 경우도 가끔 있다), 업무 관련 회의 내용, 약속 등은 잘 기억하는 편이다. 무엇이든 완벽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정말 부럽다. 아닌가? 약간 괴로울 것 같기도.

나는 사람의 불완전성을 믿는다. 그리고 좋아한다. 미숙하기에 사람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깟 기억 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기억 삭제자와 일할 때의 대처법을 이렇게 소중히 붙들어 기록하는 것은, 가끔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지 않고, 남에게 화살을 돌리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끝내 사과받지 못하고, 화살을 받아내야 했던 경험. 그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아프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특히 기억 삭제자를 처음 만나 당혹스러운 분이 계신다면, 그런 분들에게 나의 대처법과 생각 한 조각을 공유하고 싶다.


대처법 1. 실시간으로 메모하기

내가 상대하고 있는 동료가, 혹은 외부 관계자가 기억 삭제자라는 것을 깨달았는가? 그렇다면 앞으로 상대와 대화를 나눌 때, 그것이 업무 관련 중요한 내용이라면 상대가 볼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메모하자.

이는 두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다.

첫째, 실시간으로 기록하기에 시간이 흘러 왜곡되는 일 없이 비교적 정확하게 대화 내용을 남길 수 있다.

둘째, 내가 지금 이 대화를 메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상대가 발언을 좀 더 신중하게 하게끔 무언의 압박을 줄 수 있다.

메모는 정확하게 될수록 좋기에, 수기보다는 컴퓨터로 남기는 것이 효과적이다. 회의 중이라면 노트북을 사용하거나(화면을 함께 보고 있으면 더 좋다), 상대가 내 자리로 와서 이야기한다면 내 컴퓨터 메모장을 띄워놓고 기록하는 것도 좋다.

물론 대화의 기본적인 매너는 눈을 맞추며 경청하는 태도라는 것을 잊지 않고, 눈은 상대를 보되 손만 바삐 움직이는 것이 더 좋겠다. 그럼 상대도 실시간으로 적어 내려지는 자신의 발언을 보며 좀 더 책임감을 느끼고, 책임지지 못할 내용이 있다 싶으면 수정을 요청하는 등 변화를 보일 것이다.

대면 상황이 아니라 통화 중이라면 현재 메모 중임을 어필하면 된다. 통화 중에도 메모는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한 번은 행사 관련하여 외부 관계자의 컨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이미 그 사람이 기억 삭제자인 것을 깨달아 통화는 최대한 피하고자 했으나 당시 가장 빠르게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통화를 했다. 유료 앱을 사용하지 않는 한 통화녹음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신에, 이 전화로 컨펌받고자 하는 내용을 미리 번호 매겨 기록해 두고, 통화하며 실시간으로 답변받은 내용을 그 옆에 작성하였다.

며칠 후, 상대 회사 상사가 우리 측 상사에게 어떤 내용에 대해 어째서 미리 컨펌받지 않았냐며 강도 높은 컴플레인을 제기하였다. 우리 측 상사는 나에게 확인했고, 해당 내용은 내가 통화 당시 컨펌받은 7개 중 5번에 해당되는 것으로, 분명한 답변을 받았고, 실시간으로 받아 적은 답변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었다. 기억 삭제자가 그 기억을 삭제한 채 본인 상사에게 보고한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통화 당시의 메모를 복사하여 전달했고, "제가 바빠서 정신이 없었나 보네요"라는 한 마디 답장을 받았다.

참고로, 기억 삭제자에게 사과를 기대하는 것은 포기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대처법 2. 회의록 빠르게 공유하기

내 사업 관련 회의에 외부 관계자 및 우리 직원 등 여러 사람이 참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여러 사람이 있었다 해도 결국 누구보다 그 회의 내용을 잘 기록하고 공유해야 하는 사람은 담당자 자신이다. 회의 때 녹취를 하든, 메모를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회의 후 담당자가 요지를 정확하게 정리해서 최대한 빠르게 공유하는 것이다.

회의 당시에는 열정적이었던 참가자들이 회의가 끝나면 밀려드는 다른 업무들로 금세 어떤 안건을 후순위로 두게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만일 그 회의에서 파생된 중요한 후속조치가 있다면, 협조가 필요한 내용이 있다면, 회의록부터 빠르게 공유하고 계속해서 리마인더를 보낼 필요가 있다. 회의 참석자 중 상습적인 기억 삭제자가 있다면 회의록에 아예 화자를 함께 기록하는 방법도 있다. 그렇게 하면 회의록을 공유받은 참석자 전원이 누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 알 수 있다. 이 방법은 나도 전수받은 방법인데, 그간 어떤 역사가 있었기에 이렇게 됐을까, 코끝이 찡했다.

회의록 공유를 미룰수록 후속조치도 밀린다. 특히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기억 삭제자에게 그 회의는, 조금 과장하자면 없던 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물론 회의록을 잘 공유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술술 진행되리라 보장은 못한다. 회의록에 버젓이 적혀있는 내용도 부정하며 "암튼 다 틀렸고 내 말이 맞다!"라고 주장하는 기억 삭제자계의 최종 보스를 만난다면 모든 노력이 부질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애처로운 애쓰기 방법들을 제시하는 이유는 끝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대처법 3. 서면 소통

내가 만난 한 기억 삭제자의 기억 삭제력은 날이 갈수록 강력해졌고, 그러는 동안 내 마음에는 많은 화살이 꽂혔다. 그럴 때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이 바로 서면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외부 관계자였기에 원래부터 기본 소통 창구가 이메일이긴 하였으나, 나중에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서면 소통에 의존하게 되었다.

서면 소통 시 주의할 점은 요지를 간략하게 서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 논점에 번호를 붙여 강조해 두는 것도 좋다. 이는 상대에 대한 배려일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효율적인 방식이 될 것이다.

만약 기억 삭제자가 같은 회사 사람이라면 대면 소통이 편리하더라도 메신저를 이용한 서면 소통을 권장한다. 특히 뭔가 확인받아야 하거나, 데이터에 관한 것이거나, 기한 내에 처리를 요청해야 하는 것이라면 더욱이 말이다.

기억 삭제자와 굳이 통화를 해야 한다면 요즘은 통화 내용을 요약해 주는 서비스까지 있으니 이를 이용하여 통화 후 한 번 확인만 하고 서면으로 바로 공유해 버리는 방법도 있겠다. 나도 지금은 해당 기능을 이용하지 않지만 다음에 또 강력한 기억 삭제자를 만난다면 통신사를 바꿔서라도 활용하고자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솔직히 이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질 상황은 많다. 최종 보스를 만났거나, 어차피 상대가 다 맞다고 해줘야 할 정도의 갑을 관계에 있거나 하는 상황들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노력이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기록들이 남아있으면 나 자신에게는 떳떳할 수 있다.

내가 상술한 기억 삭제자들은 자신의 기억 삭제력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계속 일을 하며 그들의 강력한 자기 확신을 마주하다 보면 반대로 나 자신은 어느 순간 '내 기억이 정말 이상한가?', '내가 착각한 건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최소한 이것은 피하자는 거다. 다른 사람의 문제로 인해 내가 나를 믿지 못하게 되는 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그런데 보다 확실하게 나를 믿어주려면 나에게도 근거가 필요하다. 이 노력들은 그 근거가 되어줄 것이다. 내 눈으로 정확하게 기록을 보면 내가 틀린 게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사사건건 집요하게 녹취하고 기록으로 남겨서 기억 삭제자들의 눈앞에 들이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차피 그들은 그런다고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또 그건 자신에게도 너무 피곤한 일이다. 다만 기억 삭제자들과 업무를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는 방법, 그리고 그들과 일하며 얻은 타격으로 스스로가 위축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다.

참 재밌는 것은 기억 삭제자들도 억울해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더 답답하고 억울할 수도 있다. 진짜로 기억이 안 나는 걸 수도 있지 않은가. 자신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할 뿐.

이는 내 기억이 삭제된 경우 대처법에 대한 실마리도 제공한다. 인정하고 사과하면 된다. 사람이 당연히 잊을 수도 있는 거 아닐까? 그럼 진심으로 사과하고, 다음 해결책을 향해 나아가면 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기억 삭제자와 보통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이다. 즉, 내게 기억 삭제자는 보통 사람은 아닌 존재들로 남아있는데, 그렇게 구별해 두고 사실 약간 미워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는 관용의 폭을 조금 더 넓혀볼까 한다. 아직은 마음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조심스레 물어본다. 누구나 불완전하다. 기억을 못 할 수 있는 것처럼, 불완전하기에 인정을 못 할 수도 있고, 사과를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상처가 조금 더 아물면 그때는 그들의 억울함도 조금은 품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공존해야 하기에. 또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기왕이면 그들과 함께 하면서도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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