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소마(2019), *스포 O
공포 영화는 좋아하는데 점프 스케어(Jump Scare: 깜짝 놀라게 하는 기법)는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만족스럽게 본 공포 영화가 잘 없는데, 우연히 유전(2018)을 보고 아리 애스터 감독의 기묘한 스타일에 끌려 미드소마를 보았다(참고로 유전에는 점프 스케어가 약간 있긴 했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분석할 재간은 없기도 하거니와, 내 글에서는 내용 자체보다는 남아있는 감상과 그로부터 뻗어나간 개인적인 생각들을 적어보고 싶다. 영화 리뷰로서는 다소 불친절할지라도 오히려 영화를 아직 안 본 분들에게는 '대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길래?' 하는 호기심을, 본 분들에게는 약간의 공감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영화에는 한 공동체가 등장한다. 하얗고 아름다워 보이는 공동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자신들 간의 유대와 공감은 중요시하면서 외부인의 생명은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그들의 이중성에 대한 혐오였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같았달까. 얼마나 뼛속까지 신념이 자리 잡고 있어야 타자와 자신들을 그토록 철저히 구분하고 마치 타자는 인간이 아닌 양 이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주목한 점, 그런 그들이 주인공과 함께 울어줬다.
얼핏 보면 감동적이다. 내 슬픔에 타인이 그렇게까지 동화되어 나와 한 몸으로 슬픔을 느끼는 것처럼 울어주다니. 살면서 그런 경험을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상담을 하기도 하는 사회복지사로서 특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슬픔에 동화되는 것은 과연 좋은 상담 기법일까? 주인공의 모습은 어때 보이는가? 솔직히 나야 워낙 염세적이기도 하고, 게다가 이미 그 장면이 나올 시점에서는 해당 공동체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기에 마치 한 유기체가 된 듯 통곡하는 그 모습조차 거북스럽기는 했다. 내 시각에서 그들은 그저 사람의 감정을 표면적으로 따라할 줄 아는 로봇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주인공의 시각에서는 어땠을까?
주인공은 너무나 큰 아픔을 지고 살면서도 제대로 위로받아본 적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유일하게 의지했던 애인은 어느덧 그녀를 버거워하고, 떼어놓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삶이 참 퍽퍽하다. 그런 사람에게는 어쩌면, 표면적일지언정,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지언정 그 위로가 달갑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짠했다. 여러 사람이 너무 슬프게 한 마음으로 대성통곡하는 모습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위로를 갈구했을 주인공이 그 속에서 온 마음을 열어 달갑게 그것을 욱여넣는 듯한 모습이 정말 짠했다.
그래서 모순적이게도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 공동체 진짜 싫고 나라면 절대 그러지 않겠는데, 주인공에게 그 이상의 좋은 선택이 있었을까 싶었다. 그녀는 편해 보였다. 하얗고도 알록달록한, 그녀의 존재를 힘껏 알아주는 그곳에서.
나는 눈물 많은 사회복지사로서 슬픔에 동화될 위험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상담 중 울지 않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곤 했다. 내가 겪어본 이상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에, 상상조차 못 해본 다양한 삶의 경험들을 접하다 보면 담백하게 소화해 내기엔 벅차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첫 사회생활에서 배운 점은 내 눈물이 자칫 동정으로 보일 수 있고, 그건 예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전문가의 태도가 동정으로 비친다면 내담자는 비참함을 느껴 오히려 상담을 원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슬픔에 동화되는 것은 좋은 상담 기법이 아니며, 사회복지실천 현장에서 섣부른 눈물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가까운 지인들과 있을 때에는 굳이 눈물을 참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친구가 마지막 줌바 수업에서 선생님과 작별 인사 나눈 이야기를 듣고 눈물 훔치다가, "내가 이래서 너 좋아해"라는 말을 들었다. 내 이야기를 나름 담담하게 하다가도, 어느덧 붉어져 있는 상대의 눈시울을 보며 되려 눈물이 터지기도 한다. 가끔은 조명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뿐인데도 "왜 네가 울어~" 하며 혼자 착각하고 눈물을 터뜨려서 민망할 때도 있다. 어찌 됐건 사적인 영역에서 내게 함께 울어주는 경험은 참 귀하다.
그래서인지 나의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은 함께 울어주는 장면이었지만 영화 '미드소마'는 이외에도 아주 다채로이 충격적인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처럼 '유전'이 마음에 들었다! 혹은 저세상 기괴함을 영상으로 체험해보고 싶다, 아니면 머리가 지끈거리더라도 여운이 강한 영화를 보고 싶다 하는 분들에게 이 영화를 강력히 추천한다.
*사진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8772262/mediaviewer/rm1179855105/?ref_=ext_shr_l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