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할 말을 팩스로 보내라고요?

삐빅- 실화입니다.

by 식빵이

외부 관계자와 통화를 해야 하는데 유난히 타이밍이 안 맞았다. 서로 답답한 상황이다. 우리보다도 그들 입장에서 중요한 건이라 공문을 보내면서 통화로 추가 설명을 해드려야겠다 싶었는데, 수차례 통화에 실패하여 메모를 남기고 또 엇갈리고. 그런 상황이었다.

그녀는 매우 바빴고, 감정적이었다. 더 상세하게 설명할 수도 있겠으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피로해질 수 있기에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겠다. 나와 그녀는 통화가 되고서도 실랑이를 벌였다.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나: 공문은 봤는가?

상대: 못 봤다. 오늘 내가 상담한 사람만 몇 명이냐면~~

나: 그럼 언제가 됐든 공문을 보고 다시 전화 달라.

상대: 아니 내가 앞으로도 몇 명을 상담해야 하냐면~~

나: ?? 뭐 어떡하기를 원하는 건지?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은 너무 바쁘다는 말을 반복했다(말할 시간에 공문을 보겠ㄷ..).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내가 왜 이렇게 언성을 높이는지 이해 못 하겠으며, 나와는 앞으로 통화도 메일도 주고받기 싫으니 할 말이 있으면 팩스로 보내라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더 이상 시간이 아까워 딱 잘라 알겠다고 했더니 갑자기 아니 그냥 지금 통화로 하자고 한다. 나는 이미 원하는 바를 전했고(당신이 공문 내용을 먼저 보고 다시 통화해야 더 효율적일 것 같다), 더 이상 통화를 해봐야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팩스 기계가 옆 사무실에 있다며(??) 끝내 직접 공문 보기를 거부하는 그녀에게 나는 결국 공문 내용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드렸고, 그제야 그녀는 확인하겠다며 전화를 끊어주었다. 어떤 건인지는 분명 처음부터 설명을 했는데, 정말 공문 내용을 낭독해 주길 원했던 걸까?

그러는 동안 내 책상에는 초콜릿과 과자들이 하나둘씩 쌓여갔다. 동료들의 위로의 표시였다. 통화를 끝내자 손이 떨렸다. 뭐? 할 말을 팩스로 보내라고?


조금 무서운 이야기 하나를 하자면 이 업계는 아주 좁다. 특히 그녀의 직종은 조금 더 좁은 축에 속했다. 그렇다 해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우리 업계의 친한 언니, 오빠, 나, 단 셋이 있는 대화방에 물어봤다. “혹시 000에 근무하는 000이라고 들어보신 분?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요. 제가 오늘 일이 좀 있었거든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오, 내 친구가 아는 사람인데 그냥 피하래. 옛날에도 굉장히 예민하기로 유명했다는데?”. 어찌나 좁은지. 한 시간이면 레퍼런스 체크가 가능하다!

얼마 후 상황 파악이 된 그녀는(즉, 우리는 급한 게 하나 없고 자신들에게 더 급하고 중요한 건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사근거리며 전화를 걸어 그때는 자신이 너무했다며 사과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나도 미안한 부분이 있었기에 사과했다. 그렇게 그만 마무리하지, 그 와중에 자기 회사 사람들 탓을 한다. 누가 말을 이상하게 해서, 그 팀 직원이 일처리가 느려서, 등등. “바쁘신데 고생이 많으시다” 했더니 본격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바쁘고 힘든지 털어놓는다. 나도 바쁜데 이 분 상담까지 해줘야 하나 싶었지만 그냥 들어줬다. 이 사람과의 통화는 이게 마지막이리라는 생각으로.


"여섯 다리 이론". 세상 누구와도 여섯 다리 이내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직접 한 번 시험해 보셔도 좋다.

예를 들어, 내가 이 이론을 처음 접한 스무 살에 빠져있던 한 가수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같은 해에 내가 통역 스태프로 참여했던 캠프에 멘토로 온 미국 대학생과 서로 페이스북 친구 사이였으며, 마치 절친 같은 분위기로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고작 한 다리였다.

이외에도 여섯 다리면 충분히 가능하겠다 싶은 수많은 예들이 있다. 이래서 약한 연결망을 무시할 수 없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조금 더 무서운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 업계만 좁은 게 아니라 애초에 이 세상이 아주 좁다. 어느 집단에선가 굉장히 예민하기로 유명하기까지 할 정도면, 이 사회 어디선가 그게 들통이 안 날 수가 없는 구조라는 거다.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나, 잘 살아온 걸까?

앞으로라도 더 잘 살아야지. 적어도 어디서 어떠하기로 유명할 정도로 살지는 말자. 누군가 나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손 떨려할 정도의 언행은 하지 말자. 그래도 그 정도면 괜찮은 축에 속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완벽한 사람은 없고, 사람 다 거기서 거긴 거 아는데, 적어도 너무하게 살지는 말자고 다짐해 본다. 부디 누군가의 여섯 다리 안에 내가 너무한 사람으로 걸쳐져 있지 않기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억이, 안 나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