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kolo Espresso Bar
그녀는 몬트리올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을 찾았다. 그녀가 비행기에서 내려 시내로 가는 택시를 잡은 시각이 새벽 한 시였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도착하자마자”는 아니겠다. 그러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잠깐 눈을 붙인 후에 그곳으로 달려간 건 사실이니까 그녀가 몬트리올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을 찾았다는 식으로 첫날을 축약한다고 해서 잘못될 일은 없겠다.
이 도시에 오기 한참 전, 그녀는 인터넷에서 몬트리올에 관해 찾아보다가 이곳을 발견했다. 그날 이후로 이곳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역시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의 노트에 큼지막하게,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볼펜으로 꾹꾹 눌러 써서 뒷장에까지 새겨졌을 정도로 강조되어 지워진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이런 심리 작용을 끌림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그래 분명. 그녀는 그렇게 확신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몬트리올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 중에서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좋아했다. 내가 좋아했던 건 『끌림』, 그것도 10년 전에 나온 구판이었다. 사실 시인의 글이나 사진의 문제는 아니었고 단순히 종이 재질의 문제였지만, 내가 끌림이라는 단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녀가 끌림이라는 말 하나만 붙잡고, 마치 방황하는 시인처럼, 이 먼 도시까지 와버린 것이다. 그녀는 나, 그러니까 그에게 어떤 감수성은 있으나 거기에 미친 척 쓸려가는 실천력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하필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좋아한다니 이걸 인연이라 해야 할지 어긋남이라 해야 할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이곳, 그러니까 피콜로 에스프레소 바는 실망감을 달래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다락방 같은 이 층 자리에 앉아 길쭉한 카운터를 내려다보았다. 발밑에 자신이 어릴 적부터 선망하던 일련의 이미지가 입체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명을 단 방식, 테이블을 비스듬히 놓은 방식, 손으로 쓴 메뉴판과 공장처럼 일사불란하게 음료를 제조하는 방식이 그러했다. 그녀는 커피에 얼음과 우유를 넣어 마시며 앞으로 이곳에서 책을 읽고 일기를 쓸 자신을 상상했다. 마지막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모니터 화면으로 이곳을 발견한 순간부터 이어져 오던 상상이었다. 한국에서 이 카페에 앉아 있는 자신을 그리던 일과 실제로 이 카페에 앉아 있는 자신을 거울로 바라보는 일은 오래전부터 그러라고 정해진 것처럼 닮아 있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잇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 그런 느낌이 참으로 좋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며칠이 흐르고, 몇 주가 더 흘렀다. 그녀는 종종 이곳을 찾기는 했지만 계획했던 것보다 더 자주 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더 가깝고 더 편한 동선 위에 놓인 단골 몇 군데를 발견했고, 실은 어딘가에 앉아있기보다 하염없이 걷기를 더 많이 하게 됐다. 피콜로는 그녀가 몬트리올에 오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곳에 오고자 했던 이유들은 점점 희미해지고 말았다. 아직 노트에 쓰여있지만, 그걸 읽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끌림을 따라 떠난다고 해서 반드시 무엇을 발견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가 단순히 박한 의지의 소유자이기만 했던 건 아닌 것일까?
어느 날, 몬트리올에서 보낸 꽤 많은 날 중에 하루, 오랜만에 피콜로를 찾았다. 오래전 이곳에 앉아 있는 자신을 상상하던 것처럼 언젠가 이곳에 그와 함께 앉아 있는 상상을 했다. 그날이 이곳에 처음으로 온 날의 감격과 흥분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그동안 이병률 시인의 세 번째 산문집이 나왔고, 그와 그녀 모두 그 책을 아주 좋아했다는 것이었다. 책의 제목은 『내 곁에 있는 사람』이었다.
피콜로 에스프레소 바의 이 층 다락방 자리에 그녀와 앉아 있을 때, 난 여기에 함께 앉아 있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묻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아직도 그게 참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