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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 로드를 사랑한다면

by 베르고트

어스름 즈음에 바를 나와 걷기 시작했다. 여행자들이 선망하는 도시가 지구 상에 널려있다 하더라도 여기 카오산 로드 같은 곳은 또 없을 것이다. 방콕이 사람도 공간도 다채로운 색을 띠고 있는 도시라 한다면, 카오산 로드는 그 모든 특징을 불과 수백 미터 안에 집약한 보석이다. 나는 종종 방콕의 그 어느 곳과도 닮지 않았다는 느낌도 받고는 했다. 이곳은 독립적인 영토였고, 영주는 물론 우리 여행자들이었다. 인상은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감응일진대, 카오산 로드를 바라보는 시선엔 객관적인 면이 있는 모양이었다. 한 여행안내서는 이곳을 ‘무국적 공간’이라 칭했고, 어느 태국 작가는 “짧은 길 안에 세상에서 가장 긴 꿈이 있다”라고 썼다. 저렴한 숙소와 여행자를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줄을 서다 못해 어깨를 겹치고, 싸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선 다른 여행자 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 이곳을 여타와 구분하는 원동력이다. 어느 날엔가 이 거리에 미혹돼 오랫동안 머무는 이들이 생겨났단다. 그들을 궁금하게 여긴 사람들이 뒤를 이어 찾아들었단다. 그리고 다시 그 사람들을 보기 위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지금에 이르렀단다. 자신의 꼬리를 삼키며 영원히 도는 한 마리 뱀처럼, 누가 시작이고 누가 끝인지 알 수 없는 파티가 사백 미터 남짓한 거리 위에 판을 벌였단다.





시대에 뒤처진 네온사인이 건재하고, 간판은 녹이 슬어 잘 읽히지 않고, 벽에는 온갖 오물이 묻었다 닦였다 반복한 자국이 들러붙어 있지만, 그래서 생동하는 박물관에 온 것 같았다. D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어딜 가든 우리에게 꼭 맞는 장소를 찾는 데 귀신 같은 촉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들어가 보지 않아도 그곳의 음식이 어떤 수준인지 가늠하며 얼핏 입구만 보고서도 우리가 몇 시간 후 그 안에서 얼마나 취하고 흥분해 있을지 알아내는 선구안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D조차도 바쿠스가 줬을 게 분명한 재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완벽한 곳보다 더 완벽한 곳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리란 미련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 곳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걷다 보니 방콕을 가로질러 흐르는 차오프라야 강이었다. 멀리 하프를 옆으로 눕혀놓은 것 같은 라마 8세 다리가 보였다. 탑이 하나인 아름다운 사장교였다. 주탑에서 교상으로 팽팽하게 이어진 현을 퉁기는 건 바람의 몫이었다. 강변에 붙어있는 산띠차이 쁘라깐 공원에선 몇몇 시민들이 에어로빅을 하고 있었다. 무리 앞에 선 강사는 작은 마이크를 귀에 걸고 구호를 외치며 열정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몸은 내가 방금 보고 온 길처럼 야릇하고 매혹적이었다. 허둥지둥 그를 따라 하는 수강생들을 보면서 웃다가 나중엔 그에게 한참 시선을 빼앗겼다. D가 저만치 앞서 돌아가고 있는 것도 모르고 보았다. 작고 날렵하고 탄탄한 사람. 진부한 관용구라도 물 찬 제비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사람. 어떤 논리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자 거리가 지척이든 어떻든 상관없이 저녁 운동에 열중한 이들을 보면서 나 또한 카오산 로드로 돌아가 다른 동료를 허둥지둥 따라 하는 거리의 수강생이 돼야겠다 싶었다. 조명도 어둡고 스피커는 찢어지고 더럽게 더운 날씨에 벌레까지 극성인 곳이지만, 거기서 다하는 최선이 눈에 밟혀서 그랬나 보다. 지금 내가 다할 최선은 완벽한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저 달뜬 기류에 몸을 실어야 하는 과정 그 자체임을 알았다.





밤이 되면 카오산 로드의 진가가 보인다. 단순한 관광부터 사람 구경, 무절제한 쇼핑, 거기에 심각한 일탈까지. 이곳에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말이 한낱 뜬소문은 아니었다. 한쪽 입구에 떡하니 들어선 경찰서는 사백 미터 거리 전체가 광란의 도가니인 건 아니라고 주의를 줬지만, 거대한 눈은 구석까지 보지 못하는 법이다. 노점에서 저렴한 팟타이 한 접시를 후딱 해치우거나(수다 식당의 팟타이보다 저렴하고 맛있었다) 튀긴 전갈 따위의 가슴 덜컥 내려앉는 별미를 맛보거나 음습한 입구 아래 저만의 세상을 꾸린 클럽에서 평소 같았으면 멀찍이 피해야 할 이들과 인사를 나눈다거나 여하튼 선택지는 많았다. 나와 D는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즐거움을 누리기로 했다. 길 위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는 것. 『길 위에서』의 주인공들을 반의반 정도만이라도 흉내내 보려는 것. 그러니까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카오산 로드의 밤을 즐기고자 했다.



예컨대 도로 정중앙에 위치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럭키 비어’나 ‘센터 카오산’ 같은 펍이 우리의 취향과 잘 맞아 떨어졌다. 양쪽의 경계선에 서기만 해도 누구나 두 곳이 라이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경쟁적으로 볼륨을 키워 사방 십여 미터는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고, 사람을 흥분시키기 위해 선곡에도 신경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차피 도로까지 점령한 의자는 두 곳 다 꽉 차 있었다. 손님이 많고 적음을 겨루는 건 의미가 없었다. 어느 쪽 손님이 더 많은 술을 마시고 소리를 잘 지르는지, 누가 더 춤을 잘 추고 누가 더 많이 미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이것도 편이라면 편이니까, 자기편 술집에서 더 유명하고 더 신나는 노래가 나오면 모두가 환호하며 술잔을 들었다. 반대로 이쪽 음악이 저쪽보다 시원찮다고 느껴지면 축구 경기에서 막 한 골 먹은 팀처럼 침울해지기도 했다. 사실 우리가 앉아 있던 센터 카오산보다는 반대편 럭키 비어 쪽 선수들이 뛰어나긴 했다. 그 주인공이 누구였냐고? 자랑스러워 하시라, 완연히 한국 젊은이들로 보이는 남녀 네댓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쉬지 않고 춤을 추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역시 음주가무에 능한 민족 아닌가. 나와 D도 춤을 잘 추는 건 아니지만 즐겨 춘다. 하지만 뭐랄까, 이미 수에서 밀렸다는 패배감을 이기지 못하고 꽤 취하기 전까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쨌든 술맛 나고 눈과 귀가 즐거우니까 이런 식의 경쟁이라면 환영이었다. 행인들도 양쪽 분위기가 흥미로웠던지 걷다 말고 휴대전화를 들어 취객들을 찍기도 했다. 나중엔 아예 갈 생각도 안 하고 가장 바깥에 앉은 이들과 인사하고 술잔을 대신 비워주고 길바닥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덕분에 길이 꽉 막혔다. 그저 지나가기만 하려던 애꿎은 사람들은 인파를 한참 헤치고 헤치다가 결국 개미지옥에 빠지는 것처럼 마음이 붙잡혀 술집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스스럼없어진다는 것. 만나기도 전에 이미 한 걸음 친해져 있는 것. 말이 잘 안 통해도 맥주잔을 부딪히고 담배를 나눠 피고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따라부르며 어깨춤을 춘다는 것. 나이도 성별도 월급 통장의 잔고나 성적 취향도 상관없었다. 이곳엔 여행자라는 하나의 계급, 여행자라는 하나의 국적, 여행자라는 하나의 직업만 있었다. 많은 이들이 카오산 로드를 찾는 이유는 결국 이 지구 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는 데 있는지도 몰랐다.





나와 D가 시킨 술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다른 테이블과 눈빛을 주고받다가 미소가 절로 나오면 잔을 들어 멀리서 건배하기도 했다. 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일행 셋이 우리 옆자리에 앉았다. 노점에서 사 온 닭 날개 꼬치를 안주로 먹고 있길래 ‘내 돈 주고 사 먹기는 좀 그런데 하나 준다면 감사히 먹어볼 의향은 있다’라는 시선을 한참 보냈더니 내게 한 조각 권하기도 했다. 지나다닐 때는 그닥 구미가 동하지 않았는데 공짜로 먹으니까 맛이 기가 막혔다. 또, 반대편 테이블에선 술 때문인지 더위 때문인지 얼굴이 벌건 남자 하나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는 그 와중에도 일종의 마취 가스인 아산화질소를 채운 풍선을 열심히 불고 있었다. (흔히 ‘해피 발룬Happy balloon’이라고 불리는 이 풍선을 앞으로 가게 될 거의 모든 도시에서 볼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풍선을 불지 않고 오히려 들이키려 애쓰고 있는 바람에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점점 정신줄을 놓고 세상에서 이탈하는 눈빛을 보고 있자면 마냥 웃을 수만도 없었다. 친구가 무사히 그를 숙소로 데려다주기를 바랄 수밖에.


놀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늘씬한 여인과 심드렁하기만 한 그녀의 애인도 우리 옆에 앉았다가 떠났다. 남자는 이 사람 저 사람 닥치는 대로 어울리려는 여자 - 어쩌면 애인이 아니라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난 친구일지도 모르겠다 - 때문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듯 보였다. 마침 D가 제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흔들고 있었는데, 그녀와 같이 추는 것도 아니고 그저 우리 테이블 앞에 서 있었을 뿐인데 지겹도록 오랫동안 눈을 흘겼다. D도 어이가 없었던 모양인지 부러 격하게 춤을 췄다. 이런 분위기가 모두에게 좋지만은 않은 거구나, 그런데도 동행에게 잘 보이겠다고 여기까지 끌려 오는 사람이 있구나. 과연 다양다종한 군상이 모인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자정이 되자마자 음악 소리가 줄어들더니 직원들이 쏟아져 나와 인도에 깔아둔 탁자와 의자를 치우기 시작했다. 간이의자에 앉았던 사람들은 안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그냥 제자리에 서서 하던 일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와 D는 인도가 아니라 보도블록 위, 그러니까 ‘가게에 포함된 구역’에 앉아 있어서 자리를 옮길 필요는 없었다. 이윽고 순찰차가 지나갔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음악을 끄고 인도를 비워준 것이다. 그러나 웬걸. 순찰차가 카오산 로드를 완전히 빠져나가자 다시 음악 소리가 커지고 간이의자도 순식간에 거리로 돌아왔다. 그랬다. 관례요, 눈속임이었다. 그렇게 열광이 이어지다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건물 바깥 자리 일체를 거두고 실내로 이동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술에 취한 사람, 약에 취한 사람, 사람에 취한 사람, 그들을 구경하기 위해 온 사람, 그 어느 것에도 관심 두지 않고 그냥 여기에 존재하러 나타난 사람. 새벽은 밑도 끝도 없는 혼란으로 모두를 집어삼켰다. 나와 D라고 다르진 않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길바닥에서 누군가와 어울려 춤을 췄던 거 같고, 플라스틱 양동이에 담아주는 칵테일을 주문했는데 옆에 있던 남자들이 몽땅 마셔버렸고,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어떤 술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입 안에 남은 달콤한 밑바닥만 어렴풋하다. 더불어 얼음을 우적우적 씹어먹었단 사실도. 시간이 좀 더 흘러 맥도날드 빈 자리에 앉아 술을 좀 깼을 때, 이 거리에 대한 사랑이 숙취처럼, 숙취가 이 거리에 대한 사랑처럼 어수선히 밀려들었다.





방콕을 떠나던 날이었다. 치앙마이 행 야간열차는 밤 열 시 출발인데 점심이 되기 전에 숙소를 나섰다. 기차 역에 짐을 맡기고도 시간이 한참 남아 한낮에, 마지막으로 카오산 로드에 다시 갔었다. 햇살이 얼마나 뜨거운지, 돌아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제정신으로 보이는지, 처음 온 곳인 양 어색하기만 했다. 아침 겸 점심으로 피자를 먹고 에어컨이 잘 나오는 카페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이제는 익숙해진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환영이 지워진 맑고 또렷한 거리를 창 너머로 흘끗거리기도 했다. 끼니를 때우고, 잡화를 사고, 여행사에서 버스표를 예매하고, 가장 유리한 창구를 찾아 환전을 한다. 여느 여행자 거리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걷는 사람. 차양 아래 앉아 책을 읽으며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는 사람. 한손엔 여행 안내서를, 다른 한손엔 연인의 손을 쥐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사람. 아마 우리가 기차에 오를 즈음이 되면 그들의 표정까지 포함해 재차 이 거리는 뒤집혀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떠나기 전에 이런 평범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사랑한다면 뭐라도 상관없듯,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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