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남는다는 말에 대한 대답

by 라일라


나는 새로운 책을 편집중이다. 그 과정에서 스무 명 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한 브랜드의 행사에 참여하며 만든 조형물을 기념집 수록용으로 직접 재촬영하도록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


사람들이 각자 만든 것과 유사한 형태의 어떤 것이든 찾아내고 그중 배치와 구도가 잘 된 것을 고르는 작업을 반복한다. 복잡한 세팅이나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오묘한 앵글은 모두 제외한다. 사람들은 그걸 따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걸 보고 아예 포기해 버리는 수가 있다.






그렇게 적당히 잘된 사진을 찾고 참고할 점을 메모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연락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중에 종종 함께 일하는 마케터 B가 회의를 위해 사무실에 왔다. 평소처럼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가 B의 어머니가 요리사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어머니는 몇 가지 한식 디저트를 만들어 직접 판매하시는데 사진을 찍는 게 언제나 가장 큰일이시란다.


B는 조명도 사드리고 이것저것 열심히 알려드리며 어떻게든 그의 어머니가 찍는 사진의 퀄리티를 높여보러 애썼지만, 결과적으로 잘 되지 않았고, 지금은 어머니가 이 사진 어떻느냐고 물으면 마음을 비우고 무조건 좋다고 대답하는 수순에 이르렀다고.


부모님 얘기는 곳곳에 지뢰가 묻혀 있는 평원과 같다. 고요해 보여도 방심했다간 자칫 다 날아가는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늘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적절하고 무난하게 대화를 마무리지을 말을 찾아 머릿속을 부지런히 뛰어다니도록 행동 지침을 정해두었다. 그런데 이번 만큼은 그런식으로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었다. 결코 대화를 지뢰밭으로 만들 리 없으면서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건 요리지 사진이 아니라서 그럴 거예요. 저도 그래요.


사진이 없는 게 아니라 있는 게 기본값인 세상에서 산다는 건 불편하거나 불쾌하진 않지만 언제나 약간 혼란스러운 일이다. 사진을 끝내 찍지 않더라도 찍어야 하나? 찍었어야 했나? 번뇌가 끊이지 않는다.


사진은 죄가 없다. 오히려 추앙받아야 한다. 사진과 영상이 넘치는 시대에도 백문이불여일견의 진리는 결코 퇴색하지 않으므로 대부분의 경우 이미지는 몹시 중요하고 사진이 공짜나 다름 없는 세상은 축복이다.


내가 하는 일만 해도 글만 갖고 온전하기가 어렵다. 나는 내가 아는 이중 제일 잘하는 포토그래퍼의 생일을 해마다 챙기고, 요즘처럼 필요할 땐 사진과 무관한 사람들이 생에 최고의 사진을 찍도록 어르고 달래며 조금이라도 나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 분투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래서 줏대가 필요하다. 절제와 침묵도 필요하다. 일단 찍어두면 다 쓸데가 있다고, 남는 건 사진이라고 말하며 덮어놓고 찍는 게 능사가 아니다. 멍하니 서 있는 사람을 툭툭치며 나무랄 일도 아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이 낱말을 늘어놓는 재주가 아니고 사고의 깊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상기했을 때, 우리가 사진을 가리켜 남는다고 말하는 건 빛과 산화의 결과로 얻은 물질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본 시각과 그것이 놓인 맥맥락이라는 사실에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면 글빚을 지게 되듯, 하나만 건지자는 마음으로 찍어댄 사진은 언젠가 청산해야 하는 빚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사진을 안 찍겠다는 게 아니고, 싫다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하기 전에 생각을 하듯, 촬영 버튼을 누르기 전에 조금 고민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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