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자동차 렌트 하기
해외여행을 하면서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다녀보고 싶을 때, 자동차가 있다면 걱정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무엇보다도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는 수고에서 해방되니까요. 또 도심에서 떨어진 시골에 들어가서 잘 수 있어서 숙박비용도 그만큼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행동반경을 넓히고, 여행에 소요되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비용과 안전이죠. 여기서는 유럽을 여행할 때 자동차를 렌트하는 방법에 대해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자동차를 마련하는 방법에는 우선 렌트와 리스가 있겠고요, 장기 체류할 목적이라면 중고차를 구입해서 타다가 돌아올 때 팔고 오면 되는데, 그건 현지 체류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어서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또 얼마든지 비용을 지불할 수 있어서 가능한 한 좋은 차를 타고 싶다는 분들에게는 이 글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가능한 한 저렴한 비용으로 렌트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렌트 방법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크기의 자동차를 빌릴까?
유럽의 자동차들은 비교적 한국의 자동차들보다 크기가 작다는 것은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중역들에게 현대의 ‘Morning’과 비슷한 크기의 ‘Renault 5’를 내어 주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대개 프랑스에서 자동차는 ‘탈 것’이지 남에게 ‘내보일 것’이 아닙니다. (물론 크고 값비싼 차를 타고 으스대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래서 렌터카는 더더욱 소형차가 인기가 많습니다. 경비를 줄이고 싶으신 생각이 있으시다면, 4인 이상이 아닌 한 주저 말고 소형차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렌트비, 보험료, 유류비용 등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습니다. 기름값이 리터당 약 2,800원(2023년 6월 현재)으로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는 점, 큰 차인 경우 도시에서는 주차가 불편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하셔야 합니다. 차가 크면 그만큼 안전하다는 미신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모든 자동차는 도로 위에서 안전하지 않으니까요.
어떤 자동차 회사의 차를 렌트할까?
벤츠, BMW, 푸조, 폭스바겐, 도요타…어떤 차를 몰아볼까?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자동차 마크에 민감한 사람들도 드문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한 번 벤츠를 몰고 다니고 싶다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독일 차들은 렌트비가 비쌉니다. 벤츠를 몰고 여행한다고 해서 지위 높은 사람으로 알아준다거나 처우가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유럽은 자동차로써 자신을 자랑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임이 분명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에도 낡고 찌그러진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많아져야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렌터카는 주행거리 1만 킬로미터 미만의 새 차가 제공됩니다. 렌터카 회사는 항상 고객에게 새 차를 제공하기 위해, 차가 일정 주행거리를 넘어서면 중고차로 내다 팔고 새 차를 확보한다고 하더군요. 따라서, 렌트비가 싼 차면 지저분하거나 낡은 차일 수 있다는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비용을 줄이고 싶다면 어떤 차를 선택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나고 보면, 여행에 있어서는 자동차 제조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렌터카 회사에서 빌려야 할까?
Avis, Herts, Europcar, Sixt, Budget, Alamo……. 렌터카 회사는 너무 많아서 어떤 회사에서 렌트를 해야 할지 고민스러울 때가 있죠. 그들의 우열을 비교하기 어렵고, 지역에 따라서, 때에 따라서 가격과 조건들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남프랑스에서는 A라는 지역회사가 더 강하고, B라는 회사는 공항에서 렌트할 때 경쟁력이 있으며, C라는 회사는 장기 렌트시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회사마다 전략이 다르고 상품도 다른 거지요. 더욱이 Booking.com, Skyscanner 등 마케팅 사이트들은 친절하게도 가격비교까지 해주면서 우리의 선택을 더욱 교란합니다. Hotels.com 이 호텔을 운영하지 않듯이 이들은 사실 렌터카 회사들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의 선택 기준을 먼저 정한 후에 그들의 제안을 내가 심사하면 되는 것이죠. 동선을 어떻게 계획하며 어느 도시에서 렌트할 것인가? 저렴한 가격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 아니면 비싸더라도 완전보험에 중점을 둘 것인가 등.
그럼 몇 가지 주요한 기준 들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합니다.
렌트비용과 관련된 팩터는 크게 픽업과 반납장소가 같으냐 다르냐, 트랜스미션이 수동이냐 오토냐, 보험조건이 어떻게 설정됐느냐, 주행거리 제한이 있느냐 등입니다.
1) 픽업장소와 반납장소
여행을 하다 보면 시작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서 차를 반납하기가 곤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렌트한 곳과 반납할 곳이 다를 때는 그 거리에 따른 반송비용을 감수해야 합니다. 같은 곳에 반납할 때보다 거의 두 배가 더 드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크푸르트에서 렌트하여 파리에서 반납하는 경우) 저렴한 여행을 위해서라면 여행 일정계획을 세울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겠지요. 반납 때문에 열차로 한 번 더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가능한 한 픽업 장소와 반납 장소가 동일하도록 여행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보통은 공항에서 렌트를 하게 되면 시내에서 렌트하는 것보다 더 비싸다는 것도 알아 둘 필요가 있겠네요.
2) 주행 거리 제한
일반적으로 렌트에는 거리제한 조건이 붙는데 이것을 무제한으로 설정하려면 그만큼 더 비싸겠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50% 이상 비용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여행 일정과 동선을 확인하고 여행일정에 따라서 무제한으로 할 것인지를 잘 판단해야죠. 단시일 내에 장거리를 이동하는 경우라면 거리무제한 옵션이 필요하겠지만, 저는 가능한 한 운전거리가 짧게 여행을 계획하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매일 몇 백 킬로미터씩 운전을 해야 하는 일정이라면 좋은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간도 돈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도 피곤한 여행이 될 테니까요. 특히 해외여행에 있어서는 육체적인 컨디션을 잘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행 와서까지 전투력을 발휘해야 한다면 무엇을 위한 여행인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한 달 이상의 장기 렌트의 경우에는 아예 거리무제한 상품을 내놓지 않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거리가 제한된 경우라 하더라도, 사실은 한 달 동안 대개 2,500 km에서 5,000km의 주행거리를 제공하므로 여러 곳을 방문하지 않을 여행자라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여행일정과 동선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되겠지요. 개인적으로는 가장 적은 거리를 달리는 여행이 가장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하기에, 만약 유럽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면 5,000 km 미만의 동선을 계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여기저기 많은 곳을 여행하고 싶다면 당연히 거리 무제한 옵션을 선택할 수밖에 없겠지요.
3) 변속 시스템 (Manual/Auto)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수동 트랜스미션을 장착한 차가 드물지만 유럽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렌터카는 수동변속차량이 더 많습니다. 사람들이 에너지 절약에 민감하고 수동차량에 대한 정부보조금이 많기 때문이라네요. 수동변속차량을 운전해 본 경험이 있다면 한 번 선택해 볼 수도 있겠으나, 갑자기 수동변속차량을 운전하게 되면 익숙지 않은 탓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더군요. 낯선 길들이라서 항상 내비게이션에 신경을 쓰며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운전 중에 신경 써야 할 일들을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이 안전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하겠지요. 제 경험으로 볼 때, 안전과 편리함을 위해서는 비용을 좀 더 지불하더라도 자동변속을 선택하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자동변속차량은 수동에 비해 20% 정도 더 비쌉니다.
4) 전기자동차
전기차에 대한 정부 보조금도 많아서, 렌터카도 전기자동차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여행자에게는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충전 때문에 고생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충전 인프라는 여전히 불편한 수준입니다. 기름값이 비싸더라도(2023년 3월 현재 리터당 약 2유로) 현재로서는 휘발유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프랑스 사람들도 전기차는 근거리 동네 주행용으로만 사용하더군요.
5) 보험
자동차 렌트할 때에 가장 어려운 고려사항이 보험입니다. 귀찮더라도 보험내용에 대해서는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렌트비에는 일반적으로 렌트 회사가 제시한 보험조건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들을 수정하여 조건을 추가하거나 개선하려면 돈을 더 내야 합니다. 운전자보험에 있어서 이용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개념이 있습니다. 프랑시즈(Franchise)라는 것인데, 이것은 사고 시 피보험자가 부담해야 할 배상한도액을 말합니다. 즉 프랑시즈가 0이라고 돼 있다면, 사고가 나서 대물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피보험자는 한 푼도 배상하지 않는다는 얘기이고, 프랑시즈가 3,000이라면 피해액이 5,000유로가 나왔더라도 3,000유로만 물어내면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피해액이 3,000유로 미만으로 나온 경우라면 다 배상해야겠지요) 따라서 프랑시즈 금액이 적을수록 피보험자에게 좋은 것이지만 보험료는 더 비싸지겠죠. 반대로 보험료가 싸다면 그와 상응하여 프랑시즈 금액이 더 커 지겠지요.
또 한 가지 체크해야 할 것은 도난에 관한 것입니다. 요즘은 대개 도난 보험이 포함되어 있더군요. 프랑스 내에서 돌아다닌다면 도난 위험성이 거의 없겠지만, 동구권을 비롯한 다른 여러 나라들을 가신다면 도난 면책조건이 중요해집니다. 이것저것 다 귀찮으시다면 소위 Supercover를 신청하면 되는데, 모든 경우의 수를 보험료에 포함시킨 만큼, 당연히 가장 비싼 보험료를 지불하게 됩니다.
이 외에도 보증금, 운전자 추가, 월동 장비 추가 등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겠으나 여기서 설명하는 것은 생략하겠습니다.
<비대면 렌터카 회사 Liigu>
최근에 저는 Liigu라는 렌터카 회사에서 차를 빌려보았는데요, 렌트비가 비교적 저렴하고 비대면거래 방식이라고 해서 경험 삼아 시도해 보았습니다. 장단점이 있더군요. 이 렌트회사의 특징은 사무실도 주차장도 없고 모든 것이 인터넷과 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동차의 키도 앱을 이용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터넷 환경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회사는 고려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고객이 인터넷으로 예약을 신청하고 여권 등의 서류들을 촬영하여 보내면, 회사는 24시간 내에 심사결과를 이메일로 통보해 줍니다. 그리고 고객은 앱을 설치하여 지불 절차를 밟습니다. 회사는 차량 픽업 예정일 며칠 전에 픽업할 주차장 위치를 고객에게 알려주는데, 대개 기차역의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더구먼요. 주차장이 워낙 넓은 곳이어서 차량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예정된 픽업 시간 15분 전에, 차가 주차된 위치와 차 키의 비밀번호를 고객에게 앱을 통해 알려줍니다. 고객이 앱을 이용하여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걸면 픽업이 완료됩니다. 반납 과정도 픽업과 비슷합니다. 차량을 반납해야 할 날짜가 되면, 렌터카 회사는 고객에게 차량을 어디에 반납해야 하는지 알려 줍니다. 반납시간에 맞추어 지시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다음, 차량의 위치와 차량 사진을 찍어서 렌터카 회사에 보내면 반납이 완료됩니다. 한편, 렌트 기간 동안 내내 고객 신용카드의 일정 금액이 보증금으로 설정되며, 회사는 차량 반납 후 72시간 내에 차량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보증금을 해제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앱과 메신저(WhatsApp)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물론 긴급히 필요한 경우에는 전화통화도 가능합니다. 이 방식은 렌트비가 저렴하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직원을 대면할 수 없고 픽업이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라서 처음에는 좀 불안하더군요. 대체로는 만족스러웠고 다음에 다시 이용한다면 이제 그런 불안감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앱과 인터넷 사용이 능숙지 못하거나 외국어 소통능력이 부족한 분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네요. 이용 과정 중에 매우 당황스러울 수 있으니까요. 경우에 따라서는 생활영어 수준을 넘어서는 외국어 소통능력이 필요합니다. 어쨌든 새로운 서비스 방식이라서 소개해 보았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방식을 도입하는 렌터카 업체들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프랑스에서 운전할 때 꼭 알아두어야 할 사항'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