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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 Jan 02. 2024

알프스 한 달 살기(6)

블라블라카(Blablacar), 프랑스인들의 수다방

편견일지 모르지만, 프랑스 사람들의 수다는 가히 세계적일 것이다. 


그들에게 식사는 곧 대화이다. 흔히 식사 때마다 이어지는 두세 시간의 수다는 흥미롭고 유쾌한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 불어가 서툰 내게는 부담스러운 시간이기도 했다. 그들의 관심사는 무궁무진하며 호기심은 끝이 없다. 저녁 식사 후에 수다를 떨다 보면, 두세 시간이 지나면서 대개 트림을 하거나 딸꾹질을 하게 되는데, 그 딸꾹질에 대해서 30분 넘게 수다를 떨고 간다. 동네의 어떤 할머니가 치매가 시작되면서 말이 너무 많아졌다고 누가 말하자, 그 할머니의 수다스러움과 인생에 대해서 한 시간 동안 수다를 떤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헤어스타일과 복장에서부터 시작된 얘기가 어느새 중국의 변발 머리를 거쳐 18세기 프랑스의 복장의 변천사로 넘어가고, 부르기나 파쏘의 꾸데타 얘기가 프랑스 육군 사관학교의 존치 문제와 드골 장군의 공과에 대한 논란으로까지 이어진다. 일상으로부터 시작된 얘기들이 그들 특유의 유머와 신랄한 비평과 함께 역사, 철학, 풍습, 예술 등 모든 분야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펼쳐진다. 그들은 세상에서 특이하고 새로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알고 있는 것은 모두 다 얘기해야만 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그들에게는, 지난여름휴가 동안에 있었던 색다른 곳에서의 특이한 경험이 다음 휴가 때까지 일용할 수다의 양식이다. 어쩌면 그들은 팍팍하고 메마르기 쉬운 삶과 관계들을 유지 보수하기 위해 끊임없이 수다라는 기름칠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https://www.blablacar.com

프랑스에서 필자가 애용했던 이동 수단이 "블라블라카(Blablacar)"라는 서비스인데 '블라블라'라는 말이 수다 떠는 입술을 흉내 낸 의태어인즉 우리말로 하자면 '수다 떠는 차', '나불대는 차'쯤 되겠다. 카풀 서비스로써 비용이 저렴하고 편리해서 프랑스 전역에서 새롭게 유행된 교통수단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앱을 통해서, 빈 차를 몰고 가는 사람이 같은 곳으로 가는 사람을 태워주고 저렴한 비용을 받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나 가능한 매우 프랑스적인 서비스이다. 사회 저변에 튼튼한 신뢰가 구축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독일만 하더라도 서로를 믿지 못하여 사람들이 이용하기를 꺼려한다고 한다. 같이 일했던 독일 여학생 소피아도 독일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얘기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필시 우리나라에서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프랑스에서 이 서비스에 참여하는 운전자들 중에는 여성도 많다. 그만큼 안전한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이고, 신뢰사회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다.  운 좋으면 기차요금의 5분의 1 비용으로도 갈아타는 수고 없이 목적지에 갈 수 있어서, 나는 이 서비스를 자주 이용했다. 그런데 이 이동 수단을 이용하자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같이 탄 낯선 승객들과 한시도 쉴 틈이 없이 수다를 떨 것을 각오(?) 해야 한다. 조용히 경치를 즐기며 생각에 잠겨 여행하기에는 매우 부적합한 교통수단인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같은 차를 타고 가면서 그렇게 유쾌하게 수다를 떠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 신기해 보였다. 살랑슈(Sallanches)에서 안시(Annecy)에 가는 블라블라카에서는, 내가 안시에 여행을 가는 중이라는 말 한마디에 다른 두 사람의 승객은 물론 운전수까지 합세하여 한 시간이 넘도록 앞다투어 안시의 이모저모를 얘기해 주었다. 지도를 보여주며 관광 코스를 설명해 주고, 관람 시간표를 알아봐 주는가 하면 유람선 할인권도 한 장 건네주었다. 동행자들과 비쥬(bisou, 서로 볼을 맞대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것은 물론이다. 그들과의 수다 덕분에,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곳에 온 듯, 안시라는 도시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뜻하지 않게 좋은 친구들을 만나 가장 유익한 도움을 받으면서 온 셈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도 이렇게 쉽게 어울릴 줄 아는 그들이 부러웠고, 그들의 배려와 관대함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심지어 몽쁠리에에서 오브나로 가면서는, 차에서 내린 후에도 카페에 같이 가서 못다 한 수다를 떤 적이 있었으니.....


P.S. : 

노파심이 일어나서 덧붙입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실 분들에게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이 서비스의 핵심은 '신뢰'라는 것입니다. 신뢰사회는 쉽게 구축되는 게 아니겠죠. 이 가치를 유지하는 데에는 그만큼 엄격한 규범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운전자에게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에게나, 보이지 않은 인격과 책임이 요구됩니다. 양쪽 모두 상대방에게 공개되는 신뢰 지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운전자의 신상, 신분이 확인된 정도, 이용자의 평가점수,  경력, 등을 이용자가 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용자의 신상, 신분, 운전자에 의한 평가점수, 이용 이력 등을 운전자가 앱으로 알 수 있습니다.(이용자 등록 시 이용자도 프로필을 작성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운전자의 성향도 이용자가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운전 중에 음악을 틀고 가는지, 애완동물을 싫어하는지, 흡연자도 태워주는지...


이 서비스는 운전자와 이용자가 서로가 신뢰할 수 있어야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이용자는 신중하고 신뢰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예약을 해 놓고도 나타나지 않거나, 시간을 어기거나, 취소를 자주 하게 되면 치명적인 평판이 따라다닐 것입니다.(다시 등록할 수도 없습니다!) 향후에는 누구도 예약을 받아주지 않겠지요. 책임 있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신뢰사회가 가져다주는 자유롭고 편리한 혜택을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이죠.



<내일 살랑슈에서 안시까지 가는 블라블라카를  앱으로 검색해 보았다. 현재 모두  8대의 차량이 참여하고 있고,  쟌느는 8유로에, 나탈리는 10유로에 데려다주겠다는 것이다. (반면에 열차는 한 번 갈아타야 하고 요금은 28유로~40유로이다.)>


블라블라카는 버스도 운영한다. Annecy에서 Sallanche로 가는 블라블라카 버스 안에서
















Blablacar B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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