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아름답다면 우리의 삶도 그래야만 한다."
하루 동안의 산책을 글로 옮기는 건 무모한 짓이다. 기억의 봉지에서 마지막 부스러기까지 핥아먹어도 봉투를 막 뜯었을 때와는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세월은 하나씩 기억을 빼먹으며 내 몫은 별로 남겨두지 않았다. 나는 애초에 이 봉지에 뭐가 들어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생경한 도시를 종일 걸어 다녔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 양이 마트에서 파는 대용량 과자 만큼은 됐을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과자라도 그 정도면 물린다. 하물며 남은 산책의 기억을 한 번에 늘어놓는다니 그 또한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에게 말할 수 없이 지루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날 찍은 백사십 여장의 사진을 보면 그 시간이 단지 이미지로만 추억하기엔 너무 소중하며, 나름의 감사 표시를 해야 한다는 필요를 느낀다. 그래서 난 지루한 작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 했더라, 그래, 카페를 떠나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향한 순간으로 돌아가야겠다. 캐나다 대부분의 지역이 그렇듯 몬트리올도 겨울이 되면 혹한과 폭설에 시달린다. 눈으로 막혀 현관문 열기도 힘들다는(나는 창문으로 기어 나와 문 앞의 눈을 치우는 사람들을 상상한다), 막상 닥치면 죽을 것처럼 불편하겠지만, 관념상으로는 얼마간 낭만적이기까지 한 날씨가 몬트리올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들은 지하에 제2의 도시를 세우기로 했고, 그렇게 몬트리올은 거울에 비친 것처럼 두 배로 늘어났다. 실내에 불어넣는 엄청난 난방의 기운에 사람들은 한겨울에도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외출하기도 한다. (물론 언제든 벗어둘 수 있는 오리털 패딩을 위에 걸치고.) 아쉬운 일인지 다행스러운 일인진 모르겠으나 내가 몬트리올에 머물었던 짧은 시기는 늦가을이었고, 나는 때를 잘못 찾았다며 수줍어했던 약간의 눈밖에 맞아보질 못했다. 하지만 몇몇 사진에서 본 크리스마스 장식 옆에 반소매 차림으로 앉아 있는 몬트리올 사람들의 모습만큼은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건 내가 선망한 이 도시의 일상 중 하나였다.
스퀘어-빅토리아Square-Victoria 역에서 몬트리올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올라올 때, 격자 유리 천장 너머로 쏟아지는 하늘을 보았다. 이곳이 실내인지 실외인지 마음껏 헷갈려 보라는 것 같아 나는 열렬히 긍정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올렸다 내렸다 반복했다. 개성있는 카페가 밀집한 골목에서 맛볼 수 있는 약간의 초현실적인 공기와 자유분방함, 공간에 물들어 사람한테서도 풍기는 여유와 이해심 같은 미덕의 기운이 건물 안에 고스란히 재생되어 있었다. 따스한 공기와 투명한 겨울 하늘을 동시에 누리려 하다니, 얼마나 욕심 많은 사람들인가. 날씨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미래의 인류를 보는 것 같았다. 동시에 나라는 사람의 체계가 이렇게 잘 설계된 건물을 닮을 수 있다면 내 삶도 어떤 식으로든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나와 M이 공부하는 ILSC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딱히 그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고, 그저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 중 가장 고민할 필요가 없는 방향이기 때문이었다. 그림자로 세상을 덮을 만큼 높으면서도 수십 년은 족히 묵었을 고층 건물을 따라 걸었다. 가끔 건물의 높이가 달라지는 틈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그림자를 사선으로 잘라내기도 했다. 그러면 건물은 입체성을 잃고 평면의 그림처럼 보였다. 누군가 다양한 각도로 이어붙인 수십장의 캔버스에 도시를 재현해 놓았고, 나는 갤러리의 콘크리트 복도 위를 걷고 있었다. 이게 사람의 작품인지 현상의 작품인지 궁금했다. 때로 창고가 아닌가 싶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붉은 벽돌 건물을 보기도 했는데, 그 담적색 벽에 손을 대고 싶은 건 태양도 마찬가지인지 그곳엔 항상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전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것도 같았다.
몬트리올엔 서점이 많다. 역에서 나와 얼마 걷지 않았을 때도 서점인가 싶을 정도로 서점답지 않으면서 과연 서점이란 이래야 한다 싶을 정도로 서점다운 곳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비싼 가구나 맞춤 양복을 팔 것 같은 건물의 한 층을 내어 책 자체가 작품으로 느껴질 법한 구조로 내부를 짠 곳이었다. 비록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거의 없다 하더라도 빨간 가죽 의자에 앉아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살롱에 초대받은 이색적인 기쁨을 누릴 것만 같았다.
“몬트리올에 온 선물이야. 골라 봐.”
M은 외국에서 요리책을 사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이미지를 읽는 사람이다. 내 말에 요리책 코너를 훑는 그녀의 손길이 빨라졌다. 나는 책장 어딘가에 한국이나 서울 여행 가이드북이 있지 않을까 둘러보았다. 외국인은 내가 사는 도시의 어떤 곳에 우선순위를 매기는지 알고 싶었다.
“킨포크 스타일은 지겨워.”
그녀는 책 한 권을 도로 꽂아넣었다. 내가 보기에도 요리책에 쓰이는 사진은 크게 두 종류였다. 간소하고 소집단을 중요시 여기며 자연주의적인 사진. 그리고 스튜디오로 꾸민 부엌에서만 찍은 사진. 그러다가 계절 요리를 다룬 두꺼운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여름부터 시작해 봄으로 돌아오는 구성도 좋았고, 사진에도 얼마간 유행에서 빗겨난 세련미가 있었다. 해변이나 캠핑장에서 음식을 즐기는 모델들 밑에 브랜드와 옷 가격이 적혀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 패션 잡지 같은 면이 있긴 했지만, 과하지는 않았다. 과하다면 그 두께와 무게가 그랬다. 아직 갈 길이 멀었기 때문에 다음에 와서 사자는 M의 말에 그러겠다고는 했는데 이후로 이 책을 다시 찾으려고 생고생을 했다. 제목이 가물가물한 데다가 다른 곳에선 찾을 수도 없어서 며칠을 전전했고, 결국 막판에 이 서점으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여긴 두세 번 찾을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책장 전체를 들어냈다가 다시 집어넣는 소란을 피우는데도 여직원은 귀찮다거나 불편하다는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일할 맛 나는 책상 앞에서 자기 할 일에 취해 있을 뿐이었다. 입구부터 마른 대걸레로 바닥을 닦던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은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 한 손님에게 무관심한 편이 낫다. 서가를 방황하는 이들이 몇 시간씩 책 먼지를 마시며 스스로 필요한 인연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게 서점의 미덕이다. 그동안 우린 이곳에서 사적인 시간을 찾는다.
몬트리올은 책만큼이나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그렇게 믿는다. 서점보다 더 있을 법하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은 갤러리를 보면, 도대체 누가 저 많은 곳에 방명록을 남기고 누가 저 무명 화가들의 작품을 사들여 운영에 도움을 주는지 궁금해진다.
어느새 올드 몬트리올에 와 있었다. 한 집 건너 나란히 문을 연 화랑을 보며 몇 분만에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알아차렸다. 나처럼 달뜬 표정의 관광객들은 메뉴판을 문가에 세워둔 식당으로, 맥줏집으로, 싸구려 기념품 가게와 파리에서 그대로 들어낸 듯한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은 이 아담한 구시가지를 손아귀에 쥔 도시 전체가 우리가 기억에 남겨야 할 목적지가 아닌가 싶지만, 마침내 올 곳에 왔다는 안도감을 부정할 순 없었다. 오래된 고층 빌딩은 감쪽 같이 사라졌다. 대신 그보다 더 오래된 최초 정착민의 거주지가 낭만적이지, 유럽 같지, 여행 책자에 쓰여있는 그대로지, 라며 동의를 구해왔다. 실은 직전까지 걸었던 스퀘어-빅토리아 역을 위시한 금융가의 풍경이 더 이국적이었지만, 나는 예의 바르게 기대했던 대로군요, 인사치레를 했다. 어떤 용무로 찾았든 간에 그 집의 어르신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것처럼.
구시가지가 이 도시를 북미의 파리라고 불리게 한 장본인이라면, 어쨌든 그 조화의 중심에는 노트르담 성당이 있다. 규모는 파리의 그것보다 작고 입장료까지 받지만(그래서 들어가지 않았지만), 탈세속적인 고딕 양식의 건축물을 가로수와 곁들여 보면 시각적으로 만점을 줄 만하다. 여기서 북서쪽으로 좀 더 걸으면 뷰 포흐vieux-port, 그러니까 구항구가 나온다. 오늘의 산책에서 거기까지 갈 힘은 없다. 대신 맥주와 요깃거리를 탐할 마음으로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브루어리나 기웃거려 본다. 거리 사진을 찍어 누군가에게 들이대면 유럽은 언제 다녀왔어, 그런 질문을 받을 것 같다.
하지만 구시가지만으로 몬트리올을 파리나 유럽 소도시의 하위호환 정도로 여기기엔 무리가 있었다. 거의 바다처럼 보이는 강 쪽으로 몇 분 더 걸어가면 우리는 북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의 본모습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지금도 전차가 다니는지 궁금한 철로를 지나 육중한 화물선도 받아들일 수 있을 규모의 부두에 오르고, 관광객보다는 어린 시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과학 센터centre des sciences의 생뚱맞은 등장에 즐거움을 느꼈다. 아주 그럴싸하다고 손뼉을 치기엔 조금 부족한 공룡 모형을 지나쳐 콘돔 자판기가 설치된 화장실을 공짜로 이용하면서 어쨌든 내가 갈망했던 도시가 유럽의 아류작이 아님을 확인했다. 나는 굳이 다른 도시와 비교할 필요 없는 몬트리올만의 매력을 발견하는 중이었다.
“이번엔 차이나타운으로 가 볼까.”
우리는 방향을 틀었다. 나는 감탄과 흥분의 정도가 올드 몬트리올에서 딱히 더 올라가진 않았다고 인정했다. 그저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매혹의 그래프에 오늘의 산책도 기여했을 뿐이었다. 오르한 파묵은 그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두운 골목의 아름다움 혹은 시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리는 (...) 내가 살았던 삶의 부족한 부분을 숨기기 위해서 내가 살았던 도시의 아름다움을 과장하면 안 된다고 내게 말한다. 도시가 우리에게 아름답고 마법적으로 느껴진다면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만 한다.” 이제 내게 떨어진 최우선 과제는 이 도시에 어울릴 만큼 내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