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느의 집을 방문했던 때는 등나무(글리신느) 꽃이 만발했던 오월 초 싱그러운 봄날이었다. 연보라색 꽃이 핀 등나무가 오래된 2층 집의 벽면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벌들이 웅웅거렸다. 5월이었지만 집 앞쪽으로 멀리 바라다 보이는 알프스 산들은 아직 눈이 녹지 않아서 하얀 이마를 드러내고 있었고, 집 앞의 넓은 정원의 채소밭에는 갖가지 채소들이 봄기운을 타고 한창 무성해지고 있었다. 마르틴느의 집이 있는 마린니에(Marignier)라는 동네는 제네바에서 샤모니-몽블랑(Chamonix-Mont Blanc)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전형적인 알프스 마을이다. 잘 관리된 깨끗한 집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늘어서 있어서 한눈에 부자 마을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 내가 가고 싶어 했던 오뜨사부아(Haute Savoie)의 한 중심부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이 집에서 채소밭 가꾸는 일과 정원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을 하기로 했었다.
마르틴느의 집은 작은 샤또(Chateau, 성)로 불릴 만큼 큰 저택이다. 집 앞 정원만 해도 1천 평은 넘어 보였다. 300년이 넘는 오래된 석조건물이었지만 구석구석이 잘 관리되고 있었다. 반지하처럼 돼 있는 1층은 거의 모든 공간이 작업실과 창고로 사용되고 있었고, 2층은 두 가구가 살 수 있는 넓은 공간이었는데 이 중 절반을 이 부부가 사용하고 있었다. 3층은 세 가구로 나누어서 한 가구는 월세를 주고, 두 가구는 지뜨로 운영한다. 2층과 3층의 테라스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알프스의 풍경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마르틴느가 안내한 내 방은 그녀의 깔끔한 행동거지만큼이나 잘 정돈된 깨끗한 방이었다. 창문을 열면 멀찍한 거리에 이웃집을 두고 그 사이에 나무들로 둘러싸인 푸른 풀밭이 펼쳐져 있었다. 꽤 힘들었던 알린느네 집에서의 피로를 여기서 풀 수 있겠다 싶어 내심 안도했다. 마르틴느는 이 넓은 집에서 남편 쟝(Jean)과 둘이서 산다. 그녀는 집 앞으로 건너다 보이는 동네 마르나(Marnaz)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녀의 남편 쟝(Jean)은 마린니에 토박이이다. 알프스 이웃 동네의 처녀 총각이 만나 결혼한 것이다.
<지금까지 잘 관리되어 왔지만, 지붕을 다시 수리해야 하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마르틴느는 걱정했다.>
마르틴느는 단아한 외모의 엘리트였다.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였는데 얼마 전에 은퇴했으며 독일어에도 능통했다. 매사에 정확하고 빈틈이 없었으며 스스로에게는 엄격했지만,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관용과 자상함이 배어 있었고 품위 있는 매너를 잃지 않은 귀족적인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어떤 말,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주의깊게 듣고 관심을 가지려고 애썼고, 내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면 뭐든지 권하고 소개했다. 우리는 각자가 살고있는 서로 다른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과 각자의 삶에 대한 철학들에 대해서 진실한 얘기들로 깊이 있게 나누었다. 다행히 우리가 매우 비슷한 세계관과 성향을 가진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덕분에 머무는 동안 내내 인간적 신뢰감과 유대감을 쌓아갈 수 있었다. 남편 쟝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녀는 점심때 나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쟝과 공유하며 세 사람은 다시 서로의 생각들을 내놓고 토론을 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곤 했다. 중간중간에 일천한 나의 불어 표현을 세세하게 교정해 주었음은 물론이다.
쟝(Jean)은 지금도 고등학교에서 기계공학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이다. 매일 오전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집에 돌아와 해가 지기 전까지, 정원 관리부터 집수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집안일을 혼자서 한다. 그는 한마디로 만능 해결사다. 이 세상에서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일 것이라고 내가 농담을 건넬 정도였다. 가끔씩 나는 그를 ‘터미네이터’라고 불러주었다.
그들은 자급적 삶을 지향한다.
그래서 일상은 항상 바쁘다. 쟝은 아침 일찍 일어나 정원과 채소밭을 둘러보며 잔디를 깎고 땅을 일군다. 마르틴느네는 여덟 마리의 닭과 3마리의 거위를 키운다. 알을 얻기 위해서이다. 헛간 2층에는 벌통들이 줄지어 있다. 꿀을 얻기 위해서이다. 고기를 얻기 위해 토끼를 기르고 앞마당에는 양상추, 양파, 딸기, 아스파라거스, 아르티쇼, 감자, 토마토….. 온갖 채소들을 심었다. 마당 둘레에는 체리, 사과, 키위 등 과일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빵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식재료들을 직접 가꾸어 먹는다. 5월인데도 작년에 수확해서 저장해 둔 키위가 한 박스나 남아 있었다. 순이 많이 나 있기는 했지만, 감자도 작년에 수확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집 지하실에 생햄(하몽)을 만드는 설비를 갖추고 하몽을 직접 만든다. 겨울에는 매년 최상급 연어를 사 와서 1년 먹을 분량을 직접 훈제로 만든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멧돼지로 하몽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어느 날 쟝은 지하실로 나를 데려가 하몽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내게 상세히 설명해 주고 사용하는 설비들을 견학시켜 주었다. 훈제실은 쟝이 직접 설계해서 만들었다. 톱밥을 사용해서 연기를 피워야 하는데, 9일 동안 불길이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쟝의 이런 수완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자꾸 일을 부탁해서 쟝이 쉴 틈이 없다고 마르틴느는 불평했다.
또한 마당에서 딴 사과로 발효주를 만들어 일 년 내내 아뻬리티프로 마신다. 그 혼자만 알고 있는 특이한 알코올 발효법이라고 했다. 술통에 압력을 가해가느다란 튜브를 통과시키면서 잔에 분사하면 맥주처럼 하얀 거품이 나는데, 거품이 살아있는 동안에 다 마시기를 권했다. 그는 이 사과주를 ‘쉐브르’(염소)라고 이름 붙였다. 나는 이 음료가 정말 맛있어서 틈날 때마다 자주 따라 마셨는데, 약간의 문제를 가져왔다. 내가 알코올에 취약한 탓에 낮에도 얼굴이 벌게진 채 집안을 돌아다닌 것이다^^.
판자 등 목재가 필요하면 산에서 직접 베어온 나무로 판자를 켜고, 목재를 다듬어 온 집을 다 수리한다. 알프스 고산지대에는 싸뺑(Sapin, 전나무)이 많이 자라고 있는데 근래에 들어서면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벌겋게 죽어가는 나무들이 많다. 죽은 나무들은 주민들이 베어내도 된다고 한다. 마르틴느네 집 바로 앞에는 쟝의 친형 죠르쥬 내외가 살고 있는데 그 집도 형제가 직접 지었다. 건축 자재를 사다가 지은 것이 아니라,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지었다.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어느날 판자가 필요하다며 따라가자더니, 판자를 사러 가는 게 아니라 나무를 베러 갔다. 형제 둘이서 저 큰 나무를 잘라서 싣고 집으로 옮겼다. 나는 이 일에 공헌할 게 없었다.>
<목재로 쓸 나무를 직접 베어 싣는 형제 쟝과 죠르쥬>
산을 내려오는 길에 난방용 땔나무도 가득 실었다.
부부는 또한 자연 생태적 삶을 지향한다.
그녀와 남편 장은 모두 녹색당 당원이다. 자연에 유해한 모든 것을 반대한다. 고향인 만큼 오뜨사부아에 대해 애착이 대단하다. 특히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자연을 훼손하는 모든 건설계획에 대해 지역 주민들과 합세하여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여한다. 지역 환경 문제를 다루는 동네 모임에도 빠짐없이 참여하고, 재정적 지원을 위해 바자회를 열며 홍보 영화를 제작한다.
그 큰 집의 난방 시스템은 화석연료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도록 쟝이 직접 설계했다. 버려지는 목재 쓰레기들을 모아서 파쇄, 운반, 연소, 정화까지 모든 과정이 자동으로 진행되도록 장이 직접 설계해서 시설을 갖췄다. 어느 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남은 나무 손잡이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더니, 마르틴느가 그것을 다시 주워 왔다. 나무로 된 모든 것은 연료로 재활용한다. 한 번은 한국 음식파티를 하자고 해서, 불고기를 만들 생각으로 내가 마트에서 고기를 사 왔더니, 마르틴느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티로폼과 비닐로 포장된 고기를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직접 잘라 파는 푸줏간에서 고기를 사 오면 비닐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빵가게에서 버려지는 오래된 빵을 얻어다 닭을 키우고, 정원의 잡초와 초지의 풀을 직접 말려서 토끼를 기른다. 꽤 넓은 채소밭을 가꾸고 있지만 농약이나 비료는 아예 집안에서 구경할 수도 없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지역의 생태환경 변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관람하고 밤늦게까지 토론했다.>
<목공 작업실, 모든 것을 손수 만든다. DIY(Do It Yourself)!>
<지하실 창고에는 모든 공구가 있다. 만물상이다.>
<죠르주가 쓰는 프랑스 쟁기, 나는 가볍고 간편한 우리나라 쟁기가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고민은 있다.
마린니에(Marignier)는 제네바로부터 자동차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마을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에 살면서 스위스의 대도시인 제네바로 출퇴근을 한다. 어떤 한 나라에서 거주하면서 인접 나라에서 일을 하는, 이른바 프롱탈리에(Frontalier)들이다. 스위스의 임금 수준은 프랑스의 두세 배가량이 된다. 더불어 물가 또한 비싸기 때문에, 돈은 스위스에서 벌고 생활은 프랑스에서 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이로 인해 스위스 국경과 가까운 마린니에 같은 동네는 집값도 땅값도 프랑스의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비쌀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알프스에 속해 있으니 주변 환경도 나무랄 데가 없다. 마르틴느네는 저택도 훌륭하지만 땅부자이기도 하다. 양가는 할아버지 때부터 목축업을 해 왔기 때문에 넓은 목장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을 상속받았다.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고 일부는 개발제한구역에 편입되어 있지만 여전히 근처 여기저기 땅을 가지고 있는 부자이다. 그런데 마르틴느와 쟝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어느 날 같이 등산을 하다 산을 내려오면서 마르틴느는 그녀의 유일한 고민을 내게 털어놓았다. 아들이 둘 있는데, 둘 다 도회지로 나가서 돌아올 생각이 없다. 마르세이유에 사는 큰 아들이 도무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직장도 여자친구도 수시로 바뀌며 경제관념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큰아들은 아버지인 쟝(Jean)이 너무 일을 많이 한다며 자기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단다. 마르틴느는 아들이 돌아와서 집과 땅을 관리하고 살기를 바라지만, 젊은 아들은 따분하고 일만 많은 시골 생활을 싫어한다. 마르틴느는 고민이 깊었는지 어쩌면 좋겠느냐고 내게 물었지만, 지혜와 경험이 보잘것 없는 나로서는, 시간이 가면 달라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무익한 얘기 외에 뾰족한 해법을 제시할 수 없었다. 마르틴느는 그 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며 긴 한숨을 쉬었다.
이들 부부의 일과 휴식을 들여다보자.
어려서부터 근면함과 성실함이 몸에 밴 이 알프스 토박이 부부는 자기들이 가진 것과 상관없이, 일해야 할 시간에는 언제나 부지런히 일했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은 명확하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일이 자체가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초점이다.
부부는 아무리 일상이 바빠쁘더라도 쉼을 양보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었다. 일하기 위해서 쉬는 것이 아니라 쉬기 위해 일한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첫번째 우선 순위가 휴가 계획이다. 휴가를 먼저 계획하고 나머지 시간들을 짜 맞춘다. 그렇게 하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다고 마르틴느가 말했다. 일이 우선이고 쉼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게 마련인 우리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자전거 여행, 등산계획, 스키계획, 해외 나들이 계획 등 여행일정을 일 년 전부터 짠다. 마르틴느는 내가 일하는 게 맘에 들었는지, 내년에 3개월간 해외여행을 할 참인데, 그때 와서 집과 채소밭을 관리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여름휴가는 피레네에서 보낼 것이며, 내년의 여름휴가도 어디서 보낼 것인지 벌써 다 정해져 있었다.
내가 이 집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마르틴느 부부는 친구 부부와 함께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이 계획은 내가 프랑스에 오기 전에 이미 마르틴느가 내게 메일로 얘기했던 바이다. 나는 덕분에 3박 4일을 집주인이 되어 혼자 일하며 조용히 지낼 수 있어서 좋았다. 다른 건 몰라도 그들의 휴가 계획은 변경할 수 없는 모양이다. 잠시 들른 외국인에게 이 큰 집을 다 맡기고서 자전거를 싣고 여행을 떠났다. 30개가 넘는 열쇠 꾸러미가 내게 맡겨졌다.
<마르틴느가 자전거 여행 중에 사진을 보내왔다. 여우가 닭을 해치지 못하도록, 해가 지거든 반드시 닭장 문을 잘 잠그라는 당부와 함께.>
혼자 집을 지키던 날,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필자. 여행을 준비하며 내가 머릿속에 그리고 기대했던 장면이 그대로 이루어진 순간이다.
마르틴느네 테라스 뷰
나는 여기서 그동안 내가 그토록 갈망해 왔던 쉼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다.
프랑스의 법정 노동 시간은 주 35시간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한국의 노동시간이 주 52시간이라는 나의 말을 잘 믿으려 들지 않았다. 내가 과장해서 얘기하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 노동자들이 어떻게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 그럼 언제 쉬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들 중에서조차, 노동시간을 늘리려하는정치세력에 표를 주는 사람이 많다는사실을 그들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죽어라고 일해야만 하는 이유를 수없이 들으며 살아왔다.
<자원이 일천한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기 살기로 일하는 수밖에 없다!> <경쟁의 세계에서 한 번 낙오하면 영원한 낙오자가 된다>……
그동안 우리를 겁박해 온 이 천박한 경쟁논리는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오늘도 노동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을 위한 노동이고 무엇을 위한 경쟁인지를! 잘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국민 소득이 높아져서 더 행복한 사회가 되었는가? 그래서 자살률 1위의 국가를 만들었는가?
나는 30년을 직장에 다니면서 일주일의 여름휴가 한 번 맘 편히 다녀오지 못했다. 단 한번, 회사에서 잘려도 좋으니, 아이들이 어릴 때 함께 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으로 2주간의 유럽여행을 감행했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일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짧은 Woofing 기간 동안, 마르틴느 내외는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나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자급의 삶을 지향하면서 최소한의 소비로써 간소하고 소박하게 사는 삶, 겸허한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 하며 연대하는 삶, 타인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삶,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죽도록 일하며 경쟁만 하다가 마침내 늙어 죽게 되는 삶, 점점 더 일을 많이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삶, 옛날보다 더 벌어도 더 불안하고 팍팍한 삶, 누구도 믿지 못하며 각자도생을 획책하는 삶, 그리고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 사회가 가고 있는 방향의 삶, 그런 삶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만을 알고 목소리를 높이는 광기에 찬 무서운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오늘도 그들은 더 많은 시간을 일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라며 능력주의와 무한경쟁을 거리낌 없이 부르짖는다. 그것만이 살 길이라고.
진정 그것만이 살 길인가? 우리의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세상이란 것이 피 튀기는 경쟁사회여야 한다는 말인가? 패배하지 않기 위해 행복을 반납하고, 지켜내기 위해서 영혼을 지불해야 하는 이불나방 같은 사회의 최종 목적지는 도대체 어디일까?
그것이 현실이고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밖에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에 돌아온 후로 마르틴느가 사진을 보내왔다. 내계 설명했던 계획대로 그들 부부는 올여름 한 달을 피레네에서 보냈다고 한다. 산이 높아서 여름인데도 파카를 입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