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푸켓 1일 차, 나 이대로 잘 할 수 있을까?
6개월간의 여정을 함께 할 30킬로그램 가까이 되는 가방을 들고 낑낑거리며 좁은 계단을 힘들게 올라와, 복도에서도 가장 마지막인듯한 내 방의 문을 열자마자 그간 쌓여왔던 피로가 한 방에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정리하는 것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홍콩은 각종 유틸리티들을 신청할 때 일정 기금의 보증금을 내놓는데 전기회사, 수도회사, 인터넷 회사 등등에 전화하며 하나하나 이를 해약하고 보증금을 되돌려 받는 것부터 시작하여 (홍콩은 아직도 수표를 쓰는 문화가 있는 지라 이제 내가 홍콩을 떠나기에 다음 주소지가 없고 수표가 아닌 계좌 이체로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어필하는데만 최소 30분씩이 걸렸다. 진정 나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나름 미니멀리스트로 갖춰야 하는 것만 갖췄는데도 불구하고 팔아도 팔아도 끝이 없는 것 같았던 세간살이 정리 (막판에는 눈물을 머금고 다 버려버렸다. 그것도 내 돈을 주고!), 한국으로 부쳐야 할 짐들 틈틈이 우체국까지 이고 지고 가 부치기, 떠나기 전 지인들과의 만남, 나를 이어 내 일을 후임자에 대한 인수인계까지, 홍콩을 떠나기 전 두 달은 솔직히 거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 무언가 정말 미친 듯이 바빴다는 사실 이외에.
10평 남짓한 정도 사이즈의 푸켓에서의 내 첫 보금자리는 들어가자마자 방 한가운데 방 크기에 비해 다소 큰 듯한, 그래서 무언가 불균형적으로 보이기도 한 킹 사이즈 침대가 자리 잡은,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나름 깔끔하다 할 수 있는 방이었다. 좀 더 관심을 갖고 주위를 둘러보니 침대, 티브이, 오픈형 옷장, 그리고 작은 책상, 그래도 갖출 건 다 갖춘 소박하고 깨끗한 방이었다. 그간 은행에 다니며 출장을 다닐 때면 단 며칠을 가 있건, 몇 주를 가 있건, 늘 5성급 호텔에서만 머물렀었고 그 고급 호텔들 사이에서도 특히 나도 더 좋은 급의 호텔을 제공해주는 타 은행들을 보면서 우리는 왜 저 호텔이 출장 호텔 리스트에 없냐고 보스에게 컴플레인을 하곤 했었는데 이제 그런 생활도 안녕이구나, 소위 말하는 현타가 왔다. 그리고 이렇게 피곤한 가운데 그런 생각부터 드는 나 자신이 갑자기 너무 물질적이면서도 철없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고. 그래, 좋게 생각하자. 낫 배드(Not bad),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내 장기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가 된 푸켓, 푸켓과의 인연의 시작은 12년 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난 중국 어학연수 때 만난 스웨덴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스웨덴에서 이런저런 사업으로 꽤나 큰돈을 번 성공한 사업가셨다. 나중에 그에 대해 따로 글을 쓸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잠깐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의 부모님 집의 건너편에는 이케아(IKEA) 회장이 살고, 이웃들 중에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스웨덴 그룹 (ABBA)의 멤버가 살고, 각 나라 대사들의 집이나 은행가, 성공한 사업가들의 집들이 줄줄이 늘어선 스톡홀름 외각의 유명한 부유층 지역에 살 정도로 부유한 집의 자제였다. 실제로 그와 만날 때 그의 부모님 집에 한 달여간 머물며 요트를 타고 섬에 있는 성에 가 콘서트를 즐기기도 하고 (거기 오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요트를 소유하고 있는 지라 그 섬에 요트를 주차(!) 시키는 것만도 한참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그의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는 스웨덴 왕실 가족이 있기도 했고, 또 스웨덴의 유명한 셀렙들과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북유럽에서 가장 큰 보험 회사의 부사장으로 있다가 본인 사업을 시작을 하시면서 (그의 신상 보호를 위해 자세한 디테일은 적지 않겠다) 점점 더 승승장구하셨고, 이후에는 호텔/리조트 업계에도 손을 뻗어 스페인 말라가에 하나, 그리고 푸켓에 작은 규모의 고급 부티크 리조트 하나도 소유하시게 되었다. 그 당시 나와 내 남자 친구는 둘 다 (대)학생이었던지라 방학 때면 그의 아버지 찬스를 써 푸켓으로 쪼르르 날아가 아주 당당하게 짧게는 몇 주, 길게는 한 달 넘게 그곳에서 무전취식을 했고, 그 덕분에 당시만 해도 우리에게 신혼여행객들이 가이드 패키지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휴양지 정도였던 푸켓의 구석구석을 돌며 그 아름다운 매력이 폭 빠지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와는 4년 여의 인연 끝으로 연이 끊어졌지만, 그때 처음으로 느꼈던 이국적인 섬에서의 휴양에 대한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나는 그와 헤어진 이후로도 매년 푸켓으로 향했다. 때로는 당시의 연인과, 때로는 혼자서.
꼭 푸켓이 아니더라도 나는 종종 혼자서 여행을 하곤 했는데, 그렇게 이미 혼자서 미지의 곳을 탐험하고 즐기는 것이 익숙한 나였지만 왠지 첫 장기 여행의 시작은 내게 익숙한 곳에서부터 하고 싶었다. 도착하자마자 어딜 가야 하나 부리나케 검색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익숙하고 편한 곳. 파통(Patong)은 너무 관광객들로 들끓었다. 그의 아버지의 리조트가 위치해 자주 가던 수린(Surin) 비치 지역 또한 어느 순간부터 (주로 유럽 사람들에게) 핫 스팟으로 부상하며 관광객들이 꽤 몰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르고 골라 선택한 카말라(Kamala) 비치. 그리고 해변가 바로 앞에 위치한 나의 작은 호텔. 침대 옆으로 보이는 발코니는 전신 창으로 된 미닫이 문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고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막아줄 하늘하늘한 하얀 커튼이 깔끔이 드리워져있었다. 아침에 뜨는 태양이 꽤 강한지 양 사이드로 암막 커튼도 드리워져있었다. 에어컨 바람에 하늘하늘 넘실대는 커튼 뒤로 얼핏 카말라 해변의 에메랄드 빛 물결이 보였다. 바다라기보다는 호수에 가까울 정도로 파도가 잔잔한 해변. 풍경을 좀 더 깨끗이 보고 싶어 커튼을 열어젖혔다. 이왕 커튼을 연 김에 발코니 밖으로도 나가보았다. 예상외로 날은 그다지 덥지 않았고, 오히려 바닷바람에 시원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푸켓이 되었건 발리가 되었건 바닷가 근처는 뙤약볕을 그대로 쬐지 않는 한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하다는 느낌, 한 잠자고 나면 으슬으슬한 느낌마저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데 마천루 사이에 쳐 박혀 일만 해온 도시 쥐에게는 정말 놀랍고도 새로운 사실이었다.
조용한 해변에 갑자기 어디선가 떠돌이 개 한마디가 날아와 짖어댔다. 그러자 호텔 밑 레스토랑에서 저녁 장사 준비를 하던 직원들 중 하나가 뛰쳐나와 개에 대고 뭐라고 소리를 쳤다. 타박이라기보다는 귀찮게 하지 말라고 타이르는 듯한 친근한 목소리였다. 모르겠다, 타박이었을 수도. 하지만 이방인의 귀에 태국 사람들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항상 정답게 들리기만 했다. 태국 사람들은 싸울 때 목소리가 변하나? 싸울 때 나오는 공격적인 억양이 따로 있나? 내가 그런 걸 들어봤던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별 것 아닌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한참을 발코니에 멍하니 서 그 떠돌이 개와 레스토랑 직원을 관찰했다. 레스토랑 직원의 소리에 놀란 개는 뒤를 잠깐 돌아 꼬리를 살짝 흔들더니 곧 제 갈길을 찾아 총총 떠나갔다. 순간 구름에 살짝 가려있던 태양이 반짝 나와 내 눈을 강렬히 쏘았고,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눈을 살짝 찌푸렸다 뜨니 어느새 그 개는 사라지고 내 눈 앞에 눈이 시리도록 파란 에메랄드 물결이 가득 찼다. 그 앞으로 줄줄이 늘어선 야자수들은 균형이 맞는 듯 안 맞는 듯, 그러면서도 나름 열을 갖춘 대형으로 해변을 감싸 안았다. 홍콩에서도 늘 보던 야자수인데 확실히 도시의 고층건물 사이에 끼어 있는 말라비틀어진 그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좀 더 이국적이고, 조금 더 거친 야생의 느낌이랄까. 드디어 왔구나, 푸켓, 나의 파라다이스!
한참을 그렇게 멍하게 서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풍경에 반쯤 넋이 나간 듯 서 있다 보니 갑자기 졸음이 밀려왔다. 방으로 다시 들어와 발코니로 연결된 문을 꼭 닫고는 혹시 모르니 잠금 걸음 쇠도 단단히 잠갔다. 홍콩을 떠나기 전날까지 끊임없이 이어진 송별회로 밤을 꼬박 새우고 도착한 푸켓이었다. 이제 겨우 낮 1시 반. 홍콩이었다면 밤에 잠에 못 들까 걱정되어 낮에 아무리 졸음이 밀려와도 커피를 연거푸 마셔가며 낮잠 한 번 자지 않았지만 이젠 대수로울 것이 없었다. 어차피, 백수 아닌가! 그래도 먼저 씻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나도 모르게 깊이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온 세상이 깜깜해져 있었다. 몇 시쯤 되었을까라는 생각으로 무의식적으로 발코니 쪽을 돌아보자마자 난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발코니 쪽 창 밖으로 내 방 안의 불빛에 홀려 모여든, 족히 100마리는 넘어 보이는 나방이며 모기며 온갖 벌레들이 전신 창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내가 문을 안 닫았었더라면?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 암막 커튼이 단순히 태양을 막는 용도는 아니었구나, 섬살이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는 또 이렇게 하나를 배운다. 서둘러 커튼을 치고 시계를 보니 저녁 7시. 생각해보니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갑자기 참을 수 없을 만큼 허기가 밀려들어왔다. 순간 기내에서 받은 땅콩이 생각이 나 가방을 뒤져 황급히 봉지를 열어 땅콩 반주 먹을 입으로 털어 넣었다. 그게 뭐라고 급박한 허기가 가시자 다시 피로가 몰려왔다. 오늘 저녁은 건너뛰고 그냥 씻고 다시 잘까?라는 생각이 들 무렵 방문 너머로 나지막이 쿵작 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갑자기 그 노래에 나도 흥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 도착한 첫 날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지! 밖으로 나가보자!
정신을 차리고 들어간 욕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협소했다. 말도 안 되는 홍콩의 렌트에 이미 좁디좁은 집에 익숙해져 있는 나였지만, 그래도 레노베이션이 깔끔하게 된 아주 모던한 집에서 살다 온 나는, 마치 90년대의 어느 목욕탕을 연상시키는 타일이 아래위 할 것 없이 발라져 있는 욕실을 마주하고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뜨렸다. 이제 이 게 내 삶의 스탠다드 인건가? 어느 쪽으로 돌려야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인지 몰라 샤워기 앞에서 잠시 헤매다 결국 뜨거운 물을 틀고는 긴장이 조금 풀려 그 아래 하염없이 서 있었다. 그 간의 피로와 숙취가 뜨거운 물에 깨끗이 씻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 쏟아지는 물을 맞고 있다 머리를 감기 위해 자동적으로 어매니티를 찾아 두리번 버렸다. 내게 호텔의 어매니티라 함은 샴푸, 컨디셔너, 바디워시가 작고 귀여운 병에 아기자기하게 담겨 나란히 서 있는 형태인데 도저히 이들이 보이지 않아 한참 두리번거리다 내 눈이 다다른 곳에는 내 기대와 전혀 다른 어매니티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니, 덩그러니 있었다고 해야 맞나. 내 전에 머물렀던 여행자가 썼을, 그리고 지금은 내가 써야 할, 그리고 나 이후로 많은 여행자가 또 쓸, '샴푸'라 쓰인 큰 병 하나와 '샤워 소프'라 쓰인 병 하나. 도대체 컨디셔너는 어디에 있는 거지? 나중에 발견한 사실이지만, 동남아에서는 아주 특급 호텔들을 제외하고 컨디셔너(린스)를 제공하는 숙박시설은 별로 없었다. 온갖 생각들을 하며 욕실을 두리번거렸지만 어느 곳에도 컨디셔너는 없었다. 촌스럽기만 한 욕실 타일이 더더욱 촌스럽게 다가왔다. 윙윙 거리는 환풍기 소리도 갑자기 거슬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달려있을지 모를 샤워 커튼도, 좁디좁은 세면대도. 나, 정말 이런 데서 있어야 해?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순간 아직 짐도 하나도 안 풀었겠다 다시 가방을 끌고 나가 근처의 특급 호텔로 옮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아니야, 침착해야 해, 이제 겨우 첫날, 이제 그렇게 spoiled 하게 살아서는 안돼. 이제 직업도 없는 백수라고. 발가벗은 몸으로 물기를 뚝뚝 흘린 채 욕실과 트렁크를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를 안정시켰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가방에 싸가지고 온 내 컨디셔너가 생각이 났다. 뭐 정확히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는 아니었고, 유럽 출장을 다니며 쌓인 노하우였달까.
홍콩을 떠나기 전 마지막 직장은 유럽계 은행이었는데 일 년에 두 번 정도 유럽 본사로 출장을 떠날 일이 있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3주 정도. 그때가 머문 곳은 당연히 회사에서 해주는 빵빵한 5 스타 호텔들이었지만 어쩐지 욕실 어매니티들은 영 성에 안찼다. 특히나 헤어 컨디셔너가 그리했는데 유럽 사람들이 우리보다 머리카락이 얇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석회수 가득한 물에 적응이 안된 내 머리 때문에 그런지, 호텔에서 구비해 둔 컨디셔너를 쓰면 이건 쓴 것도 아니고 안 쓴 것도 아닌듯한 느낌이었다. 이걸 모르고 처음에 아무것도 안 챙겨 갔다가 일주일 뒤 출장에서 돌아와 자주 가는 단골 미용실 언니에게 도대체 유럽에서 머리에 무슨 짓을 하고 온 거냐는 타박을 크게 듣고 난 후로는 어디를 가던 내 헤어 컨디셔너는 꼭 내가 따로 들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또 하나는 슬리퍼. 유럽 여행을 많이 다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유럽의 호텔들은 5성급이라 할지언정 우리네 5성 급보다 시설이 많이 열악하다. 오래된 건물을 리노베이션 해 써야 하는 데 오는 것이겠지만 아무리 그걸 다 감안한다 하더라도 내가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건 카펫. 누가 봐도 족히 5년 이상은 간 적이 없을 것 같은, 여행자들이 밖에서 뭘 밟고 들어와 이걸 걸어 다녔을지 모를 카펫, 그리고 그 카펫의 상태와 정반대로 정말 얇디얇은 종잇장 같은 슬리퍼. 맨발로 다니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다지 청결에 유난 떠는 편도 아닌데, 한국이나, 홍콩이나 깨끗한 방바닥을 맨발로 생활하던 사람에게 그런 환경은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가 된다. 그 이후로 난 여행을 하건 출장을 가건 헤어 컨디셔너와 함께 바닥이 아주 두꺼운 푹신한 슬리퍼도 챙겨 다니기 시작했다. 나중에 이거 가지고 발리에서 만난 새 친구들이 나보고 princess(공주)라며 놀렸지만 나중에 결국 그들도 인정했다. 푹신하고 두꺼운 실내용 슬리퍼를 가져온 내 결정이 정말 신의 한 수라는 였다는 걸. 샤워를 하고 나와 모래가 가뜩 낀 플리플랍을 다시 신어봐야 안다. 인간은 역시, 경험을 통해 배우는 동물이다.
내가 정말 열렬히 좋아해 마다하지 않는, 그리고 줄기차게 열심히도 써 온, 호주 브랜드 Aesop(이솝)의 컨디셔너를 꺼내, 이런 이상한 데서 약간의 OCD(강박장애)가 있는 나는 사용 순서에 맞추어 샴푸와 바디 워시 사이에 이를 낑겨 두었다. 정말, 안 어울리는 조합. 지금의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아서 좀 재밌기도 하고 뭔가 웃프기도 하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순간 나도 모를 불안감이 다시 엄습했다. 나 이 여행,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애써 그런 마음을 다시 꾹꾹 누르고 샴푸를 듬뿍 짜 머리를 감고 이번엔 컨디셔너를 또 듬뿍 짜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정성스럽게 발랐다. 컨디셔너가 머리카락에 좀 스며들 동안 함께 캐리어에서 함께 꺼내 온 폼 클렌징을 쭉 짜서 얼굴도 꼼꼼하게 씻어내고.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수증기는 어느새 작은 욕실을 꽉 메웠다. 전혀 와 본 적 없는 낯선 곳, 낯선 환경, 불안한 마음 사이로 익숙한 향들이 은은히 퍼지기 시작하며 마음이 좀 안정되기 시작했다. 거품을 씻어 내며 샤워 타월을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화장솜을 가져왔나 기억을 더듬고, 나가기 전에 리셉션에 샤워 타월은 매일 갈아주는지 물어봐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어느새 짧고도 길었던 샤워가 끝났다. 깔끔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와 큼지막한 샤워 타월을 몸에 두르고, 작은 수건으로 머리를 둘러싸고, 푹신한 슬리퍼에 발을 끼워 넣었다. 수건으로 탁탁 머리를 말리며 침대에 다시 앉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씩 진정이 되는 기분이었다. 다시 둘러보니 이 정도 가격치고 방 청결상태도 아주 좋고, 침대보도 새 것인 양 빳빳하고, 은은히 퍼져 나오는 섬유유연제 냄새도 좋았다. 작은 호텔 답지 않게 헤어 드라이기도 구비되어 있고, 화장솜이나 면봉 같은 것도 정성스레 준비되어 있고.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어린애처럼 불평만 늘어놓은 것 같아 부끄러움에 얼굴이 발개졌다. 그래, everything will be alright, 결국에는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방 안에서 뭘 그리 꾸물대냐는 듯 호텔 밖 레스토랑에서는 노래가 더 크게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