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수학뽀이

뷰티풀 마인드(2002), 스포O

by 식빵이

수학자. 그들은 내 삶에서 전혀 관심 가질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너는 수학이 발목을 잡는구나"라는 기대에 걸맞게 수능에서 언어, 외국어 100점을 받고도 기억나지도 않는 수학 점수로 인해 나의 선택의 폭은 증발했다. 수학과 관련하여 나는 솔직히 '이 쓸모없는 걸 왜 공부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우리의 수학뽀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친한 친구 그룹에 우리가 '수학뽀이'라 부르는 수학 박사가 있다. 이 친구는 내가 수학에 대해 가진 편견을 해소하는 데에 큰 몫을 해주었다. 여전히 직접 체험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 친구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수학이 누군가에겐 이렇게 '재미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고, 수학 문제 하나로 사람이 이렇게 고뇌하고 행복해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는 친절하게도 온갖 생소한 이론들을 설명해 줄 의지로 충만하지만, 이론 말고 그의 모습, 그가 보여준 열정이 수학이라는 학문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도 수학뽀이가 아니었다면 하등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학뽀이에게 매우 고맙다.


나는 이 영화가 정신질환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음을 알고 봤다. 그런데도 영화를 보면서 그 지점을 쉽게 발견하지 못했다. 굳이 추측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그만큼 몰입도가 높아 눈앞의 장면 외에 다른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것만이 확실"하다더니. 영화는 이 대사와 일치하면서도 딱 한 가지 면에서 이에 반했다. 바로 주인공 존이 마지막까지 기억할 단 한 사람, 그의 부인 엘리샤에 관해서는 말이다.


엘리샤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엘리샤는 존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어떤 갈등 상황을 해결한다. 그때 존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죠"라며 머쓱하게 넘어가는데, 영화가 끝날 무렵 이 장면이 둘 관계에 있어 큰 복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샤는 그녀답게 실로 다채로운 방법으로 존의 조현병 여정에 함께 하기 때문이다.


조현병이 있는 분들을 떠올리면 직간접적으로 들어본 망상과 환각의 예시들이 생각난다. 사실 그 굳은 믿음이 대체로는 감정적으로 내게 어떤 느낌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업무 할 때 개인적으로 그러한 망상과 얽히며 억울한 순간들은 있었다. 영화를 보고서는 그동안 내가 그분들이 느꼈을 억울함, 현실에 대한 배신감은 한 번도 고려해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역지사지는 이렇게나 어렵다. 그리고 이 영화가 조금이나마 그걸 하게 해 줬다는 점이 참 소중하다.


또 한 가지 나를 멍하게 한 것은 수학의 영향력이었다. 기초학문이 이렇게 대단한 것이었다니. 처음부터 나에게 누군가 수학이 왜 이렇게 중요한지 설명해 주고 그 위대함을 깨닫게 해 줬다면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그런다고 잘하게 됐을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그렇게 영화를 보는 내내 문제에 매달리는 주인공을 보며, 수학의 위대함을 깨달으며, 우리의 수학뽀이가 떠올랐다.


영화 리뷰를 먼저 마무리 짓자면 뷰티풀 마인드는 수학, 열정, 사랑과 같은 순수한 성질을 가진 것들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하다. 나처럼 수학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이 수학자의 영화 같은 생애에 감동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수학뽀이. 그는 내일 먼 나라로 연구를 위해 떠난다. 그는 내가 아는 수학자 중에 가장 웃기고, 사회적이다(내가 아는 수학자가 총 몇 명인지는 비밀로 해두자). 적재적소에 짤을 뿌릴 줄 알고, 대전에서 늘 우리가 있는 서울로 기꺼이 올라와 시간을 보내준 덕분에 모두가 더 끈끈하고 행복한 추억을 가질 수 있었다.


학교로 놀러 가면 거위와 오리의 차이를 설명해 주고, 커피도 사주고, 피아노까지 연주해 준(!) 수윗한 우리의 수학뽀이. 수의 세상을 넘어 인간의 세상과 마음, 관계에도 관심이 많은 만큼 많은 사람을 포용하고 헤아릴 줄 아는 메이플 고수. 앞으로도 그의 연구 생활과 그 외 모든 생활들이 평온하기를 기도한다.


한국에 있어도 화상 채팅을 소집하곤 하는 우리기에 이스라엘이라고 다를까 싶지만, 오프라인으로 자주 못 본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다음 화상 채팅에서 누나들은 맥주 한 캔, 혹은 투명한 컵에 물로 가장한 소주 가득 따라 들고 모일 때, 예전처럼 우유 한 컵 들고 짠 하고 나타날 모습을 기대한다.


잘 다녀와, 우리의 소중한 수학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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