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더스(2001), *스포 O
이 영화는 제목부터 절묘하다. 누구에게나 삶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은 자신이고, 그 외는 등장인물일 것이다. 좀 더 넓게는 내 가족, 친구들, 공동체가 주인공이고, 나머지는 "디 아더스"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가깝지 않은 다른 존재에 대해 처음 가지는 감정은 무엇일까? 낯설다는 것이 우리에게 와닿는 방식은 어떨까? 나의 경우 낯선 것은 두렵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 알지 못하여 어떤 상황에서 감정과 반응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낯선 존재와의 상호작용이 나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모르기에, 두렵다. 아무래도 내가 가장 잘 알 수 있는 건 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다 보니 여기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에서 벗어나 낯선 존재의 입장에서도 한 번 생각해 보게 된 경험이 떠올랐다.
나는 한 때 예전 집의 옆집 사람을 무서워한 적이 있다. 일단 처음으로 혼자 사는 것 자체가 무서웠는데, 거기에 더해 옆집에서 매일 밤 들리는 의문의 외침은 많은 날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주로 "~단 말이야!"라는 말의 반복이었는데, 정작 그에 대한 대답은 들리지 않고 그 문장만 반복되어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추측하기조차 어려웠다. '저 외침이 나를 향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또 생각보다 방음이 잘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우리 집에서도 최대한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냈다. 그러고도 불안하여 결국 후추 스프레이를 구입했다. 특히 늦은 시간 계단을 올라갈 때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던 터라, 주머니에 꼭 챙겨 넣고 다녔다.
어느 추운 겨울, 대학원에서 공동구매한 롱패딩을 입고, 한쪽 주머니 속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후추 스프레이를 쥐고 있었는데, 기어코 그 일이 일어났다. 함께 건물에 들어온 누군가가 내가 사는 층까지 계단을 따라 올라오는 것이다. 관련하여 나는 트라우마가 하나 있다. 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순간, 우리 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던 한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나를 그대로 따라와 우리 집 비밀번호를 누르려 할 때까지 내 뒤에 서서 쳐다보고 있었던 적이 있다. 비밀번호가 그대로 보일 위치였기에 나는 힐끔 보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으나, 그는 아무 반응 없이 그대로 서있기만 했다. 결국 문을 직접 열지 못하고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 안에 있던 동생이 문을 열어주면서 누구시냐며 그 사람과 눈까지 마주쳤다(그 정도로 내 바로 뒤에 서있었다). 경찰에 신고를 했었던, 아직도 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전에 나를 2초 정도 멈칫하게 만드는 무서운 기억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또,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 사람은 내 뒤가 아닌 옆에 섰다. 그렇게 옆집 사람을 처음으로 마주쳤다. 나는 반가움 반, 두려움 반으로 먼저 인사했다. "사회대신가 봐요?" 그가 말했다. 너무 놀란 나는 어떻게 아셨느냐 물어봤고 그는 "패딩에 적혀있길래요"라고 대답했다. 맞다. 우리 과 롱패딩 뒤에 그렇게 적혀있었다. "저는 미대 대학원생이에요" 그가 이야기했다. 어쩐지 한결 안심되는 마음으로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 하고 집에 들어와 문을 닫은 순간, 나는 내가 한 손에 후추 스프레이를 발사 직전의 모양으로 꺼내 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얘기를 들은 친구는 "그분이 너를 더 무서워하겠는데?"라고 말했다. 물론 어두워서 못 보셨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보셨다면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생각했다. 어느 날엔 그분의 작품이 복도에 하나 나와 있었는데, 미술을 전공하는 내 친구가 그걸 보고 함께 전시를 할 뻔한 적이 있다며 그분을 기억해 냈다. 그렇게 약간의 프로필 조사로 알게 된 바, 그분은 아무래도 연극 동아리 소속이었던 듯하다. 정확한 사실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매일 밤 반복되던 외침의 정체를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 이때와 비슷한 맥락에서 약간 웃음이 나왔다. '아이고, 누가 누구한테, 이것 참'. 반전이 너무나도 참신하고 깔끔한 공포영화였다. 글쎄, 공포영화라고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재미있는 반전 영화랄까? 이 정도면 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버린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직접 즐겨보시기를 추천한다. 중간중간 반전을 추측해 볼 수 있는 복선들을 찾아보며 여러 번 다시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겁이 많은 나는 낯선 존재로 인해 자주 깜짝 놀라지만, 어떤 때는 나도 누군가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나와 다르지만 두려움 많은 나약한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비슷할 수도 있는 낯선 존재. 이런 공통점이 언젠가 서로를 좀 더 가깝게 느끼게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 본다.
*사진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0230600/mediaviewer/rm3364899841/?ref_=ext_shr_l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