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3월 하순부터 부르고뉴의 테제에서 시작한 WWOOF 일정은 오뜨사부아의 지에뜨에서 끝났다. 시종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 기억들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고, 앞으로의 인생 여정 동안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나를 행복하게 할 것임이 틀림없다. 쉽게 얻을 수 없는 자양분을 비축한 셈이다.
이제는 일하지도 않고 자유롭게 여행만 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3개월간의 무비자 여행기간 말미에 며칠간의 아내와 여행을 계획해 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WWOOF를 하는 동안 틈틈이 남프랑스를 둘러볼 계획을 세웠다. 자동차를 렌트해야 했고 일정에 따라 숙소들을 예약해야 했다.
마지막 호스트였던 까트린느 집에서, 그동안 거쳐 온 호스트들에게 나의 Woofing이 이제 곧 끝날 것이며, 아내와 짧은 여행을 하고 한국에 돌아갈 것이라고 알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모두 입을 모은 듯한 같은 내용의 답장이 호스트들로부터 쇄도했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아내와 함께 꼭 다시 들렀다 가라는 얘기였다. 나는 크게 감동을 받았다. 이 머나먼 땅에서, 나를 환영하고 초청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이곳의 의례적인 문화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것을 까트린느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까트린느는 그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집에 초청을 한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빈말로 하는 것은 아니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단언했다. 나는 난감했다. 초청해 준 호스트들을 다 들르기에는 시간이 너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까드린느의 조언 대로 여행 일정을 이유로 정중하게 사양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문 일정과 프로그램까지 제시해 준 마르틴느와 에르베의 집은 방문하기로 했다. 멀지도 않은 거리였다. 남프랑스 여행 일정은 다시 조정되었다.
마르틴느네 집에 가는 길에 들렀던 Annecy 호수
Annecy 호수와 Mont Baron
마르틴느 집에 있던 어느날 오후 혼자 둘러보았던 Annecy 시가지
리용까지 혼자 와준 아내와 함께 리용과 안시를 돌아보며 하루를 묵은 뒤, 우리는 마르틴느네 집을 방문했다. 이제 Woofer의 자격이 아니라 초대받은 손님으로서 방문한 것이다. 때는 유월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 사이에 집 벽면을 우아하게 수놓았던 등나무 꽃은 남김없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내가 풀을 뽑던 채소밭에는 어느새 양상추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딸기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터미네이터 쟝은 여전히 정원에서 일을 하는 중이었다. 내 뒤를 이어 이 집에 온 Woofer 아민느가 나를 알고 있다는 듯이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내가 써 놓은 후기를 보고 마르틴느네 집에 오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다가스카르 섬 옆에 있는 프랑스 해외령(DOM-TOM)인 레위니옹(Reunion) 출신인데, 얼마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사직을 당해 여행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옆에 있던 마르틴느는 내가 쓴 후기 때문에 앞으로 Woofer들에게 무조건 잘 대해줘야 하는 숙제가 생겼는데 어떻할거냐고 농담을 했다.
우리 내외와 마르틴느 부부는 해가 채 지기도 전에 마르틴느가 정성껏 준비해 놓은 저녁 식사를 하고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마르틴느는 아내가 이틀 전에 긴 비행을 했다는 걸 감안해서 저녁 식사시간을 앞당겨 조절할 만큼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이다. 더욱이 우리는 다음날 아침 일찍 등산을 가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 다행히 내일은 날씨가 좋다고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알프스 등산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일러두고 싶은 얘기가 있다. 등산을 할 때는 날씨가 좋다는 날이라 할지라도 일찍 산에 오르는 게 좋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알프스에서는 특히 그렇다. 오전에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씨였다가도 오후에 갑자기 세찬 소나기를 퍼붓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이렇게 날씨가 급변하기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수 있다. 만용이나 한국에서의 상식은 버려야 한다. 한국에서와는 달리, 장비를 갖춘 등산 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정상을 목표로 산을 오르기가 어렵다. 웬만한 산들은 2,000 미터가 훨씬 넘고, 6월이라고 하더라도 일정 구간부터는 눈 위를 걸어야 한다. 만약 기상이 악화되어 눈비구름에 휩싸이게 되면, 사방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공포에 휩싸일 수 있고, 어설프게 움직였다가는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구름에 갇힌 채 눈 위에서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예보되면 등산을 아예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주일간 알프스 지역에 머문다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등산할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도 없을 수가 있다. 또한 이런 고산지대에서 산행할 때는 노련한 가이드와 함께 가는 것이 좋다. 만일의 경우,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에게만 부과된다. ‘자연은 자신을 과신하는 사람들을 징계한다!’. 등산로 입구에는 흔히 이런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하면 된다', '될 때까지 한다'는 구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성취욕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조금만 더 올라가보자는 욕심이나, 기어이 정상에 태극기를 꽂아 놓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투지는 곤란하다. 알프스 눈 속에 뼈를 묻겠다면 몰라도.
다음날 7시 30분, 각자가 알아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해결한 다음, 우리는 마르틴느의 차를 타고 식스트(Sixt)를 향했다. 마르틴느, 마르틴느의 시아주버님인 죠르쥬, Woofer 아민느, 우리 내외, 모두 다섯 명이었다.
식스트(Sixt)는 말발굽 서커스(Cirque du Fer a Cheval)라는 유명한 산악지형이 있는 지명인데, 마르틴느는 이곳을 매우 좋아했고, 꼭 가보아야 할 곳이라며 예전에도 내게 여러 번 말했던 곳이다. 마르틴느는 이 지역 토박이답게 완벽한 가이드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우리 내외의 등산 속도와 체력, 날씨의 변화 등에 따른 플랜 B가 몇 가지 계획되어 있었고, 하산 후의 일정까지 빈틈없이 마련돼 있었다.
말발굽 서커스는 정말 대단한 장관이었다! 이곳은 얼마 전 어떤 잡지에 프랑스의 등산 코스 1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고 아민느가 귀띔해 주었다. 과연 말발굽모양의 높고 장엄한 산줄기가 시야를 압도했다. 산에 오르며 나는 이 지형이름 앞에 왜 서커스라는 단어가 붙었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불어로서커스란 원형경기장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그네 곡예장을 연상해도 좋을것 같았다. 산 위에서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하얀 폭포들이 마치 서커스장 천정에서 내려오는 그네줄처럼 갈래갈래 메어 있는 듯했다. 마르틴느는 단계마다 동반자들의 컨디션을 점검했다. 다행히도 우리는 그 현란한 경치를 감상하느라 마르틴느가 설정해 놓은 3단계 목표지점까지 힘든 줄 모르고 걸어 올랐다. 코스 단계마다 전망과 등산 난이도가 색다르게 펼쳐졌다. 산 밑에는 형형색색의 예쁜 꽃들이 밤하늘의 별들처럼 들판에 흩어져 있었고, 2단계에 접어들자 우리는 아직 녹지 않은 눈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가끔씩 나타났다가 자취를 감추는 산양들과 마흐모뜨(marmotte)는 우리를 더욱 즐겁게 했다.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는 산들이 그동안 때론 힘들었던 나의 Woofing을 격려해 주는 것 같았다. 등산에 익숙지 않았던 아내도 황홀한 장관 덕분에 데니블레(Dénivelé, 시작점과 고점 차이) 1.200 미터의 만만찮은 높이의 등산코스를 거뜬히 올라갔다. 우리 목적지의 최종 고도는 2400m였다. 말발굽 서커스(Le Cirque du Fer-à-Cheval)! 알프스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저 없이 추천하고 싶은 멋진 등산코스이다.
맑은 날씨, 힘찬 출발!
1단계 목표지점, Chalet du Boret. 마르틴느는 전직 교수답게 학생들을 인솔하 듯 우리를 세심하게 안내했다.
아침에는 대개 날씨가 청명하다. 2단계 구간에서
야생에서 자연 서식하는 산양들
2단계 목표지점, Refuge de la Vogealle. 눈이 빠르게 녹고 있었다.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인 보잘 호수(Lac de la Vogealle). 호수가 아직 눈에 덮여있어서 멋진 수면 거울을 보여주진 못했다.
아민느의 냉수욕^^. 발을 담그면 일분을 버티기도 어렵다.
설령 체력이 좀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정상을 올라보겠다는 욕심은 자제해야 한다.
6월이지만 여전히 눈이 두텁게 남아 있다. 눈이 덮여 있더라도 마르틴느는 등산로들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산길
하산길
Cirque du Fer a Cheval의 위용
오전에 그렇게 쾌청하던 날씨가 오후들어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산 정상쪽이 순식간에 구름에 뒤덮였다. 하산을 마쳤을 때는 결국 비가 왔다.
말발굽 서커스의 폭포들
Panorama depuis le Lac Vogealle
어느날 마르틴느와 둘이서 산에 오르다가 마주친 안개. 이처럼 안개만으로도 시야가 흐려져서 자기 위치 파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3일째 되는 날 아침, 정들었던 집안 정원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나서 마르틴느의 집을 나섰다. 마르틴느 부부와 작별 인사는 장황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내가 다시 오리라 믿었고, 나는 그곳에 다시 가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혹여 다시 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 이 나그네에게 그들은 온 마음을 다해 환대해 주었다. 필시 그들 또한 나만큼 행복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베풂과 나눔의 원리를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네바를 향해 40여 분을 달렸다. 레만호 호숫가에 자리를 펴고 돛단배가 가득한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오전 시간을 다 보냈고, 가져온 점심을 먹은 후 느즈막이 슈비네를 향했다. 바쁠 것 없고 힘들 일 없는 나의 여행 방식이다. 천성이 게으르고 느리다고 비난받기 일쑤였지만, 여행을 함에 있어서도 나는 꼭 ‘쉼’이라는 부가적인 목적을 추가했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나는 아침 일찍 출발하기 위해서 식사를 거르거나 서둘러 대충 먹는 일이 거의 없다.
오래전부터 정리된 나의 여행 원칙 중의 하나는 절대로 시간에 쫓기는 여행, 몸이 피곤한 여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행을 과업처럼 수행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여러 곳을 둘러보는데 욕심을 내지 않는다. 화려하고 웅장한 수많은 성당 건물들이 나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한다. 루브르에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여다본 모나리자는 나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많은 작품들을 쌓아 놓은 루브르에서보다, 허름한 시골 마을 바르비종에서 밀레를 생각하며 보냈던 한나절 시간이 훨씬 더 행복했다. 내게 미술을 감상할 능력이 일천한 까닭인지 모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탓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성취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나의 감정을 위로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태오와 반 고흐가 주고받은 편지들조차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아를르라는 도시가 어떤 감동을 줄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오래전에 파리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먼 거리를 비행기로 날아와서, 시차도 적응이 안 된 상태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주히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대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마치 얼마나 여러 군데를 가보았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온 사람들 같았고, 정작 여행은 집에 돌아가서 사진을 보며 즐기려는 사람들 같았다. 나에게는 그런 전투력이 없다.
에비앙 쪽에서 바라본 레만호(Le Lac Leman)의 풍경
해 질 무렵에, 우리는 슈비네의 에르베의 집에 도착했다.
에르베는 여느 때처럼 잔잔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4월 초, 하얗게 피어 있던 체리 꽃 대신에 나무마다 빨갛게 체리가 무르익고 있었다. 유월인지라 아래 마당으로 내려가는 돌계단 옆에는 분홍색 장미가 탐스럽게 피었다. 에르베는 지난번 내가 쓰던 딸의 방 대신에 손님에게 주는 깨끗한 방을 내주었다. 딸 엠마의 방은 Workawayer로서 나를 뒤이어 온 실비(Sylvie)가 쓰고 있었다. 실비는 연극배우로서 성격이 쾌활했고 이지적인 외모에 가식이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50대 초반으로 툴루즈에서 산다는 그녀는 Workaway 호스트이기도 했다. 이렇게 호스트가 다른 호스트의 집을 찾아 Workawayer나 Woofer가 되기도 한다. 삶을 나누고 공유하는 데 있어서는 경계가 없다. 실비는 여기서 3개월을 머물 예정이란다.
나는 마치 오랜만에 고향 집에 온 사람처럼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 우리는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뜨사부아산 Reblochon과 와인을 가져갔다. 장미 향기가 가득한 윗마당의 올리브 나무 아래에 차려진 야외 식탁에서 우리의 향연은 샴페인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날 밤은 길에서 만난 나그네들의 조촐한 축제였다. 실비도 아내도 다들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격의 없는 대화와 농담으로 웃음꽃이 가득했다. 아내는 하회탈을 에르베에게 선물했다. 에르베는 동양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아내에게 탈을 하나 사 오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실비는 연극배우답게 즉석에서 탈을 쓰고 탈춤 흉내를 내며 흥을 돋웠다. 우리가 마음을 열면, 우리의 삶은 어디에서든지 이렇게 풍요로운 시간들로 채워질 수 있지 않을까.
"이반, 사람들이 가면을 쓰게 되면 이전과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거 알아?" 와인을 마시면서 실비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들이 가면을 썼을 때,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모른다고 생각할 때, 그때 보이는 행동이 그 사람의 참된 모습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여행하면서 가끔 꺼내 읽던 책 <인간의 가면과 실제>에도 유사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실비는 자기 직업을 통해서 그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인간의 가면에 대한 이야기를 한동안 더 나누었고, 오뜨사부아에서 WWOOF를 하는 동안 내가 잠시 구상해 보았던 생각 즉, ‘알프스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한국 사람들이 알프스의 자연 속에서 쉼과 여가를 맛보도록 해보자는 구상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었다. 에르베와 실비는 엄지를 치켜들며 적극 돕겠노라고 맹세를 했다. 올리브나무 아래서 베풀어진 우리들의 향연은 밤이 깊어서야 끝이 났다.
다음날 아침, 에르베네 집에서 동네 사람들의 요가와 명상 모임이 있었다. 나와 아내는 에르베와 함께 이 훈련에 참여했다. 우리는 에르베의 농장 어귀에 있는 야외 숲속에서, 작은 시냇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다음 여정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렇게하여 프랑스에서 있었던 WWOOF 여정은 뒷마무리까지 종료되었다. 나는 더없이 홀가분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남프랑스를 향해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